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8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데메트리오, 빈첸시오, 살비오, 시몬, 유다 타대오, 치릴로, 파로, 페루시오, 피델리스, 호노라토, 총 10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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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10월 28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0가지
10월 28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데메트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Demetr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651-1709년 로스토프
데메트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데메뜨리오, 데메뜨리우스, 데메트리우스.
데메트리오 자료
성 데메트리우스(또는 데메트리오) 혹은 드미트리 툽탈로는 어느 부유한 코사크족의 아들로서 수도사제가 되었다. 그는 1702년에 로스토프의 주교로 임명되기 전에 이미 두 수도원의 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그는 탁월한 설교가였다. 특히 그는 정치권력으로부터 교회의 독립을 제창하였다.
또한 그는 활동적인 교육가이자 학자였으며 일생동안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는 서방 교회의 표상이 될 만한 성인들의 전기를 썼고, 신앙적인 드라마와 시 그리고 신심적이며 교육적인 글을 수 없이 남긴 위대한 저술가였다.
이런 저술 속에는 양들에 대한 목자의 의무를 역설한 “영적인 알파벳”도 포함되어 있다. 성인은 짧게 강론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내용은 짧으나 심금을 울림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문필가로서의 그의 영향은 러시아 종교문학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고 인정되며, 아름다운 신앙 시를 포함하는 “일기”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빈첸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Vincent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경
빈첸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뱅상, 빈센트, 빈첸시우스, 빈첸티오, 빈첸티우스, 빈켄티오, 빈켄티우스, 원선시오.
빈첸시오 자료
전설적 이야기에 따르면, 성 빈첸시오(Vincentius)는 에스파냐 중서부에 살던 젊은 그리스도인이었다. 그 당시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통치 기간으로 그 지방을 다스리던 다키아누스 총독은 황제의 명에 따라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를 시행하고 있었다.
총독 앞에 끌려간 성 빈첸시오는 과거의 우상숭배가 아닌 진정한 종교, 바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모든 배교 요청을 거부한다고 당당히 말했다.
결국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감금되었으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의 용맹한 삶과 믿음에 감동한 경비병들이 개종하고 그의 자매인 성녀 사비나(Sabina)와 성녀 크리스테타(Christeta)의 도움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들은 톨레도(Toledo) 서쪽 탈라베라데라레이나(Talavera de la Reina)에서 아빌라(Avila)로 도망가다가 체포되어 채찍과 몽둥이로 맞고 감금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27일 목록에서 그들이 참혹한 고문을 받고 아빌라에서 순교했음을 전해주었다. 그들은 먼저 고문대에 묶여 팔다리가 부러지고 빠지도록 당기는 고통을 당한 후 머리 위에 무거운 돌을 얹고 머리가 깨지도록 충격을 주어 순교했다고 한다.
그들의 시신은 무거운 돌과 바위에 묻혔고, 나중에 그들의 무덤 위에 대성당이 지어졌다. 1062년에 그들의 유해가 부르고스(Burgos)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으로 옮겨졌다가 1175년 다시 아빌라로 돌아왔고, 그들의 유해 위에 새로운 대성당 건축을 시작해 14세기에 완성되었다.
그 성당이 바로 오늘날 아빌라에 있는 성 빈첸시오 대성당(Basilica of San Vicente)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아빌라의 순교자로 공경받고 있는 이들의 축일을 10월 28일로 옮겨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살비오
- 가톨릭 성인 이름
Salv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6세기경? 노르망디
살비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살비우스, 세르, 쌀비오, 쌀비우스.
살비오 자료
성 살비우스(또는 살비오)의 생애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나, 프랑스 노르망디의 브레이 숲 속에 살던 뛰어난 은수자임에는 틀림없다. 세르(Saire)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시몬
- 가톨릭 성인 이름
Simo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사도,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시몬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사이먼.
시몬 자료
예수님에 의해 열두 제자의 한 명으로 뽑힌 성 시몬은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열혈당원’으로 소개될 뿐 그의 출신이나 행적에 대해서는 기록된 것이 없다(마태 10,4; 마르 3,18; 루카 6,15; 사도 1,13).
열혈당원은 로마 제국과 그 동조자들에게 무력으로라도 대항해서 유다의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고 믿고 행동하던 사람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로마 제국에 협조했던 성 마태오(Matthaeus, 9월 21일)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에 대항했던 극단주의자 성 시몬까지도 제자로 맞아들여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시는 당신의 뜻을 보여주셨다.
교회 전승 또한 그의 신원에 대해 확실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를 잡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거나 예수님의 첫 기적이 이루어진 카나의 혼인 잔치의 주인공 신랑이었다거나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처음 천사에게 전해 들은 목자 중 한 사람이었다는 전승도 있다.
