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3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골룸바노, 그레고리오, 바울리노, 시시니오, 암필로키오, 클레멘스 1세, 트루도, 파테르니아노, 총 8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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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11월 23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8가지
11월 23일 남자세례명 목록
1. 골룸바노
- 가톨릭 성인 이름
Columb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설립자, 수도원장, 선교사 - 활동 연도와 지역
543?-615년 보비오
골룸바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골롬바노, 골롬바누스, 골롬반, 골룸바누스, 골룸반, 콜롬바노, 콜롬반, 콜룸바노, 콜룸바누스, 콜룸반.
골룸바노 자료
성 콜룸바누스(Columbanus, 또는 골룸바노, 콜룸바노)는 543년경 켈트족이 살던 아일랜드의 렌스터(Leinster)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려서부터 수도 생활을 결심하고 북아일랜드 서쪽 언(Erne) 호수에 있는 수백 개의 섬 중 하나인 클루아인(Cluain) 섬에서 시넬(Sinell)이란 수도원장의 지도를 받으며 공부하였다.
시편을 주석할 정도로 똑똑했던 그는 북아일랜드 동쪽에 성 콤갈(Comgall, 5월 10일)이 설립한 뱅거(Bangor)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당대에 가장 유명한 뱅거 수도원에서 사제품을 받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40대까지 그곳에서 수도 생활을 실천했다. 그 후 그는 수도원장의 허락을 받고 12명의 동료 수도자와 함께 유럽 대륙으로 ‘거룩한 순례’, 곧 선교 여정에 올랐다.
585년경 영국 해협을 건너 오늘날 프랑스에 속한 갈리아(Gallia) 북서쪽 브르타뉴(Bretagne) 지방 생말로(Saint-Malo)에 도착한 성 콜룸바누스 일행은 대륙을 가로질러 590년경 갈리아 동쪽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에 도착해 선교활동을 펼쳤다. 그들의 선교활동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애덕 실천은 물론 당시 느슨해진 성직자들의 생활과 왕족과 귀족들의 부도덕한 생활을 보속하기 위한 엄격한 금욕 생활은 많은 사람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젊은이들이 수도 생활에 큰 매력을 느끼도록 했다.
프랑크 왕국 메로빙거 왕조 출신이며 과거 부르군트 왕국 지역을 다스렸던 군트크람누스(Guntchramnus)의 환대로 성 콜룸바누스 일행은 안느그레(Annegray)의 폐허가 된 로마 요새에 집을 짓고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이 너무 좁아 인근 뤽세이유(Luxeuil)에 수도원을 지었고, 그곳마저 좁아져서 퐁텐(Fontaine)에 세 번째 수도원을 세웠다.
당시 수도원은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였기에 얼마 뒤에 성 콜룸바누스를 따르는 이들이 유럽 전역으로 나가 선교하면서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에 50여 개의 수도원을 세웠다. 성 콜룸바누스는 약 20년여 동안 많은 사람에게 엄격한 수도 생활을 가르쳤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성 콜룸바누스가 로마 전례 대신 켈트 전례를 따르면서 프랑크족 주교들의 반발을 사서 시노드 출석을 요구받았다. 그는 시노드에 출석하지 않고 편지로 대신했는데, 그 안에서 전례 문제보다 더 시급한 것은 윤리적으로 타락한 왕족에 대해 궁중을 방문하는 주교들이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결국 610년경 부르고뉴의 국왕인 테오도리쿠스 2세의 부도덕한 결혼을 반대하면서 확대된 논쟁은 성 콜룸바누스와 아일랜드 출신 수도자 모두를 추방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아일랜드로 압송당하기 직전 폭풍을 만나 고생하다가 낭트(Nantes)에서 겨우 탈출한 성 콜룸바누스 일행은 또 다른 게르만족의 복음화를 위해 오늘날 프랑스 북동부 메스(Metz)와 독일 남서부 마인츠(Mainz)를 거쳐 라인강(Rhein R.)을 따라 남쪽으로 선교 여행을 시도했다.
