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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4일 남자세례명 17가지

피어나네 2023. 11. 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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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4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라우렌시오 후옹 반 응우옌, 로마노, 발렌티노 베리오초아, 안드레아 둥락, 알렉산데르, 알베르토, 엠마누엘 찌에우 반 응우옌, 예로니모 예르모실라, 요셉 루 반 응우옌, 콜만노, 크레센시아노, 크리소고노, 테오파네 베나르, 토마스 티엔, 펠리치시모, 포르티아노, 프로타시오, 총 17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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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4일 여자세례명 마리아, 엔플레다, 플로라, 피르미나, 총 4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11월 24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7가지

 

 

 

 

11월 24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라우렌시오 후옹 반 응우옌

  2. 로마노

  3. 발렌티노 베리오초아

  4. 안드레아 둥락

  5. 알렉산데르

  6. 알베르토

  7. 엠마누엘 찌에우 반 응우옌

  8. 예로니모 예르모실라

  9. 요셉 루 반 응우옌

  10. 콜만노

  11. 크레센시아노

  12. 크리소고노

  13. 테오파네 베나르

  14. 토마스 티엔

  15. 펠리치시모

  16. 포르티아노

  17. 프로타시오

 

11월 24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7가지

 

 

1. 라우렌시오 후옹 반 응우옌

 

  • 가톨릭 성인 이름
    Lawrence Huong Van Nguye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802?-1856년 베트남

 

 

라우렌시오 후옹 반 응우옌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라우렌시우스, 라우렌티오, 라우렌티우스, 로렌스, 로렌조, 흐엉.

 

 

라우렌시오 후옹 반 응우옌 자료

1533년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베트남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 베트남 교회의 역사는 오랜 박해의 역사였다. 1615년 예수회 선교사들이 베트남의 중부지역에 선교기반을 마련하면서 베트남의 복음화는 활기를 찾았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 왕실은 천주교 신앙을 버리도록 명령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십자가를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이로 인해 1833년부터 약 50년 동안 30여만 명의 신자들이 모진 박해를 받았고 수많은 순교자들이 탄생했다.

베트남 북부 통킹에서 태어난 성 라우렌티우스 후옹 반 응우옌(Laurentius Huong Van Nguyen, 또는 라우렌시오 후옹 반 응우옌)은 신학교에 들어가 사제가 되었다.

방인사제로서 복음을 전하며 베트남 교회를 위해 수십 년 동안 성실하게 사목하다가 그리스도교에 대한 혹독한 박해의 시대에 체포되었다. 그는 옥중에서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1856년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1909년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1988년 6월 19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 안드레아 둥락(Andreas Dung-Lac) 사제와 116명의 동료 순교자들을 시성하면서 그들의 축일을 11월 24일에 기념하도록 보편교회 전례력에 포함시켰다.

안남(Annam) 또는 통킹(Tongkin)의 순교자들로도 불리는 117위의 베트남 순교자들은 출신별로 보면 96위의 베트남 순교자, 11위의 에스파냐 도미니코회 선교사, 10위의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로 이뤄져 있다.

신분별로는 8위의 에스파냐와 프랑스 출신 주교, 50위의 사제(에스파냐와 프랑스 출신 13위와 베트남 출신 37위), 59위의 베트남 출신 평신도로 구성되어 있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성식 강론에서 혹독한 박해를 이기고 영웅적인 모범을 보인 순교자들의 용기와 신앙심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로마노

 

  • 가톨릭 성인 이름
    Roma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 활동 연도와 지역
    +385년 르망

 

 

로마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로마누스.

 

 

로마노 자료

이탈리아의 로마(Roma)에서 태어난 성 로마누스(또는 로마노)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았다. 그는 천성적으로 내성적이었고 자신의 고향인 이탈리아를 떠나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 갈리아 지방(오늘날의 프랑스) 르망의 초대주교이자 그 지역의 선교사 주교로 활동하고 있던 삼촌 성 율리아누스(Julianus, 1월 27일)의 부르심에 의해 알프스 산맥을 넘게 되었다. 당시 성직을 열망하던 그는 삼촌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였다.

성 로마누스는 그의 삼촌인 성 율리아누스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고 지롱드(Gironde) 강 주변에 복음을 선포하도록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그는 달변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선포하는 복음의 메시지는 너무나도 명백하여 그의 설교를 듣는 사람은 바로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는 또한 악마를 쫓아내고, 병든 이들을 낫게 하는 기적을 행하기도 하면서 이교도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주었다.

