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일에 해당하는 여자세례명 바울리나(고통 받는 예수 성심의), 베로니카 지울리아니, 에베릴다, 요안나 스코펠리, 총 4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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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 남자세례명 고데프리도 (1512-1572년), 고데프리도 (1502-1572년), 고르넬리오, 니카시오, 니콜라오 얀센 포펠, 니콜라오 피크, 레오 이냐시오 만진, 레오나르도 베첼, 베드로, 베드로 산즈, 브릭시오, 빌레하도, 아드리아노 포테스큐, 아우구스티노 자오룽, 아우닥스, 안드레아 바우터, 안토니오 (1523-1572년), 안토니오 (+1572년), 알렉산데르, 야고보 라콥, 예로니모, 요아킴 로요 페레스, 요한 (+1572년), 요한 (1504-1572년), 요한 알코버 피구에라, 제노, 치릴로, 코프레, 테오도로, 파테르무시오, 프란치스코 데 카필라스, 프란치스코 디아스, 프란치스코 레지 클레, 프란치스코 로예, 프란치스코 세라노, 하드리아노 총 36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7월 9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4가지
7월 9일 여자세례명 목록
1. 바울리나(고통 받는 예수 성심의)
- 가톨릭 성인 이름
Pauline of the Agonizing Heart of Jesus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설립자, 수녀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865–1942년
바울리나(고통 받는 예수 성심의)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비신타이네르, 빠울리나, 뽀리나, 아고니잔테, 아마빌레, 코라카오, 파울리나, 포리나.
바울리나(고통 받는 예수 성심의) 자료
고통 받는 예수 성심의 성녀 바울리나(Paulina do Coracao Agonizante de Jesus)는 1865년 12월 16일 이탈리아 북부 트렌토(Trento) 지방의 비골로 바타로(Vigolo Vattaro)에서 아버지 안토니오 나폴레오네 비신타이네르(Antonio Napoleone Visintainer)와 어머니 안나 피아네체르(Anna Pianezzer)의 딸로 태어나 아마빌레 루치아 비신타이네르(Amabile Lucia Visintainer)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 지역의 다른 모든 사람처럼 그녀의 부모 역시 가톨릭 신자로서 열심히 살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1875년 9월에 그녀의 가족은 다른 많은 사람과 함께 트렌토에서 브라질의 산타 카타리나(Santa Catarina) 주(洲)로 이주하여 오늘날의 노바 트렌토(Nova Trento) 지역에 속한 곳에 비골로(Vigolo) 마을을 건설하였다. 12살 무렵에 첫영성체를 한 아마빌레는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병자를 방문하며 비골로 성당을 청소하는 등 다양한 본당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1890년 7월 12일 아마빌레와 그녀의 친구인 비르지니아 로사 니콜로디(Virginia Rosa Nicolodi)는 암으로 고통 받는 한 여성을 돌보기 시작했는데, 이로써 쿠리티바(Curitiba)의 주교인 호세 데 카마르고 바로스(Jose de Camargo Barros) 주교의 승인을 받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가 시작되었다.
그해 12월 아마빌레는 첫 동료인 비르지니아 로사 니콜로디와 테레사 안나 마울레(Teresa Anna Maule)와 함께 서원을 발하며 고통 받는 예수 성심의 바울리나(Pauline of the Agonizing Heart of Jesus)라는 수도명을 선택했다. 초대 원장이 된 성녀 바울리나와 동료 자매들의 거룩한 생활과 사도적 열정은 가난하고 불편한 생활 여건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소자를 이끌어 들였다. 1903년 종신 총원장으로 선출된 그녀는 상파울로(Sao Paulo)의 이피랑가(Ipiranga)에 사는 고아들과 노예 출신 아이들 그리고 늙고 소외된 노예들을 돌보기 위해 노바 트렌토를 떠났다.
1909년 성녀 바울리나는 상파울로의 대주교 두아르테 레오폴도 에 실바(Duarte Leopoldo e Silva)의 지시로 총원장 직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수녀로 돌아가 더는 수녀회의 어떠한 주요 직책을 맡지 않고 산타 카사(Santa Casa)의 병자들과 브라간사 파울리스타(Braganca Paulista)에 있는 성 빈첸시오 드 폴 병원에서 노인들을 돌보도록 파견되었다. 이는 다년간의 기도와 노동과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었으나 그녀는 이 모든 것을 수녀회를 위해 순명으로 받아들이고 인내했다.
1918년 두아르테 대주교의 승인을 받고 빈첸시아 테오도라(Vincencia Teodora) 총원장 수녀는 그녀를 이피랑가의 본원으로 모셔왔고, 그녀는 그곳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머물며 기도와 병약한 수녀들을 사랑으로 돌보면서 조용한 삶을 살았다.
