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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2일 남자세례명 9가지

피어나네 2023. 1.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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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2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가우덴시오, 도미니코, 빅토르, 빈첸시오 (부제), 빈첸시오 (순교자), 빈첸시오 팔로티, 아나스타시오, 오론시오, 윌리엄 파텐슨, 총 9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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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2일 여자세례명 블레실라, 총 1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1월 22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9가지

 

 

 

 

1월 22일 남자세례명 목록

 

  1. 가우덴시오

  2. 도미니코

  3. 빅토르

  4. 빈첸시오 (부제)

  5. 빈첸시오 (순교자)

  6. 빈첸시오 팔로티

  7. 아나스타시오

  8. 오론시오

  9. 윌리엄 파텐슨

 

1월 22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9가지

 

 

1. 가우덴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Gaudent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18년 노바라

 

 

가우덴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가우덴시우스, 가우덴씨오, 가우덴씨우스, 가우덴티오, 가우덴티우스.

 

 

가우덴시오 자료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Torino) 근처 이브레아(Ivrea)의 사제인 성 가우덴티우스(또는 가우덴시오)는 노바라의 성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4월 30일)와 베르첼리(Vercelli)의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 8월 2일)와 친구였다. 그는 성 라우렌티우스를 계승해서 노바라의 주교가 되어 20년간 주교좌에서 사목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도미니코

 

  • 가톨릭 성인 이름
    Dominic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031년 소라

 

 

도미니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도미니꼬, 도미니꾸스, 도미니쿠스, 도미니크, 도미닉, 도밍고.

 

 

도미니코 자료

이탈리아의 폴리뇨(Foligno)에서 태어난 성 도미니코(Dominicus)의 어린 시절 기록은 유실되었고, 그가 수도자가 된 후의 기록만 다소 남아 있을 뿐이다.

성 도미니코는 베네딕토회 수도자가 된 후 주로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예를 들어 소라, 스칸드릴리아(Scandrilia), 상그로(Sangro) 그리고 다른 도시에 베네딕토회 수도원을 세우는데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세운 각 수도원의 초대원장이 될 만큼 개척자의 정신이 뛰어났으며 활발히 활동하였다. 그는 새 수도원을 세우기 전까지는 주로 독수자처럼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다가 일단 사업이 시작되면 불같이 뜨거운 열정으로 일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구령사업에도 남다른 능력을 보였는데, 때때로 이상한 기적을 행함으로써 수많은 죄인을 회개시키고 교회를 확장하였다.

그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Campania)의 소라에서 80세의 일기로 서거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빅토르

 

  • 가톨릭 성인 이름
    Victor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5년

 

 

빅토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빅또르, 빅똘, 빅톨.

 

 

빅토르 자료

성 빈첸시오(Vincentius)와 성 오론티우스(Orontius)는 프랑스 니스(Nice) 근교 시미에(Cimiez)에서 온 형제였다.

그들은 에스파냐쪽 피레네 산맥에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헤로나(Gerona) 지방의 푸이세르다(Puigcerda)에서 성 빅토로와 함께 순교하였다. 그들의 시신은 그 후 프랑스의 앙브렁(Embrun)으로 옮겨졌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빈첸시오 (부제)

 

  • 가톨릭 성인 이름
    Vincent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부제,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사라고사

 

 

빈첸시오 (부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뱅상, 빈센트, 빈첸시우스, 빈첸티오, 빈첸티우스, 빈켄티오, 빈켄티우스, 원선시오.

 

 

빈첸시오 (부제) 자료

성 빈첸시오(Vincentius)는 에스파냐 북동부 사라고사 인근 우에스카(Huesca)에서 귀족 의원(議員)의 아들로 태어났다.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자란 그는 사라고사의 주교인 성 발레리우스(Valerius, 1월 28일)의 제자가 되어 부제품을 받고 백성들에게 설교하고 가르치는 직분을 충실히 이행했다.