성 율리아누스 주교가 사망했을 때 그는 르망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아버지처럼 존경했던 성인의 무덤 곁에서 지내는 것이 그가 원하는 전부였다.

성 율리아누스를 계승한 주교는 성 로마누스에게 성인의 무덤을 관리하도록 허락하였고, 그는 충실히 그곳에 머물며 삼촌을 애도하였다. 후임 주교 역시 선종하여 성 율리아누스의 옆에 안장되었다.

그 후 교회 묘지는 빠른 속도로 확장되어 갔다. 신자들은 자신이 죽은 뒤에 성인들 곁에 묻히기를 원하였다. 그러면서 교회 묘지 근처에 앞서 간 그리스도인들의 무덤을 돌보는 성직자들의 작은 공동체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들은 ‘무덤 파는 사람’이라 불리는 소품(小品)을 만들었다. 성 로마누스 역시 무덤 파는 사람이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르망의 신자들이 세상을 떠나면 그들의 육신을 초대주교인 성 율리아누스와 그의 후임 주교 곁에 묻는 일을 하였다.

자신의 죽음이 다가온 것을 안 그는 마지막으로 로마를 방문한 후 블레(Blaye)에서 세상을 떠나 그의 삼촌 곁에 묻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발렌티노 베리오초아

 

  • 가톨릭 성인 이름
    Valentine Berriochoa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827-1861년 베트남

 

 

발렌티노 베리오초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발렌띠노, 발렌띠누스, 발렌타인, 발렌티누스, 밸런타인.

 

 

발렌티노 베리오초아 자료

1533년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베트남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 베트남 교회의 역사는 오랜 박해의 역사였다. 1615년 예수회 선교사들이 베트남의 중부지역에 선교기반을 마련하면서 베트남의 복음화는 활기를 찾았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 왕실은 천주교 신앙을 버리도록 명령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십자가를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이로 인해 1833년부터 약 50년 동안 30여만 명의 신자들이 모진 박해를 받았고 수많은 순교자들이 탄생했다.

성 발렌티누스 베리오초아(Valentinus Berriochoa, 또는 발렌티노 베리오초아)는 에스파냐의 엘로리아(Elloria)에서 태어나 성장한 후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모범적인 수도생활을 하며 종신서원을 하고 사제품을 받은 다음 필리핀으로 파견되었다.

필리핀에서 수도사제로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던 그는 1858년 주교품을 받고 도미니코회가 선교하고 있던 베트남 지역의 대목구장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베트남은 혹독한 박해의 시기로 사목활동을 하기에 너무나 힘든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사목하던 그는 1861년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그는 감옥에서 동료 주교인 에스파냐 출신의 성 히에로니무스 예르모실라(Hieronymus Hermosila)와 함께 심한 고문을 받고 1861년 11월 1일 참수형을 받고 함께 순교하였다. 그는 1906년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1988년 6월 19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 안드레아 둥락(Andreas Dung-Lac) 사제와 116명의 동료 순교자들을 시성하면서 그들의 축일을 11월 24일에 기념하도록 보편교회 전례력에 포함시켰다.

안남(Annam) 또는 통킹(Tongkin)의 순교자들로도 불리는 117위의 베트남 순교자들은 출신별로 보면 96위의 베트남 순교자, 11위의 에스파냐 도미니코회 선교사, 10위의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로 이뤄져 있다.

신분별로는 8위의 에스파냐와 프랑스 출신 주교, 50위의 사제(에스파냐와 프랑스 출신 13위와 베트남 출신 37위), 59위의 베트남 출신 평신도로 구성되어 있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성식 강론에서 혹독한 박해를 이기고 영웅적인 모범을 보인 순교자들의 용기와 신앙심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안드레아 둥락

 

  • 가톨릭 성인 이름
    Andrew Dung-Lac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785-1839년 베트남

 

 

안드레아 둥락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안드레아스, 앙드레, 앤드루, 앤드류.

 

 

안드레아 둥락 자료

베트남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1533년경 중국으로 가던 유럽 선교사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 후 선교 사업은 간헐적으로 이루어지다가 1615년에 예수회가 이곳에서 정식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베트남의 사도’로도 불리는 예수회의 알렉산드르 드 로드(Alexandre de Rhodes) 신부는 1623년 성탄절에 이곳에 도착하여 1645년까지 추방과 재추방을 거듭하면서도 수많은 베트남인들에게 세례를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698년까지 베트남에서는 산발적으로 혹독한 교회 박해가 있었다. 18세기에 들어서도 세 번의 박해가 있었고, 19세기에 들어서도 박해가 더욱 잔인해지자 프랑스는 이를 막기 위해 1862년에 베트남을 침략했고, 1883년에 베트남을 식민지화함으로써 박해를 종식시켰다.

