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일에 해당하는 여자세례명 베르틸리아, 제노베파 총 2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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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1월 3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2가지
1월 3일 여자세례명 목록
1. 베르틸리아
- 가톨릭 성인 이름
Bertili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과부 - 활동 연도와 지역
+705년 마레이유
베르틸리아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베르띨리아.
베르틸리아 자료
성녀 베르틸리아는 원래 아라스(Arras) 교구의 귀족 집안 출신으로 젊어서부터 자선활동에 전념하면서 한생을 살았다.
그녀는 성 발베르투스(Walbertus, 5월 11일)와 결혼한 후에도 계속하여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돕는 생활을 하였다. 남편이 일찍 죽자 그녀는 아라스 교구의 마레이유에서 은둔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나중에 성당까지 지었다.
그녀는 모뵈주(Maubeuge)의 성녀 알데군디스(Aldegundis, 1월 30일)와 모두 성인이 된 네 명의 자녀를 둔 성녀 발데트루디스(Waldetrudis, 4월 9일)의 어머니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제노베파
- 가톨릭 성인 이름
Genevieve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수녀 - 활동 연도와 지역
419/422?-512년 파리
제노베파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게노베바, 게노베파, 제노베바, 제느비에브, 주느비에브, 즈느비에브.
제노베파 자료
성녀 제노베파(Genovefa)는 419년 혹은 422년 파리에서 멀지 않은 작은 마을 낭테르(Nanterre)에서 태어났다. 성녀의 부모는 가난한 농부였다고 하지만, 부유하고 존경받는 도시 사람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녀의 전기에 따르면 429년에 오세르(Auxerre)의 성 게르마누스(Germanus, 7월 31일)를 만났다. 이때 성 게르마누스는 펠라기우스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성 루푸스(Lupus, 7월 29일)와 함께 영국으로 파견되어 가는 도중이었다.
성 게르마누스는 설교 도중 어린 여자 아이가 경건하고 진지한 자세로 듣는 모습을 보고, 설교가 끝난 뒤 여자 아이를 불러 여러 가지를 물은 뒤 성덕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라고 격려하였다.
그러나 낭테르 근처에는 수녀원이 없었기에 성녀 제노베파는 집에 머물면서 기도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런데 성녀 제노베파가 언제 수도자가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성 게르마누스가 사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녀에게 수도복을 입혀 주었다고도 하고, 16세 무렵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두 명의 동료와 함께 파리의 주교 빌리쿠스(Vilicus)에게서 수도복을 받았다고도 한다.
어쨌든 그녀는 부모가 돌아가자 곧 파리로 가서 대모와 함께 머물며 자선과 금욕의 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주변에는 시기하는 사람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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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성녀 제노베파가 신성을 모독하는 위선자라고 비난했다. 또한 성녀 제노베파가 환시를 자주 체험하자, 그녀의 환시와 예언을 기만과 사기로 취급했다.
그러나 성 게르마누스의 중재와 지원으로 반대자들의 음모는 모두 무위로 돌아갔고, 파리의 주교는 그녀에게 파리에 살며 수도생활을 원하는 처녀들을 돌보는 임무를 맡겼다.
451년 훈족의 왕인 아틸라(Atila)가 쳐들어와 파리를 위협하자, 주민들은 모두 피난 준비를 서둘렀다. 이때 성녀 제노베파는 하느님을 믿고 용기를 가지라고 격려하면서 회개와 보속을 하면 파리는 안전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믿었고, 아틸라의 군대는 오를레앙(Orleans)에서 패배하였다.
몇 해 뒤 프랑크족의 왕인 메로비히(Merowig)가 파리를 점령했을 때 성녀 제노베파의 자선과 희생은 더욱 빛났다. 그녀는 굶어 죽어가는 시민들에게 음식을 날라 주고, 점령자를 설득하여 포로 석방을 교섭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영향을 받은 메로비히와 후계자인 아들 힐데리히 1세는 파리 시민들을 특별히 관대하게 대했다. 특히 힐데리히 1세는 파리의 초대주교이자 순교자인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 10월 9일)의 무덤 위에 성당을 짓게 하였다.
또 메로비히의 손자인 클로비스 1세를 설득하여 파리에 성 베드로(Petrus)와 성 바오로(Paulus)를 기념하는 성당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성당이 완공되자 그녀의 유해는 성당에 안치되었고, 이 성당은 이후 그녀의 프랑스어 이름대로 주느비에브(Genevieve) 성당이라고 불렸다.
성녀에 대한 신심은 많은 기적을 낳았다. 834년 홍수가 일어나 파리가 완전히 침수되는 위기에 놓였을 때 성녀에게 전구하여 이 위험에서 벗어났다.
1129년에 열병으로 만 사천 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 성녀를 기리는 행렬 도중 병마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녀는 파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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