그리고 알프스 산맥을 넘은 성 콜룸바누스 일행은 612년경 이탈리아 북부의 랑고바르드(Langobard) 왕국에 도착해 아길룰프(Agilulf) 왕의 환대를 받고 밀라노(Milano)와 제네바(Genova) 사이의 작은 마을인 보비오(Bobbio)에 정착해 새로운 수도원을 설립했다.
성 콜룸바누스와 동료 수도자들은 이탈리아 선교에 착수해 보비오뿐만 아니라 밀라노와 제노바 등지에도 수도원을 세웠다. 그리고 이들 수도원은 당시 학문과 문화 그리고 영성의 중심지로서 크게 이바지했다.
비록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성 콜룸바누스는 열정적인 켈트족 종교 심성으로 죽을 때까지 정통 교리와 엄격한 영성 생활을 실천해 다소 느슨한 신앙생활을 하던 프랑크족 그리스도인을 자극하였다.
성 콜룸바누스는 자신의 수도회를 위한 “수도 규칙”(Regula Monachorum), 보속 규정인 “속죄집”(De Poenitentianum), 강론집과 시(詩), 아리우스(Arius) 이단 반박문 등 수많은 글을 남겼다.
권력자에게는 무서운 대상이지만 공동체에서는 인정 많은 아버지였던 그는 사람들에게 큰 존경을 받았다. 또한 늑대와 곰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다람쥐들이 어깨에서 뛰놀았다고 한다. 그는 615년 11월 23일 자신이 발견해서 성모님께 봉헌한 보비오 수도원 근처의 동굴에서 생활하다가 평화로이 선종하였다.
그의 유해는 보비오에 있는 성 콜룸바누스 성당 지하에 모셔져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11월 21일 목록에서 그에 대해 기록했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성 콜룸바누스가 선종한 날로 알려진 11월 23일에 그를 기념한다고 적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그레고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Gregory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38년경 지르젠티
그레고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그레고리오 자료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또는 그레고리오)는 시칠리아(Sicilia)의 지르젠티(오늘날의 아그리젠토, Agrigento)에서 태어나, 그곳의 주교인 성 포타미온의 보호를 받고 성장한 뒤에, 팔레스티나(Palestina)를 순례하면서 4년 동안 머물렀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부제품을 받고 안티오키아(Antiochia)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파견되었는데, 니체 포루스 칼리스투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당대에서 가장 거룩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 후 그는 로마(Roma)로 갔다가 지르젠티 교구장이 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바울리노
- 가톨릭 성인 이름
Paul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505년경 웨일스
바울리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울리누스, 빠울리노, 빠울리누스, 파울리노, 파울리누스.
바울리노 자료
성 바울리누스(또는 바울리노)는 웨일스의 수도원장으로 성 일투드(Illtud, 11월 6일)의 제자이다. 그는 휘틀랜드(Whitland) 수도원의 설립자로 여겨지며, 그곳에서 그가 교육한 제자들 중에는 성 다윗(David, 3월 1일)과 성 테일로(Teilo, 2월 9일)가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시시니오
- 가톨릭 성인 이름
Sisin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25년경 키지쿠스
시시니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시시니우스.
시시니오 자료
터키 마르마라(Marmara) 해의 섬인 키지쿠스의 성 시시니우스(또는 시시니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야생말에 매달려 끌려 다니는 등 극심한 고통을 당했다. 겨우 목숨을 건진 그는 니케아(Nicaea) 공의회에도 참석하였다. 로마 순교록은 성 시시니우스를 순교자로서 공경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암필로키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mphiloch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00년경 이코니움
암필로키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암필로치오, 암필로치우스, 암필로키우스.
암필로키오 자료
성 암필로키우스(또는 암필로키오)는 카파도키아(Cappadocia) 출신으로 돈을 벌기 위하여 어릴 때부터 수사학 교사로 생활하였다. 그 후 나지안주스(Nazianzus)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연만한 부친을 봉양하며 가난하게 살았는데, 이때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가 이 친구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제공하였다.
374년 35세가 된 성 암필로키우스는 현재 터키의 코니아(Konya)인 이코니움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마지못해 이 직책을 받아 들였지만, 그의 부친은 그레고리우스에게 아들을 빼앗아갔다고 불평했다고 한다.