이때까지 박해를 받고 순교한 이들 중 117위가 1988년 6월 19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베트남의 순교자들로서 시성되었다.

시성된 이들 중에는 96위의 베트남인과 에스파냐 출신 도미니코회 소속 선교사 11위 그리고 10위의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신분별로 보면 8위의 에스파냐와 프랑스 출신 주교들과 50위의 사제들(13위의 에스파냐와 프랑스 출신과 37위의 베트남 출신) 그리고 59위의 베트남 평신도들로 구성되어 있다.

성 안드레아 둥락(Andreas Dung-Lac)은 1785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세례를 받고 사제가 되어 여러 지역에서 선교와 사목활동을 하였다. 그는 많은 신자들과 함께 박해 중에도 주님을 굳게 믿고 따르다가 1839년 12월 21일 베트남의 하노이(Hanoi)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1900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다. 그 후 1988년 6월 19일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116명의 동료 순교자들을 시성하면서 그들의 축일을 11월 24일에 기념하도록 보편교회 전례력에 포함시켰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성식 강론에서 혹독한 박해를 이기고 영웅적인 모범을 보인 순교자들의 용기와 신앙심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알렉산데르

 

  • 가톨릭 성인 이름
    Alexander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61년 코린토스

 

 

알렉산데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알레산드로, 알렉산더, 알렉산델, 알렉싼데르, 알렉싼델.

 

 

알렉산데르 자료

성 알렉산데르는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 때에 그리스의 코린토스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알베르토

 

  • 가톨릭 성인 이름
    Albert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166-1192년 루뱅

 

 

알베르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알버트, 알베르또, 알베르뚜스, 알베르투스, 앨버트.

 

 

알베르토 자료

성 알베르투스(Albertus, 또는 알베르토)는 1166년 벨기에 중부 브라반트(Brabant) 지방 루뱅의 백작 고드프리 3세(Godfrey III)와 그의 첫 번째 아내인 림부르크(Limburg)의 마르가리타(Margareta) 사이에서 두 아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의 형은 브라반트의 백작 앙리 1세(Henry I)이다. 그의 어머니는 지금은 몽-세살로 불리는 자기 부친의 성을 그에게 주었고, 이 성은 현재 베네딕토 수도원으로 유명하다.

좋은 집안 덕분에 최고의 교육을 받고 성장한 그는 젊은 나이에 리에주(Liege)의 시의원으로 임명되었으나, 21살이 되던 1187년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신이 누리던 모든 혜택과 지위를 물리치고 기사가 되어 십자군에 가담했다가 성직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1191년 리에주의 주교가 사망하자 부제이던 성 알베르투스가 교회법적으로 주교가 될 수 있는 연령(30세) 미달임에도 불구하고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의 선출에 대해 대부분은 인정했지만 일부 세력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그는 리에주의 주교직을 사임한 후 이 문제를 들고 로마의 코일레스티누스 3세(Coelestinus III) 교황에게 갔다. 1192년 교황은 그의 선출이 유효하다고 판단하고 그를 추기경에 임명했다.

그는 연이어 사제품과 주교품을 받은 후 랭스(Reims) 주교좌성당에서 9월 21일 첫 미사를 봉헌했다. 그리고 11월 24일, 그는 자신과 함께 랭스 교외로 말을 타고 나가자는 세 명의 독일 기사들을 만났다. 그들과 도시 밖으로 나가자 기사들을 돌변해 칼을 뽑아 그를 살해하고 도망갔다.

그의 죽음은 곧 정치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고, 그의 명성은 더욱 널리 퍼져나가며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게 되었다. 1613년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는 그를 성인품에 올리며 그가 살해된 날을 축일로 지정했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11월 21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기도 한다. 그의 유해는 1921년 브뤼셀(Brussels)로 옮겨지기 전까지 랭스에 모셔졌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엠마누엘 찌에우 반 응우옌

 

  • 가톨릭 성인 이름
    Emmanuel Trieu Van Nguye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756-1798년 베트남

 

 

엠마누엘 찌에우 반 응우옌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마뉘엘, 임마누엘.

