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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남자세례명 4가지

피어나네 2023. 6. 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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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바오로, 베드로, 시로, 카시오, 총 4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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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6월 29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4가지

 

 

 

 

6월 29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바오로

  2. 베드로

  3. 시로

  4. 카시오

 

6월 29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4가지

 

 

1. 바오로

 

  • 가톨릭 성인 이름
    Pau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사도,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64/67년경

 

 

바오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울로, 빠울로, 빠울루스, 파울로, 파울루스, 폴.

 

 

바오로 자료

베냐민 지파에 속한 유대인이자 로마 시민권을 가졌던 사도 성 바오로(Paulus)는 당대의 유명한 유대인 랍비인 가믈리엘의 문하생으로 예루살렘에서 공부하였다. 그가 회심하기 전까지는 사울(Saul)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천막 만드는 일을 생업으로 삼던 그는 엄격한 바리사이로 그리스도교에 대한 열렬한 박해자였다. 그는 첫 순교자 스테파누스(Stephanus, 12월 26일) 부제의 순교 현장에도 있었다.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그는 그리스도의 환시를 체험하였다(34-36년 사이). 이 환시는 그의 극적인 개종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사도 9,1-22).

그 후 그는 3년 동안 아라비아에서 지낸 후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다마스쿠스로 돌아왔다. 그는 즉각 유다인들의 맹렬한 반발에 직면했고 그에 대한 위협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레타(Aretas) 왕의 총독이 바오로를 잡으려고 성문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밤을 이용하여 비밀리에 성벽을 타고 도시를 빠져나갔고, 39년경에 예루살렘에 가서 사도들을 만났으나 모두 그를 두려워하였다.

박해자였던 그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그는 사도 성 바르나바(Barnabas, 6월 11일)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유다인들이 계속해서 그를 없애려고 하자 타르수스(Tarsus)로 가서 몇 년을 지내다가 43년경 그를 찾아온 성 바르나바를 따라 안티오키아(Antiochia)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교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다(사도 11,25-26). 이것이 이방인을 상대로 하는 전교의 시초가 되었다.

45년경부터 성 바오로는 세 차례의 선교 여행을 하게 되었다. 45년부터 49년까지 그는 안티오키아 교회의 파견을 받고 성 바르나바와 함께 키프로스(Cyprus), 페르게,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리카오니아 지방의 이코니온과 리스트라에 가서 복음을 전했고, 이 여행에서 이름을 바오로로 개명했다.

첫 선교 여행을 마치고 49년경에 예루살렘에 온 그는 사도 성 베드로(Petrus)와 성 야고보(Jacobus) 및 다른 사도들을 설득하여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은 유다인처럼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음을 확신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교의 보편성 확립에 기여한 한편, 그의 이방인 선교를 예루살렘 교회가 인정하도록 하는 등 교회의 체제 면에서도 한층 더 진보된 단계를 맞이하였다.

안티오키아로 돌아온 직후 성 바오로와 성 바르나바는 제2차 선교 여행을 계획했다(49-52년). 제1차 선교 여행 중에 세운 교회 공동체를 재차 방문하고자 했는데, 요한 마르코(Joannes Marcus)를 동반하려는 성 바르나바와 의견 차이가 생겨 서로 갈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성 바르나바는 요한 마르코를 데리고 키프로스로 떠났고, 성 바오로는 성 실라스(Silas, 7월 13일)와 함께 시리아와 킬리키아의 여러 곳을 두루 다녔다(사도 15장). 성 바오로는 마케도니아를 가로질러 가서 최초로 유럽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는 필리피(Philippi), 테살로니카(Thessalonica), 베레아(Berea)에 교회를 세웠으나, 아테네(Athenae)에서는 ‘알지 못하는 신’을 비판하는 ‘아레오파고스’에서의 설교로 다소 효과를 내었을 뿐 신통한 열매를 맺지는 못했다.

그 후 안티오키아 교회로 돌아온 그는 다시 제3차 선교 여행을 계획했으나(53-58년), 2년 동안은 코린토스(Corinthos) 교회를 위하여 헌신했고, 에페수스(Ephesus)에서는 데메트리오스라는 은장이와의 사건으로 유명했다.

58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그는 성 야고보를 만나 보았고, 이레 동안의 정결 기간이 거의 끝날 무렵 유다인들에게 곤욕을 치르다가 출동한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사도 21,27-36). 이때 그는 자기의 개종 과정과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경위를 설명하고 로마 시민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여러 차례 심문을 받은 그는 황제에게 상소하여 60-61년 사이에 몰타(Malta) 연안을 따라 로마(Roma)까지 가서 가택 연금 상태로 지내며 비교적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로마의 클레멘스(Clemens)에 따르면 그 후 그는 에페수스, 마케도니아, 그리스 등지를 재차 방문했고(63-67년), 트로아스에서 또다시 체포되어 로마로 끌려가서 사도 베드로와 같은 날에 처형되었다고 한다(에우세비우스의 견해). 테르툴리아누스에 의하면 그는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사도 성 바오로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그리스도교 저술가로 꼽힌다. 로마서(코린토스에서 57-58년), 코린토 1서(에페수스에서 54년), 코린토 2서(필립비에서 57년), 갈라티아서(에페수스에서 54년), 콜로새서, 필리피서, 에페소서, 필레몬서(로마에서 61-63년), 테살로니카1 · 2서(코린토스에서 51-52년) 및 사목서간인 티모테오서와 티토서를 써서 보냈다.