역시 그의 친구이던 성 바실리우스(Basilius) 역시 그를 여러 면에서 도왔다. 그는 주교로 착좌하자마자 즉시 그의 뛰어난 화술로 설교하여 대단한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고, 교리와 규율상의 어려운 문제들은 늘 바실리우스와 대화하면서 풀어나갔다.
그는 이코니움 회의를 개최하여 마케도니아 이단을 단죄했는데, 이 이단은 성령의 신성을 부인하던 사람들이었다. 또 그는 황제를 설득시켜 아리우스(Arius) 이단을 금하는 칙령을 반포케 하였다.
나지안주스의 성 그레고리우스는 성 암필로키우스를 일컬어 나무랄 데 없는 주교, 천사 그리고 진리의 사자라고 격찬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클레멘스 1세
- 가톨릭 성인 이름
Clement I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교황, 교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101년?
클레멘스 1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글레멘스, 끌레멘스, 클레멘쓰, 클레멘트.
클레멘스 1세 자료
성 클레멘스(Clemens)는 로마인으로서 사도 교부의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그는 사도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에게 직접 안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91년경 교황 성 아나클레투스(Anacletus, 4월 26일)를 승계해 제4대 교황이 되었으나, 트라야누스(Trajanus) 황제의 박해 때 크림(Krym) 반도로 귀양을 갔다.
그는 그곳의 광산에서 동료 노동 죄수들에게 열렬히 설교하여 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사형선고를 받고, 목에 닻을 매단 채 흑해 바닷속으로 던져져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그의 유해는 9세기 교황 성 니콜라우스 1세(Nicolaus I) 때, 성 키릴루스(Cyrillus)와 성 메토디우스(Methodius, 2월 14일) 형제에 의해 기적적으로 발견되어 로마로 옮겨져 그의 이름으로 봉헌된 성당에 안치되었다.
성 클레멘스가 코린토 교회의 내분을 해결하고 이교를 반박하기 위해 쓴 “제1 코린토 서간”은 신약성경 다음으로 오래된 초대교회 문헌으로, 최초의 교부 문헌으로 인정받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그는 로마의 주교가 지니는 권위, 즉 교황의 수위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또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인 예수님의 부활과 피닉스 새의 신화를 연결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피닉스 새는 500년 동안 사는데, 죽을 때가 가까워지면 아라비아로 날아가 둥우리를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죽는다. 죽은 몸뚱이에서 애벌레가 나와 죽은 어미의 살을 먹고 자라서 다시 어미의 고향인 이집트로 와서 500년을 산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불사조의 의미와 자기 몸으로 새끼를 기른다는 점에서 성체성사의 의미를 내포함으로써 후기 그리스도교 문학과 성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동방교회에서는 그의 축일을 11월 24일 또는 25일에 기념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트루도
- 가톨릭 성인 이름
Trudo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선교사 - 활동 연도와 지역
+690년경
트루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뜨루도.
트루도 자료
7세기경의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Bayern) 지방은 온통 이교도 신앙 천지였다. 이런 와중에서도 성 트루도는 에스베(Hesbaye, 오늘날 벨기에 북동부, 켐펜 지방과 뫼즈 강 사이에 펼쳐진 지방)의 사도로서 열렬한 선교사였다.
그는 원래 프랑크족 출신으로 마스트리흐트(Maastricht)의 성 레마클루스(Remaclus, 9월 3일)의 눈에 띄어 메스(Metz)의 신학원을 다녔고, 그곳에서 성 클로둘푸스(Clodulphus, 6월 8일)에게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자기 고향으로 와서 황무지 같은 지역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심었다. 지금의 생트롱(Saint Trond)은 벨기에 루뱅(Louvain)과 통에런(Tongeren) 사이에 있는데, 그곳이 그의 선교 중심지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파테르니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Patern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343년 파노
파테르니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빠떼르니아노, 빠떼르니아누스, 파테르니아누스.
파테르니아노 자료
성 파테르니아누스(Paternianus, 또는 파테르니아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가 끝나갈 무렵 산으로 피신해서 위험을 모면하였다. 그는 후에 이탈리아 파노의 주교가 되었으나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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