 

 

엠마누엘 찌에우 반 응우옌 자료

1533년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베트남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 베트남 교회의 역사는 오랜 박해의 역사였다. 1615년 예수회 선교사들이 베트남의 중부지역에 선교기반을 마련하면서 베트남의 복음화는 활기를 찾았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 왕실은 천주교 신앙을 버리도록 명령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십자가를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이로 인해 1833년부터 약 50년 동안 30여만 명의 신자들이 모진 박해를 받았고 수많은 순교자들이 탄생했다.

엠마누엘 찌에우 반 응우옌은 1756년 베트남의 천주교 신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장성한 후 그는 군인이 되었다가 파리 외방전교회의 사제가 되기 위해 프랑스에 있는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베트남으로 돌아와 사제품을 받고 본당신부로 사목하던 중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가 체포되어 감옥으로 이송된 후 온갖 형벌을 받은 다음 1798년 정부 관리들에 의하여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1900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1988년 6월 19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 안드레아 둥락(Andreas Dung-Lac) 사제와 116명의 동료 순교자들을 시성하면서 그들의 축일을 11월 24일에 기념하도록 보편교회 전례력에 포함시켰다.

안남(Annam) 또는 통킹(Tongkin)의 순교자들로도 불리는 117위의 베트남 순교자들은 출신별로 보면 96위의 베트남 순교자, 11위의 에스파냐 도미니코회 선교사, 10위의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로 이뤄져 있다.

신분별로는 8위의 에스파냐와 프랑스 출신 주교, 50위의 사제(에스파냐와 프랑스 출신 13위와 베트남 출신 37위), 59위의 베트남 출신 평신도로 구성되어 있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성식 강론에서 혹독한 박해를 이기고 영웅적인 모범을 보인 순교자들의 용기와 신앙심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예로니모 예르모실라

 

  • 가톨릭 성인 이름
    Jerome Hermosila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780/1800-1861년 베트남

 

 

예로니모 예르모실라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예로니무스, 제로니모, 제롬, 지롤라모, 헤르모실라, 히에로니모, 히에로니무스.

 

 

예로니모 예르모실라 자료

1533년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베트남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 베트남 교회의 역사는 오랜 박해의 역사였다. 1615년 예수회 선교사들이 베트남의 중부지역에 선교기반을 마련하면서 베트남의 복음화는 활기를 찾았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 왕실은 천주교 신앙을 버리도록 명령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십자가를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이로 인해 1833년부터 약 50년 동안 30여만 명의 신자들이 모진 박해를 받았고 수많은 순교자들이 탄생했다.

성 히에로니무스 예르모실라(Hieronymus Hermosila, 또는 예로니모 예르모실라)는 에스파냐의 라 칼파다(La Calfada)에서 태어나 장성한 후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였다. 필리핀의 마닐라(Manila)로 파견되어 선교 활동을 하던 그는 1828년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그는 베트남의 동부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펼치던 도미니코회 선교사들을 돕기 위해 베트남으로 파견되었다. 그는 박해 초기에 순교한 성 이냐시오 델가도 이 세브리안(Ignatius Delgado y Cebrian) 주교의 뒤를 이어 대목구장이 되었고, 주교품을 받자마자 체포 우선순위의 인물이 되었다.

결국 관헌들에게 체포된 그는 감옥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고 1861년 성 발렌티누스 베리오초아(Valentinus Berriochoa) 주교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1906년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1988년 6월 19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 안드레아 둥락(Andreas Dung-Lac) 사제와 116명의 동료 순교자들을 시성하면서 그들의 축일을 11월 24일에 기념하도록 보편교회 전례력에 포함시켰다.

안남(Annam) 또는 통킹(Tongkin)의 순교자들로도 불리는 117위의 베트남 순교자들은 출신별로 보면 96위의 베트남 순교자, 11위의 에스파냐 도미니코회 선교사, 10위의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로 이뤄져 있다.

신분별로는 8위의 에스파냐와 프랑스 출신 주교, 50위의 사제(에스파냐와 프랑스 출신 13위와 베트남 출신 37위), 59위의 베트남 출신 평신도로 구성되어 있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성식 강론에서 혹독한 박해를 이기고 영웅적인 모범을 보인 순교자들의 용기와 신앙심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요셉 루 반 응우옌

 

  • 가톨릭 성인 이름
    Joseph Luu Van Nguye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교리교사,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790-1854년 베트남

 

 

요셉 루 반 응우옌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요세푸스, 요제프,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호세.