그러던 중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발렌시아(Valencia)에서 순교함으로써 에스파냐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순교자들의 행전”(Acts of the Martyrs)을 통해 전해지는 오랜 전승에 따르면, 황제의 박해 때 그리스도교를 너무나 미워하던 에스파냐의 총독 다치아누스(Dacianus)는 가장 먼저 그를 주목해 성 발레리우스 주교와 함께 체포해 철사로 결박한 채 발렌시아로 끌고 와 감옥에 가뒀다.

잔인한 박해자 다치아누스는 이미 연로한 주교는 추방하고, 감옥에 갇혀 굶주림으로 쇠약해진 성 빈첸시오에게 그리스도교를 배신하고 황제에게 희생 제사를 바칠 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이를 단호히 거부한 성 빈첸시오는 심한 고문을 받았다. 총독은 쇠갈퀴로 그의 살점을 떼어내기도 하고, 철판 위에 묶어 놓고 불로 지지며 더 큰 고통을 주기 위해 상처에 소금을 뿌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떤 고문에도 그는 그리스도를 배신하지 않고 순교할 결심으로 온갖 고통을 참아냈다.

성 빈첸시오의 용기에 감명을 받은 다치아누스 총독은 호의를 베풀 듯 그에게 침대에 누우라 권하며 성경과 신앙 서적을 내놓으면 용서해주겠다며 회유했다. 하지만 귀중한 신앙 서적이 박해자의 손에 불타버리도록 할 수는 없었다.

성 빈첸시오는 총독에게 “당신의 광포함이 더 커질수록 내 기쁨은 그만큼 더 커집니다. 그러니 당신이 내게 마련해 둔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도 줄이지 마십시오. 그래야 내가 나의 승리를 더욱더 빛나는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했다.

더는 그의 결심을 꺾을 수 없다고 판단한 총독을 상처투성이의 성 빈첸시오를 철과 도자기 파편이 널려있는 감옥으로 처넣었다.

순교록에 의하면 감옥 안에서 아름다운 광채와 함께 천사가 나타나 그를 위로하고 승리의 월계관을 약속했다고 한다. 온갖 고문으로 산송장이 된 성 빈첸시오는 마침내 감옥 안에서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총독은 그의 시신을 황량한 들판에 던져 야생 짐승의 먹이가 되도록 했다. 하지만 까마귀가 나타나 그의 시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지켜주었다.

총독은 다시금 그의 시신을 자루에 담아 큰 돌을 묶어 바다에 던져버렸다. 하지만 파도가 그의 시신을 땅 위로 돌려보냈고, 신자들이 발견해 정중히 매장했다고 한다.

304년 1월 22일 성 빈첸시오 부제가 순교한 후, 그의 고향 친구이자 시인인 프루덴시우스(Prudentius)가 그를 찬양하는 시(詩)를 지음으로써 그에 대해 증언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그 후 그가 받은 가혹한 고문과 순교 사실은 전 교회로 알려졌고, 그에 대한 공경도 빠르게 퍼져 나갔다.

성 레오 1세(Leo I) 교황과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주교도 그를 높이 칭송하는 글을 남겼다. 그의 유해는 발렌시아와 사라고사, 리스본, 파리, 영국 등지에 모셔져 유럽 전역에서 공경을 받았다.

오늘날 포르투갈의 수호성인인 성 빈첸시오는 교회미술에서 순교를 상징하는 종려 가지를 쥐고 있는 부제 모습이나 철판 위에서 고문을 받는 모습으로 주로 묘사된다.

또한 그의 시신을 지켰던 까마귀와 함께 그려지거나 맷돌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도 표현된다. 그는 포도주와 식초 제조업자의 수호성인으로서, 특별히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에서 성대히 기념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빈첸시오 (순교자)

 

  • 가톨릭 성인 이름
    Vincent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5년

 

 

빈첸시오 (순교자)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뱅상, 빈센트, 빈첸시우스, 빈첸티오, 빈첸티우스, 빈켄티오, 빈켄티우스, 원선시오.

