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세례명 바울리나는 빠울리나, 뽀리나, 파울리나, 포리나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천주교 여자세례명 바울리나 4분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바울리나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본받고 싶은 바울리나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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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리나
천주교 여자세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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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리나 여자세례명 목록
- 바울리나 (3월 14일)
- 바울리나(고통 받는 예수 성심의) (7월 9일)
- 바울리나 (12월 2일)
- 바울리나 (12월 31일)
1. 바울리나
- 세례명 축일
3월 14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Paulina - 신분과 직업
과부 - 활동 연도와 지역
+1107년 젤
바울리나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빠울리나, 뽀리나, 파울리나, 포리나.
바울리나 이야기
독일의 공작부인이었던 성녀 바울리나는 남편이 죽은 뒤에 그녀의 아들인 베르너(Werner)와 함께 젤에 파울린젤레(Paulinzelle)로 알려진 남녀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녀는 1107년 독일에서 선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바울리나 (고통 받는 예수 성심의)
- 세례명 축일
7월 9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Pauline of the Agonizing Heart of Jesus - 신분과 직업
설립자, 수녀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865–1942년
바울리나(고통 받는 예수 성심의)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비신타이네르, 빠울리나, 뽀리나, 아고니잔테, 아마빌레, 코라카오, 파울리나, 포리나.
바울리나(고통 받는 예수 성심의) 이야기
고통 받는 예수 성심의 성녀 바울리나(Paulina do Coracao Agonizante de Jesus)는 1865년 12월 16일 이탈리아 북부 트렌토(Trento) 지방의 비골로 바타로(Vigolo Vattaro)에서 아버지 안토니오 나폴레오네 비신타이네르(Antonio Napoleone Visintainer)와 어머니 안나 피아네체르(Anna Pianezzer)의 딸로 태어나 아마빌레 루치아 비신타이네르(Amabile Lucia Visintainer)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 지역의 다른 모든 사람처럼 그녀의 부모 역시 가톨릭 신자로서 열심히 살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1875년 9월에 그녀의 가족은 다른 많은 사람과 함께 트렌토에서 브라질의 산타 카타리나(Santa Catarina) 주(洲)로 이주하여 오늘날의 노바 트렌토(Nova Trento) 지역에 속한 곳에 비골로(Vigolo) 마을을 건설하였다.
12살 무렵에 첫영성체를 한 아마빌레는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병자를 방문하며 비골로 성당을 청소하는 등 다양한 본당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1890년 7월 12일 아마빌레와 그녀의 친구인 비르지니아 로사 니콜로디(Virginia Rosa Nicolodi)는 암으로 고통 받는 한 여성을 돌보기 시작했는데, 이로써 쿠리티바(Curitiba)의 주교인 호세 데 카마르고 바로스(Jose de Camargo Barros) 주교의 승인을 받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가 시작되었다.
그해 12월 아마빌레는 첫 동료인 비르지니아 로사 니콜로디와 테레사 안나 마울레(Teresa Anna Maule)와 함께 서원을 발하며 고통 받는 예수 성심의 바울리나(Pauline of the Agonizing Heart of Jesus)라는 수도명을 선택했다.
초대 원장이 된 성녀 바울리나와 동료 자매들의 거룩한 생활과 사도적 열정은 가난하고 불편한 생활 여건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소자를 이끌어 들였다. 1903년 종신 총원장으로 선출된 그녀는 상파울로(Sao Paulo)의 이피랑가(Ipiranga)에 사는 고아들과 노예 출신 아이들 그리고 늙고 소외된 노예들을 돌보기 위해 노바 트렌토를 떠났다.
1909년 성녀 바울리나는 상파울로의 대주교 두아르테 레오폴도 에 실바(Duarte Leopoldo e Silva)의 지시로 총원장 직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수녀로 돌아가 더는 수녀회의 어떠한 주요 직책을 맡지 않고 산타 카사(Santa Casa)의 병자들과 브라간사 파울리스타(Braganca Paulista)에 있는 성 빈첸시오 드 폴 병원에서 노인들을 돌보도록 파견되었다.
이는 다년간의 기도와 노동과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었으나 그녀는 이 모든 것을 수녀회를 위해 순명으로 받아들이고 인내했다. 1918년 두아르테 대주교의 승인을 받고 빈첸시아 테오도라(Vincencia Teodora) 총원장 수녀는 그녀를 이피랑가의 본원으로 모셔왔고, 그녀는 그곳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머물며 기도와 병약한 수녀들을 사랑으로 돌보면서 조용한 삶을 살았다.
1940년 7월 12일 수녀회 설립 50주년 기념식 중에 성녀 바울리나는 겸손하게 살며 어떠한 역경 중에도 용기를 잃지 말고 하느님께 충실할 것을 당부하는 영적 담화를 남겼다. 1938년 이후 당뇨로 인해 두 번의 수술을 받으면서 시력을 잃고 오른쪽 팔도 절단해야 했다.
심각한 건강 문제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인내하며 지낸 성녀 바울리나는 1942년 7월 9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도 선종하였다.
브라질 가톨릭교회의 첫 번째 성인인 그녀는 1991년 10월 18일 브라질의 산타 카타리나 주의 플로리아노폴리스(Florianopolis)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2년 5월 19일 같은 교황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인품에 올랐다. 그녀는 파울리나 도 코라카오 아고니잔테 데 헤수스(Paulina do Coracao Agonizante de Jesu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바울리나
- 세례명 축일
12월 2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Paulina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6년경
바울리나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빠울리나, 뽀리나, 파울리나, 포리나.
바울리나 이야기
이탈리아 로마(Roma)에서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 신부와 성 마르첼루스(Marcellus) 부제, 그리고 성 히폴리투스(Hippolytus), 성 막시무스(Maximus), 성 아드리아(Adria), 성녀 바울리나, 성 네온(Neon), 성녀 마리아(Maria), 성녀 마르타나(Martana), 성녀 아우렐리아(Aurelia)는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체포되어 세쿤디아누스(Secundianus) 재판관에게 죽기까지 모진 고문을 받고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성 에우세비우스, 성 마르첼루스, 성 네온, 성녀 마리아는 참수형을, 성녀 아드리아와 성 히폴리투스는 채찍형을, 성녀 바울리나는 고문실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성 막시무스는 티베르(Tiber) 강으로 던져지는 익사형을 받아 순교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바울리나
- 세례명 축일
12월 31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Paulina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바울리나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빠울리나, 뽀리나, 파울리나, 포리나
바울리나 이야기
성녀 도나타(Donata)와 성녀 바울리나, 성녀 루스티카(Rustica), 성녀 노미난다(Nominanda), 성녀 세로티나(Serotina), 성녀 힐라리아(Hilaria)와 동료 신자들은 로마의 여인들로 로마제국의 초기 박해 중에 순교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살라리아(Salaria) 가도에 있는 카타콤바에 안장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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