 

 

요셉 루 반 응우옌 자료

1533년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베트남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 베트남 교회의 역사는 오랜 박해의 역사였다. 1615년 예수회 선교사들이 베트남의 중부지역에 선교기반을 마련하면서 베트남의 복음화는 활기를 찾았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 왕실은 천주교 신앙을 버리도록 명령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십자가를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이로 인해 1833년부터 약 50년 동안 30여만 명의 신자들이 모진 박해를 받았고 수많은 순교자들이 탄생했다.

베트남의 빈롱(Vinh-long) 인근에서 태어난 성 요셉 루 반 응우옌(Josephus Luu Van Nguyen)은 신자가 된 후 복음을 전하기 위해 교리교사로서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관헌들에게 체포되어 옥에 갇힌 그는 신앙을 포기하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혹독한 고문을 받은 뒤 1854년 빈롱의 한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그는 1909년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1988년 6월 19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 안드레아 둥락(Andreas Dung-Lac) 사제와 116명의 동료 순교자들을 시성하면서 그들의 축일을 11월 24일에 기념하도록 보편교회 전례력에 포함시켰다.

안남(Annam) 또는 통킹(Tongkin)의 순교자들로도 불리는 117위의 베트남 순교자들은 출신별로 보면 96위의 베트남 순교자, 11위의 에스파냐 도미니코회 선교사, 10위의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로 이뤄져 있다.

신분별로는 8위의 에스파냐와 프랑스 출신 주교, 50위의 사제(에스파냐와 프랑스 출신 13위와 베트남 출신 37위), 59위의 베트남 출신 평신도로 구성되어 있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성식 강론에서 혹독한 박해를 이기고 영웅적인 모범을 보인 순교자들의 용기와 신앙심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콜만노

 

  • 가톨릭 성인 이름
    Colm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30-606년 클로인

 

 

콜만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콜만, 콜만누스, 콜먼.

 

 

콜만노 자료

아일랜드 남서부 먼스터(Munster) 태생인 그는 처음에 시인이 되었고 나중에는 카셀(Cashel)에서 궁중 시인으로 활약하였다. 그는 50세 때 콜만누스(Colmannus, 또는 콜만노)란 이름으로 성 브렌다누스(Brendanus, 5월 16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 다음에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성 콜룸바(Columba)의 교사로서도 유명하였다. 마침내 그는 클로인의 첫 번째 주교가 되었다. 그는 코크(Cork)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크레센시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Crescent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9년경  로마

 

 

크레센시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끄레쎈씨아노, 끄레쎈씨아누스, 크레센시아누스, 크레센씨아노, 크레센씨아누스, 크레센티아노, 크레센티아누스, 크레셴시아노, 크레셴시아누스, 크레스켄티아노, 크레스켄티아누스.

 

 

크레센시아노 자료

성 키리아쿠스(Cyriacus, 8월 8일)의 동료였던 성 크레스켄티아누스(Crescentianus, 또는 크레센시아노)는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막센티우스 황제 치하의 박해 중에 잔인한 고문을 받고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크리소고노

 

  • 가톨릭 성인 이름
    Chrysogo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아퀼레이아

 

 

크리소고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끄리소고노, 끄리소고누스, 크리소고누스.

 

 

크리소고노 자료

성 크리소고누스(또는 크리소고노) 순교자는 로마 미사경본의 감사기도 제1양식에 나오는 성인이지만, 그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그는 아마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이탈리아 북부 아퀼레이아에서 순교한 후 그곳에 묻혔고, 그 지역의 신자들로부터 공경을 받아왔다. 그리고 그에 대한 공경은 이른 시기부터 로마로 옮겨져 트라스테베레(Trastevere) 지역에 그의 이름으로 봉헌된 성당이 생겨났다.

한국의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은 2014년 2월 프란치스코(Franciscus) 교황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되면서 관례대로 로마 시내 트라스테베레에 있는 성 크리소고누스 본당의 명의사제로 임명되었다.

6세기경에 생긴 전설에 따르면, 그는 로마군의 장교였고, 시르미움(Sirmium)의 성녀 아나스타시아(Anastasia, 12월 25일)의 어린 시절 교사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두 사람 모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는데, 고문과 감옥 생활로 힘들어하던 성녀를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했다. 로마 가톨릭교회와 정교회에서 성인으로 공경받는 성 크리소고누스는 크로아티아 자다르(Zadar)의 수호성인이다.