 

 

빈첸시오 (순교자) 자료

성 빈첸시오(Vincentius)와 성 오론티우스(Orontius)는 프랑스 니스(Nice) 근교 시미에(Cimiez)에서 온 형제였다. 그들은 에스파냐쪽 피레네 산맥에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헤로나(Gerona) 지방의 푸이세르다(Puigcerda)에서 성 빅토로(Victor)와 함께 순교하였다. 그들의 시신은 그 후 프랑스의 앙브렁(Embrun)으로 옮겨졌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빈첸시오 팔로티

 

  • 가톨릭 성인 이름
    Vincent Pallotti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설립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795-1850년

 

 

빈첸시오 팔로티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뱅상, 빈센트, 빈첸시우스, 빈첸티오, 빈첸티우스, 빈켄티오, 빈켄티우스, 원선시오.

 

 

빈첸시오 팔로티 자료

성 빈첸시오 팔로티(Vincentius Pallotti)는 1795년 4월 21일 로마(Roma)에서 식료품 장사를 하던 부유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의 스승이었던 돈 페리(Don Ferri)는 그를 “작은 성인이지만 머리는 조금 둔했다”고 평가하였다. 그

러나 성장하면서 학업 성취 능력은 향상되었고 1818년 5월 16일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25일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 그는 10년 동안 로마의 사피엔차(Sapienza)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친 뒤 영성 지도와 강론에만 전념하였다.

보혈회를 설립한 성 가스파르 델 부팔로(Gaspar del Bufalo, 1월 2일)와의 우정에서 고무된 성 빈첸시오는 자신의 직위를 포기하고 여러 본당에서 사목활동에 전념하였다.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사도적 역할에 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예견하듯이, 1835년 성 빈첸시오는 변화와 정의에 헌신하고자 하는 성직자, 수도자와 평신도들을 모아 가난한 소년들을 위한 야간학교와 직업학교를 세우고 선진 농업기술의 전수를 위한 학원을 세웠다.

학교에서는 젊은이들에게 제화, 제단 기술과 농업 같은 시장성이 있는 기술을 가르쳤고 그들의 작업에 자부심을 주입시켰다. 그는 수도생활의 기도와 침묵에서만 성스러움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을 찾아 채워주는 데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일했다. 이러한 그의 정책은 북부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성 요한 보스코(Joannes Bosco, 1월 31일)와 비슷했다.

1835년 그는 팔라티노회(천주교 사도회)를 설립했는데, 성 빈첸시오의 일생 동안 12명의 회원만 있었지만 그 후로 크게 성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가톨릭 사도직 수녀회도 설립하였는데, 이 수녀회는 후에 팔로틴 선교 수녀회로 발전하였다.

그들은 이탈리아, 브라질,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지에 퍼져 창립자와 같은 이민자들을 돌보았으며, 동방 정교회 그리스도교인들과의 종교 간 대화를 촉진시키는 데 전문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젊은 교수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당신은 트라피스트 회원과 은수자들의 엄격함과 침묵에서 잘라져 나온 부분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거룩해 지십시오. 사회관계에서, 당신의 일터에서, 여가 생활 중에, 당신의 가르치는 직무에서, 출판사와의 만남과 죄인들과의 만남에서 거룩해 지십시오. 성스러움이란 단지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 언제 어디에나 있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성 빈첸시오의 사도적 활동은 자신의 엄격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1837년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는 사람들의 영적 목마름을 채워주기 위해 극도의 노력을 했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제는 누구나 쏴버리겠다고 위협하는 환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파로 변장하기도 했다.

1844년 성 빈첸시오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신부를 런던(London)에 사는 이탈리아인들을 사목하도록 파견하였다. 그 후로 그의 수도회는 세계 각지로 뻗어나갔다.

로마의 시민들은 성 빈첸시오 신부를 19세기에 나타난 성 필리푸스 네리우스(Philippus Nerius, 5월 26일)로 이해했다. 왜냐하면 성 빈첸시오는 자신의 옷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는 반라의 모습으로 돌아오곤 했기 때문이다.

