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에 해당하는 여자세례명 로즈마리, 메히틸다, 베드로닐라, 카밀라 바티스타 바라노, 칸시아넬라, 총 5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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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5월 31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5가지
5월 31일 여자세례명 목록
1. 로즈마리
- 가톨릭 성인 이름
Rosemary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예수의 어머니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
로즈마리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로사 마리아, 로즈 마리, 마리아, 메리, 미르얌, 미리암.
로즈마리 자료
그리스도인은 세례 성사를 받을 때 새로운 이름(세례명)을 받는데,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났음을 의미한다. 세례 때에 성인의 이름을 자신의 수호자로 삼고 성인을 공경하는 풍습은 이미 고대 교회 때부터 시작되었다.
유아 세례 때 성인 순교자뿐만 아니라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사용해 그들을 본받고자 하였다. 오늘날 교회법 제855조는 세례명에 대해 간략하게 “부모와 대부모 및 본당 사목구 주임은 그리스도교적 감정에 어울리지 아니하는 이름을 붙이지 아니하도록 보살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세례명은 성인들이나 성경의 인물 또는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를 드러내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이는 성인의 이름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권에 상응하는 그리스도교적 정서와 의미를 지닌 여러 다른 이름도 사용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우리말의 ‘사랑’, ‘은총’, ‘구원’, ‘슬기’ 등도 가능하다. 다만 이런 경우 특정한 축일을 지정할 수 없기에 보통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을 그 축일로 택해 기념한다.
가톨릭교회 전통은 성모 마리아의 경우 마리아(Maria)라는 이름뿐만 아니라 그 의미상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거나 성모와 관련된 여러 명칭과 애칭들 또한 세례명으로 사용해 왔다. 일반적으로 성모 마리아는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을 그 축일로 기념하나 성모와 관련된 다른 축일이나 기념일을 정해 사용할 수도 있다.
장미(Rose)와 마리아(Maria)를 합친 로즈마리(Rosemary, Rose Marie)는 보통 계절적으로 적합하고 성모 성월의 마지막 날인 5월 3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을 축일로 정해 기념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메히틸다
- 가톨릭 성인 이름
Mechtilde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녀, 수녀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125-1160년 에델슈테텐
메히틸다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메크틸다, 메크틸드, 메히틸드, 메히틸디스, 메히틸트, 멕띨다, 멕틸다.
메히틸다 자료
독일 바이에른(Bayern) 지방 안덱스(Andechs)의 백작 베르톨트(Berthold)와 소피(Sophie)의 딸로 태어난 성녀 메히틸다(Mechtildis)는 불과 다섯 살 때부터 부모들이 그들의 영지인 디센(Diessen)에 세운 베네딕토회 수도원에서 자랐다. 수녀들에게 교육을 받은 성녀 메히틸다는 신심 깊고 모범적인 소녀로 자랐고, 기도와 고행 실천에도 열심이었다.
그녀의 약점은 성미가 급하고 말을 지나치게 빨리하는 것이었는데, 성장한 뒤에는 이 또한 완전히 극복하였다. 오히려 그녀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할 때가 많았고, 가끔 천사와 담화할 동안에만 입술을 움직일 뿐이었다고 한다.
1153년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 교구의 주교가 그녀를 에델슈테텐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하고 개혁 임무를 맡겼다. 그녀는 순종이 희생보다 뛰어나다는 말씀을 듣고 주어진 과업을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성취했다고 한다.
그녀는 또한 병자들을 치유하는 은사를 받았는데, 말 못 하는 이를 완쾌시키고 동료 수녀의 시력을 회복시키는 기적을 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녀는 자주 탈혼 상태에 빠졌고, 긴 시간 동안 계속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1160년 5월 31일 디센에서 선종한 성녀 메히틸다는 그 마을의 한 성당에 안치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그녀는 디센의 성녀 메히틸다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베드로닐라
- 가톨릭 성인 이름
Petronill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1년경 로마
베드로닐라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페트로닐라.
베드로닐라 자료
3세기경 로마의 동정 순교자인 성녀 베드로닐라에 관한 순교 행전이 없어서 정확히 언제 어떻게 순교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베드로 행전”, “필립보 행전”, 6세기에 작성된 행전, 그리고 기타 그노시스주의적인 작품에 따르면, 성녀 베드로닐라는 사도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의 딸이라고 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녀 베드로닐라가 자연사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네레우스와 아킬레우스의 수난기”(Passio SS. Nerei et Achillei)의 기록 때문인 듯하다. 이 수난기에 따르면, 성녀 베드로닐라는 사도 성 베드로의 딸로서 로마 귀족 플라쿠스(Flaccus)의 청혼을 거절한 후 3일 동안 단식하고 기도하던 중 죽음을 맞이했는데, 임종 전에 그리스도의 성체를 영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그녀의 무덤은 성녀 플라비아 도미틸라(Flavia Domitilla, 5월 12일) 지하 묘지에 있는 성 네레우스(Nereus)와 성 아킬레우스(Achilleus)의 무덤 곁에 있다고 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동정 순교자인 성녀 베드로닐라의 무덤이 로마의 아르데아티나 가도(Via Ardeatina) 가도에 있는 성녀 도미틸라의 지하 묘지에 있다고만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7세기경의 작품인 “여행기”(Itineraria)에 의하면, 아르데아티나 가도에 있는 성녀 도미틸라의 지하 묘지에 390~395년경에 세워진 대성당이 있었는데, 4세기경 성당 벽에 그린 벽화에 한 여인이 죽은 자를 천국으로 안내해 들어가는 장면과 ‘순교자 베드로닐라’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고 했다.