서방 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성 시몬은 이집트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성 유다 타대오(Judas Thaddaeus)와 함께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 활동했고, 페르시아(Persia)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고 한다.
페르시아에서 이교도의 사제와 예언자들과 논쟁하다가 그들의 신상을 무너뜨려 처형되었는데, 성 시몬은 십자가형이나 톱으로 몸이 잘려 순교했고, 성 유다 타대오는 창에 찔리거나 도끼로 참수형을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 미술에서 성 시몬을 표현할 때 보통 큰 톱이나 십자가가 주로 등장한다.
동방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카이사레아(Caesarea)의 성 대 바실리우스(Basilius, 1월 2일)는 성 시몬이 에데사(Edessa)에서 평화로이 선종했고, 그의 무덤과 그에게 봉헌된 성당이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코카서스 산맥 서쪽의 니코피우스(Nicopius)에 있다고 한다.
서방 교회는 성 시몬과 성 유다 타대오가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는 전승에 따라 8세기 이후 그들의 축일을 10월 28일 같은 날에 기념하고 있다. 동방 교회는 성 시몬의 축일을 5월 10일에 기념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유다 타대오
- 가톨릭 성인 이름
Jude Thaddae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사도,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유다 타대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다대오, 다두, 유다스, 주다스, 주드, 타대우스, 타데오, 타데우스.
유다 타대오 자료
예수님에 의해 열두 사도로 뽑힌 제자 중에는 유다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둘 있다. 루카 복음 6장 16절에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 나온다.
마르코 복음과 마태오 복음의 열두 사도 명단에는 유다 대신 ‘타대오’(마르 3,18; 마태 10,3)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이는 유다 이스카리옷과 구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사실 예수님 시대에 한 사람이 유다식 이름과 그리스식 이름을 동시에 갖는 일이 흔했다. 따라서 유다(Judas)의 그리스식 이름이 타대오(Thaddaeus)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이유로 사도 성 유다는 자연스럽게 ‘유다 타대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에 따르면, 사도 성 유다는 신약성경에 있는 유다 서간의 저자와 같은 인물로 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야고보의 동생인 유다가 부르심을 받은 이들, 곧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랑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켜 주시는 이들에게 인사합니다.”(유다 1,1)
이에 따르면 그는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친척 형제 중 한 명이 된다(마르 6,3; 마태 13,55). 그는 또한 팔레스티나를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성서학자들은 가톨릭 서간 중 하나인 유다서 1장 1절에 나오는 유다가 예수님의 열두 사도에 속한 유다이지만 유다 서간의 저자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사도 성 유다의 이름을 빌려 익명의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을 전하려 쓴 ‘가명 서간’으로 보고 있다.
초기 문헌인 “시몬과 유다의 수난기”에 따르면, 성 유다 타대오는 성 시몬(Simon)과 함께 시리아와 소아시아를 여행하면서 복음을 전했고, 페르시아(Persia)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고 한다.
페르시아에서 이교도의 사제와 예언자들과 논쟁하다가 그들의 신상을 무너뜨려 처형되었는데, 성 유다 타대오는 창에 찔리거나 도끼로 참수형을 당했고 성 시몬은 십자가형이나 톱으로 몸이 잘려 순교했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 미술에서 성 유다 타대오를 표현할 때 보통 창(미늘창) 또는 도끼, 그 외에 고문 도구였던 곤봉이 많이 등장한다.
그 외에도 성 유다 타대오는 성령 강림 때 다른 사도들과 함께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이마에 불꽃 모양의 성령을 표시하거나(사도 1,13) ‘에데사의 성화’로 알려진 예수님 이콘인 ‘만딜리온’(천 위에 새겨진 것)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표현된다.
이는 예수님 시대 에데사 왕국의 아브가르 왕의 치유 기적과 관련 있는데, 예수님에 의해 파견된 일흔두 제자(루카 10,1-12) 중 하나인 타대오와 성 유다 타대오가 혼동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 오류가 발견되었을 무렵 성인의 가슴에 만딜리온을 그리는 유행은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
서방 교회에서는 성 시몬과 성 유다 타대오가 함께 순교했다는 전승에 따라 8세기 이후 10월 28일을 두 사도의 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 정교회는 유다와 타대오를 다른 사람으로 간주해, 예수님의 형제인 유다는 6월 19일에, 타대오는 8월 21일에 기념해 왔다.
성 유다 타대오에 대한 공경은 아마도 동명이인인 유다 이스카리옷 때문에 비교적 늦게 시작되었다. 18세기에 비로소 그에 대한 공경이 활력을 찾았는데, 그동안 성 유다 타대오에게 봉헌된 성당이나 세례명으로 선택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이유로 그에게 전구를 청하면 꼭 이루어진다는 말이 퍼졌다.