성 빈첸시오 팔로티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다가 1850년 1월 22일 55세의 나이로 로마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1950년 1월 20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복되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진행 중이던 1963년 1월 20일 교황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교황 비오 11세는 그를 '가톨릭 액션(Catholic Action)의 선구자'라고 불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아나스타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nastas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승,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628년 페르시아

 

 

아나스타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나스따시오, 아나스따시우스, 아나스타시우스.

 

 

아나스타시오 자료

그리스어로 된 성 아나스타시우스(또는 아나스타시오) 수난기에 따르면, 그는 페르시아의 레이(Ray, 오늘날 이란의 테헤란에 포함된 고대도시)에서 태어나 마군닷(Magundat)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후에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호스로 2세(Khosrau II, 590-628 재위) 왕의 군대에서 기병이 되어 614년 예루살렘 정복 전쟁에 참여했다.

호스로 2세는 이 전쟁에서 그리스도의 성 십자가(True Cross)를 빼앗아 사산왕조의 수도 크테시폰(Ctesiphon)으로 가져갔다. 성 십자가는 호스로 2세 퇴위 후 비잔틴 제국의 헤라클리우스(Heraclius) 황제와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돌려받았다.

이 기회에 그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었고, 그러한 관심은 조로아스터교를 믿던 그가 신앙의 회심을 체험하면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이끌어주었다.

그는 당시 예루살렘의 총대주교인 모데스투스(Modestus)에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하는 아나스타시우스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그리고 군대를 나와 예루살렘의 성 사바 수도원(Mar Saba)에 들어가 수도승이 되었다. 7년을 수도 생활에 정진한 후 그는 페르시아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카이사레아(Caesarea)로 갈 허락을 받았다.

그는 여기서 동료들에게 그들 종교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복음을 선포하다가 체포되어 중노동 형을 받았고,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수차례의 고문을 받으면서도 절대 굴복하지 않았다.

결국 성 아나스타시우스는 다른 70명의 그리스도인과 함께 유프라테스강 근처로 끌려갔다. 여기서 그는 그리스도교를 포기하면 호스로 2세 왕 곁에서 최고의 영예를 누리게 해주겠다는 유혹을 거부하고, 목 졸림 당해 죽음에 이른 후 참수당했다.

그의 시신은 개들에게 던져졌지만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고, 얼마 후 인근에 있는 성 세르기우스(Sergius) 수도원에 묻혔다.

그 후 그의 유해는 팔레스티나와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최종적으로 로마의 성 빈첸시오(Vincentius)와 성 아나스타시우스 성당에 안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오론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Oront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5년

 

 

오론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오론시우스, 오론티오, 오론티우스.

 

 

오론시오 자료

성 빈첸시오(Vincentius)와 성 오론티우스(또는 오론시오)는 프랑스 니스(Nice) 근교 시미에(Cimiez)에서 온 형제였다.

그들은 에스파냐쪽 피레네 산맥에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헤로나(Gerona) 지방의 푸이세르다(Puigcerda)에서 성 빅토로(Victor)와 함께 순교하였다.

그들의 시신은 그 후 프랑스의 앙브렁(Embrun)으로 옮겨졌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윌리엄 파텐슨

 

  • 가톨릭 성인 이름
    William Patenson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92년

 

 

윌리엄 파텐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굴리엘모, 빌리암, 빌헬름, 윌리암.

 

 

윌리엄 파텐슨 자료

영국 더럼(Durham) 출신인 윌리엄 파텐슨은 프랑스의 랭스(Reims)에서 수학하여 1587년에 사제가 되었으며 15개월 후에 영국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그는 주로 서부 지방을 다니며 선교했는데, 1591년 성탄절 직전에 런던(London)에서 체포되어 타이번(Tyburn)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1929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그는 빌리암 파텐슨으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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