이러한 증언은 발굴 작업을 통해 사실로 확인되었다. 교황 성 시리키우스(Siricius, 384~399년 재위)의 재임 기간에 그녀의 무덤 위에 대성당이 세워졌으며, 525~526년에는 교황 요한 1세(Joannes I)의 지시로 성녀 도미틸라의 지하 묘지에 있는 대성당이 복원되었다고 한다.
8세기경 성녀 베드로닐라를 사도 베드로의 딸로 확신한 프랑크 왕국 피핀 3세의 요청으로 그녀의 유해가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 묘지로 이장되었다. 현재 성녀 베드로닐라의 제대는 사도 성 베드로 좌(座) 오른편의 둥근 천장 아래에 있다. 성녀 베드로닐라의 유해가 옮겨진 후 프랑스의 왕들은 이곳을 자신들의 경당(Capella regum Francorum)으로 여겼으며, 피핀으로 인해 적어도 16세기까지는 프랑스의 수호 성녀로 공경을 받았다.
성녀 베드로닐라의 순교 사실은 의문시되지만,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었다는 견해는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녀에 대한 공경 예식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시에나(Siena)와 독일 등에서도 거행되고 있다.
성녀 베드로닐라는 영국 중세 후기 유리화와 그림 등에 종종 사도 성 베드로에게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열쇠 꾸러미나 빗자루를 든 모습으로 등장하고, 상본에서는 종려나무 가지와 책을 들고 서 있는 작은 소녀로 묘사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카밀라 바티스타 바라노
- 가톨릭 성인 이름
Camilla Battista Varano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녀 - 활동 연도와 지역
1458-1524년
카밀라 바티스타 바라노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가밀라, 바띠스따.
카밀라 바티스타 바라노 자료
이탈리아 카메리노(Camerino)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 다 베라노(Julius Caesar da Verano) 왕자의 외동딸로 태어난 성녀 카밀라 바라노는 8살에서 10살 때쯤 레오네사의 도메니코(Domenico da Leonessa) 신부의 강론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 후 그녀는 도메니코 신부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내면서 자신의 영성생활에 진보를 가져왔다. 도메니코 신부가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하여 강론할 때는 수많은 군중이 몰려들었다.
어린 소녀 카밀라 바라노는 매주 금요일마다 구세주의 사랑을 묵상하고,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놀라운 영적 진보를 가져왔다. 그녀의 부친은 카밀라 바라노에게 라틴어를 비롯한 모든 학문을 가르쳤고 좋은 혼처 구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그녀는 오로지 회개생활에만 관심이 있었고 차츰차츰 수도생활을 열망하게 되었다. 1481년 그녀는 드디어 클라라회의 수녀복을 입고 수도명을 바티스타로 정하였다. 그 후 그녀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신비적인 계시를 받기 시작하였다. 장상의 명에 따라 글로 표현한 것이 “예수의 괴로운 마음의 고통”이란 책이다.
또한 그녀는 성령의 놀라운 은총에 관한 책을 썼으며, 수도회의 규칙에 따라 철저히 가난한 생활을 하였다. 그녀의 부친이 딸을 가까이 두고 싶어서 세운 카메리노 수도원은 클라라회의 영성의 산실 가운데 하나이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43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승인되었고, 2010년 10월 17일 마침내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칸시아넬라
- 가톨릭 성인 이름
Cantianell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칸시아넬라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간시아넬라, 간시아닐라, 간씨아닐라, 간티아닐라, 깐씨아넬라, 칸티아넬라.
칸시아넬라 자료
성녀 칸티아넬라(또는 칸시아넬라)와 성 칸티우스(Cantius)와 성 칸티아누스(Cantianus)는 모두 한 형제들로서 아니치이의 유명한 로마(Roma)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고아가 되었다. 고아원을 떠난 후에 그들은 로마에서 살면서 그리스도인 후견인을 만났다. 그 후견인이 바로 성 프로투스(Protus)인데 그들은 프로투스로부터 신앙을 전수받았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시작되자 그들은 노예를 해방시키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아퀼레이아(Aquileia)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그곳 역시 황제의 칙령이 엄격히 시행되고 있었다. 당국은 이들 젊은 귀족들의 도착을 알고서 신전에 희생을 드리도록 명하였다.
그들 형제는 참 하느님 외에는 어느 누구도 예배할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하고 자신들의 후견인인 프로투스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성녀 칸티아넬라는 칸티아닐라(Cantianilla)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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