그래서 신자들은 특별히 가장 곤란한 일을 겪을 때나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경우에도 성 유다 타대오에게 전구를 청하면 꼭 도와주신다며 ‘절망에 빠진 이들의 수호자’로 공경하게 되었다. 그의 유해는 후대에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의 부속 제대인 성 요셉 제대 아래 안장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치릴로
- 가톨릭 성인 이름
Cyri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3년
치릴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시릴, 시릴로, 시릴루스, 치릴루스, 키릴로, 키릴로스, 키릴루스.
치릴로 자료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로마(Roma)에서 순교한 성녀 아나스타시아(Anastasia)는 동정녀였다. 그녀는 총독 프로부스(Probus)에게서 불과 매로 고문을 받았으나 끝끝내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였다. 그래서 총독은 그녀의 가슴을 도려내고 이빨을 뽑았으며 손발을 잘라냈다고 한다.
그래도 살아 숨을 쉬면서 배교하지 않자 박해자는 하는 수 없이 참수시켰다는 것이다. 성 키릴루스(Cyrillus, 또는 치릴로)는 그녀가 목말라하는 것을 보고 물을 갖다 주었다가 순교하였다.
그 당시 아나스타시아는 훌륭한 집안의 딸이었고, 동정을 지키려고 혼자 서원하였으며 순교할 당시에는 20세였다고 한다. 현재 이 두 성인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서 크게 공경을 받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파로
- 가톨릭 성인 이름
Faro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70년경 모
파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부르군도파로, 파로네, 파롱.
파로 자료
성 파로는 오늘날의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에서 프랑크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 부르군도파로(Burgundofaro) 또는 파롱(Faron)으로도 불리는 그는 어려서부터 테우데베르트 2세(Theudebert II, 596~612년 재위) 왕의 궁정에서 생활하며 교육을 받았다.
그의 형인 성 카뇨알두스(Cagnoaldus, 9월 6일)가 일찍이 성 콜룸바누스(Columbanus, 11월 23일)의 제자로 뤽세이유 수도원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했기에 그는 가문의 후계자로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수아송(Soissons)에서 클로타르 2세(Chlothar II, 584~629년 재위) 왕의 궁정에서 다양한 직무를 수행했고, 부유한 가문의 여인과 결혼도 했다.
클로타르 2세 왕이 사망한 뒤에는 어린 시절 친구이자 왕위를 이어받은 다고베르트 1세(Dagobert I)를 도와 왕의 문서를 발행하고 봉인하는 일을 담당하는 높은 직책까지 올랐다.
그러던 성 파로는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633년경에 누이동생인 성녀 부르군도파라(Burgundofara, 12월 7일)의 권유로 궁정 생활을 포기하고 수도 생활에 들어갈 마음을 품었다.
비슷한 생각을 하던 아내의 동의를 얻어 아내는 외딴곳의 수녀원으로 들어갔고, 성 파로는 모(Meaux)에 성 십자가 수도원을 설립하여 봉헌하고 그곳에 들어갔지만 몇 년 뒤인 637년경에 그 도시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670년경 선종할 때까지 오랫동안 교구를 다스렸으나 그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거의 없다.
영국의 역사가이자 교회학자인 성 베다(Beda, 5월 25일) 신부에 의하면 그는 669년 봄에 캔터베리(Canterbury)의 대주교로 임명되어 영국으로 가는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9월 19일)를 교구에서 맞이해 후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더욱 고적한 삶을 살기 위해 아일랜드에서 모 지방까지 피신해온 성 피아크리우스(Fiacrius, 8월 30일)에게 은수 생활에 적합한 땅을 제공해주고 도움을 베풀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0월 28일 목록에서 여동생인 성녀 부르군도파라의 권유로 왕의 신하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삶으로 나아간 성 파로에 대해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페루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Ferrut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마인츠
페루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페루시우스, 페루씨오, 페루씨우스, 페루티오, 페루티우스, 페르루시오, 페르루시우스, 페르루씨오, 페르루씨우스, 페르루티오, 페르루티우스.
페루시오 자료
로마 군인으로 독일의 마인츠에 주둔하던 성 페루티우스(또는 페루시오)는 이교도의 우상 숭배의식을 거부한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 거기서 그는 학대와 기아 속에 숨져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피델리스
- 가톨릭 성인 이름
Fideli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 코모
피델리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삐델리스.
피델리스 자료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피델리스란 장교가 이탈리아 밀라노(Milano)에서 그리스도인이 잡혀있는 감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성 피델리스는 자신의 직권으로 군인 2명을 포함하여 다섯 명의 신자를 석방시키고 알프스(Alps)로 피신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이 이탈리아 북부 코모에서 붙잡히게 되자 피델리스 역시 체포되어 고문을 받은 뒤에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피델리스는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해오던 그리스도인이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호노라토
- 가톨릭 성인 이름
Honora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10년경 베르첼리
호노라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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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노라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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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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