히브리서는 아마도 다른 저자인 듯하다. 성 바오로의 공식 축일은 성 베드로와 함께 6월 29일이고, 1월 25일은 그의 회심(개종)을 기념하는 축일로 지낸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베드로

 

  • 가톨릭 성인 이름
    Peter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사도, 순교자, 교황

  • 활동 연도와 지역
    +64년경

 

 

베드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베드루스, 페드로, 페트루스, 피에르, 피에트로, 피터.

 

 

베드로 자료

갈릴래아 지방 티베리아 호수(갈릴래아 호수)에 인접한 마을인 벳사이다 출신의 사도 성 베드로(Petrus)는 요한(Joannes)의 아들로 시몬이라 불리며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다. 

공관복음에 따르면, 그는 동생인 성 안드레아(Andreas, 11월 30일)와 함께 고기를 잡다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17) 하며 부르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물을 버리고 바로 따라나섰다. 

요한복음은 세례자 성 요한(6월 24일)의 제자였던 성 안드레아의 인도로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아갔고, 예수님으로부터 ‘케파(Kefa)’, 즉 ‘베드로’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다고 전한다(1,35-42).

그는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베푼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기적과 카파르나움에서 자신의 장모가 치유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활에 늘 가까이서 함께했다.

예수님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갔을 때 베드로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는 물음에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라고 고백했다.

이에 주님께서는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으로 가톨릭교회는 사도 성 베드로가 예수님께 수위권을 받은 첫 번째 교황이 되었다고 이해하고 있다. 성 베드로는 다른 어느 사도들보다 복음서에 자주 언급되며, 그리스도의 주요 행적에도 항상 함께했다. 그는 예수님께서 체포되시자 대사제의 관저까지 몰래 따라갔다가 사람들의 질문에 그리스도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다가 참회한 사실도 있다(루카 22,54-62).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에 앞서 제자들에게 발현하셨을 때, 성 베드로는 “내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5-19)라고 당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래서 사도 성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신자들의 으뜸으로서 초대교회를 이끌며 배신자 유다(Judas)의 후계자를 임명했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첫 번째 사도이자 기적을 행한 첫 사도였으며, 오순절 설교 등을 통해 많은 사람을 개종시킨 사도였다.

성 베드로는 43년경에 헤로데 아그리파에 의해 투옥되었으나 천사의 인도를 받아 피신하였고(사도 12,1-19),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다른 민족들도 복음 말씀을 듣고 은총으로 구원을 받기를 원하신다고 강조하였다(사도 15,7-11).

초기 전승에 의하면, 그 후 사도 성 베드로는 로마(Roma)로 가서 그곳의 초대 주교가 되었고,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벌어진 64년경 바티칸 언덕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다.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똑바로 매달릴 자격조차 없는 죄인이기에 선택한 방법이었다.

오늘날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은 그의 무덤 위에 건립되었던 성전 터에 세워졌다. 순교 직전에 성 베드로는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려다가 아피아 가도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과 마주쳤다고 한다.

성 베드로가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Domine?)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네가 양 떼를 버리고 도망친 로마로 간다.”고 대답하셨다. 주님의 발현을 체험한 성 베드로는 곧바로 로마로 돌아가 용감하게 순교했다고 한다.

교회 미술에서 사도 성 베드로는 배, 열쇠, 닭 등 전통적 상징들과 함께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사도 성 바오로(Paulus)와 함께 기념하는 6월 29일 축일 외에도, 2월 22일을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로 지내고 있다. 이날은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 베드로 사도를 선택하시어 당신의 지상 대리자로 삼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시로

 

  • 가톨릭 성인 이름
    Syr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380년 제노바

 

 

시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시루스.

 

 

시로 자료

성 시루스(또는 시로)는 이탈리아 제노바의 주교로 그 도시의 수호성인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카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Cass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38년 나르니

 

 

카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가시오, 가시우스, 까씨오, 까씨우스, 카시우스.

 

 

카시오 자료

성 카시우스(또는 카시오)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고 교황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의 전기 속에 조금 나오고 있다. 그레고리우스의 “대화” 속에서 나르니의 카시우스 주교의 덕이 매우 뛰어났고, 특히 교구민 사목이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남다른 자비심은 놀라울 정도였다고 찬양하고 있다.

카시우스는 성 베드로(Petrus)와 바오로(Paulus) 축일에 로마(Roma)에서 운명하였다. 그런데 그는 로마에서 죽기를 늘 기도하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는 매년 성 베드로와 바오로 축일 전야에 이 도시를 순례하였는데, 여섯 번이나 허사로 끝나고 일곱 번째 그의 소원이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여기서 미사를 봉헌하고 신자들에게 성체를 영해 준 뒤에 평화롭게 영면하였다. 로마를 향한 그의 열정에 대하여 하느님이 보상하신 것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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