1940년 7월 12일 수녀회 설립 50주년 기념식 중에 성녀 바울리나는 겸손하게 살며 어떠한 역경 중에도 용기를 잃지 말고 하느님께 충실할 것을 당부하는 영적 담화를 남겼다.
1938년 이후 당뇨로 인해 두 번의 수술을 받으면서 시력을 잃고 오른쪽 팔도 절단해야 했다. 심각한 건강 문제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인내하며 지낸 성녀 바울리나는 1942년 7월 9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도 선종하였다.
브라질 가톨릭교회의 첫 번째 성인인 그녀는 1991년 10월 18일 브라질의 산타 카타리나 주의 플로리아노폴리스(Florianopolis)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2년 5월 19일 같은 교황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인품에 올랐다. 그녀는 파울리나 도 코라카오 아고니잔테 데 헤수스(Paulina do Coracao Agonizante de Jesu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베로니카 지울리아니
- 가톨릭 성인 이름
Veronica Giuliani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수녀원장, 신비가 - 활동 연도와 지역
1660-1727년
베로니카 지울리아니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베로니까, 베로니카, 율리아니.
베로니카 지울리아니 자료
이탈리아 우르비노(Urbino)의 메르카텔로(Mercatello) 출신인 성녀 베로니카 지울리아니는 우르술라(Ursula)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는데, 어릴 때부터 신심생활에 매력을 느끼고 수도생활을 꿈꾸었다.
그래서 결혼하라는 부친의 권유를 끝까지 물리치고 1677년에 치타디카스텔로(Citta di Castello)의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베로니카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녀는 이때부터 그리스도의 수난을 체험하기 시작하여 1697년에 오상을 받았다. 치타디카스텔로의 주교가 개인적으로 조사한 결과 그녀의 오상은 진실하다고 선언하였다. 그녀는 관상생활과 활동을 잘 조화시켰고 34년 동안이나 수련장직을 맡았으며, 1716년에는 원장으로 선출되어 죽을 때까지 책임을 다 하였다.
성녀 베로니카는 여러 가지 초자연적 은혜를 받은 18세기의 위대한 신비가로 유명하다. 그녀는 1804년 복자품에 올랐고, 1839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에베릴다
- 가톨릭 성인 이름
Everildis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수녀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700년경
에베릴다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버릴다.
에베릴다 자료
성녀 에베릴다(Everildis)는 웨식스(Wessex)의 국왕 시네질스가 개종할 즈음에 함께 세례를 받은 어느 귀족의 딸이다. 그녀는 세례를 받은 후부터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고 더욱 완전하게 봉사하기 위하여 집을 떠나 수녀원을 찾아다녔다. 이럴 즈음에 그녀는 베가(Bega)와 울프레다(Wulfreda)라 부르는 두 처녀를 만나 요크(York)로 갔다.
그곳에는 성 발프리두스(Walfridus the younger)가 있었는데, 그는 이 처녀들에게 주교의 농장이라 부르는 땅을 주고 수덕생활에 전념토록 배려하였다. 특히 에베릴다는 올바른 복음 정신으로 뛰어난 경지에 도달하여 완덕을 닦았다는 말을 들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요안나 스코펠리
- 가톨릭 성인 이름
Jane Scopelli - 호칭 구분
복녀 - 신분과 직업
동정녀 - 활동 연도와 지역
1428-1491년 레지오 에밀리아
요안나 스코펠리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요한나, 잔, 잔느, 쟌, 제인, 조반나, 조안, 조안나, 조한나, 지아나, 지안나, 지오바나, 지오반나, 후아나.
요안나 스코펠리 자료
이탈리아 북부 레지오 에밀리아에서 태어난 요안나 스코펠리(Joanna Scopelli)는 수녀가 되고 싶었으나 부모의 허락을 받지 못하자 스스로 수녀복을 입고 집에서 수녀생활을 시작하였다.
부모가 사망하자 그녀는 자유롭게 되어 모든 유산을 자선활동에 기부하고, 자신은 끊임없이 일함으로써 마침내 자신의 수도원을 세우고 원장이 되었다.
여러모로 매우 바빴지만 그녀는 하루에 5시간이나 개인기도에 할애하고, 연중 단식재를 지키며, 성 십자가 축일부터 부활절까지는 빵과 물로만 연명하였다.
또한 그녀는 치유의 은사를 받아 의사들이 포기한 율리아 세시라는 귀부인을 완쾌시켰다. 그녀는 63세의 나이로 운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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