전설에 따르면, 순교 후 그의 시신이 바다에 던져졌는데 나중에 자다르의 사제이자 훗날 성인이 된 조일루스(Zoillus)에게 발견되어 매장되었다고 한다. 정교회에서는 그의 축일을 12월 22일에 기념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테오파네 베나르

 

  • 가톨릭 성인 이름
    Theophane Venard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829-1861년 베트남

 

 

테오파네 베나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떼오파네스, 떼오파네스, 테오파네스, 테오파네스, 테오파노, 테오파노.

 

 

테오파네 베나르 자료

1533년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베트남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 베트남 교회의 역사는 오랜 박해의 역사였다. 1615년 예수회 선교사들이 베트남의 중부지역에 선교기반을 마련하면서 베트남의 복음화는 활기를 찾았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 왕실은 천주교 신앙을 버리도록 명령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십자가를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이로 인해 1833년부터 약 50년 동안 30여만 명의 신자들이 모진 박해를 받았고 수많은 순교자들이 탄생했다.

프랑스 푸아티에(Poitiers) 출신인 성 테오파네 베나르는 두에 라 퐁텐(Doue-la-Fontaine) 대학에서 그리고 몽모릴롱(Montmorillon)과 푸아티에에서 신학교를 졸업한 뒤 1850년에 차부제품을 받고, 다음 해에 파리 외방전교회에 들어가서 1852년에 사제가 되었고 같은 해에 홍콩으로 파견되었다.

그는 1854년에 베트남의 선교사로 떠날 때까지 홍콩에 머물렀으며, 1860년 베트남에서 일어난 그리스도교 박해를 피하지 못하여 감옥에 갇혔다가 다음해에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테오파노 베나르(Teofano Venard)로도 불리는 그는 1909년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1988년 6월 19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 안드레아 둥락(Andreas Dung-Lac) 사제와 116명의 동료 순교자들을 시성하면서 그들의 축일을 11월 24일에 기념하도록 보편교회 전례력에 포함시켰다.

안남(Annam) 또는 통킹(Tongkin)의 순교자들로도 불리는 117위의 베트남 순교자들은 출신별로 보면 96위의 베트남 순교자, 11위의 에스파냐 도미니코회 선교사, 10위의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로 이뤄져 있다.

신분별로는 8위의 에스파냐와 프랑스 출신 주교, 50위의 사제(에스파냐와 프랑스 출신 13위와 베트남 출신 37위), 59위의 베트남 출신 평신도로 구성되어 있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성식 강론에서 혹독한 박해를 이기고 영웅적인 모범을 보인 순교자들의 용기와 신앙심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토마스 티엔

 

  • 가톨릭 성인 이름
    Thomas Die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학생,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820-1838년 베트남

 

 

토마스 티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똠마소, 도마, 띠엔, 토머스, 톰마소.

 

 

토마스 티엔 자료

1533년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베트남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 베트남 교회의 역사는 오랜 박해의 역사였다. 1615년 예수회 선교사들이 베트남의 중부지역에 선교기반을 마련하면서 베트남의 복음화는 활기를 찾았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 왕실은 천주교 신앙을 버리도록 명령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십자가를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이로 인해 1833년부터 약 50년 동안 30여만 명의 신자들이 모진 박해를 받았고 수많은 순교자들이 탄생했다.

성 토마스 티엔은 베트남 출신 신학생으로 사제품을 준비하던 중 1838년에 체포되었다. 그는 관리들로부터 모진 매질을 당한 후 목이 졸려 살해당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18세였다. 그는 톰마소 티엔 짠(Tommaso Thien Tran)으로도 불린다.

1988년 6월 19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 안드레아 둥락(Andreas Dung-Lac) 사제와 116명의 동료 순교자들을 시성하면서 그들의 축일을 11월 24일에 기념하도록 보편교회 전례력에 포함시켰다.

안남(Annam) 또는 통킹(Tongkin)의 순교자들로도 불리는 117위의 베트남 순교자들은 출신별로 보면 96위의 베트남 순교자, 11위의 에스파냐 도미니코회 선교사, 10위의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로 이뤄져 있다.

신분별로는 8위의 에스파냐와 프랑스 출신 주교, 50위의 사제(에스파냐와 프랑스 출신 13위와 베트남 출신 37위), 59위의 베트남 출신 평신도로 구성되어 있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성식 강론에서 혹독한 박해를 이기고 영웅적인 모범을 보인 순교자들의 용기와 신앙심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펠리치시모

 

  • 가톨릭 성인 이름
    Felicissim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 페루자

 

 

펠리치시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펠리치씨모, 펠리치씨무스, 펠리키시모, 펠리키시무스, 펠리키시무스.

 

 

펠리치시모 자료

성 펠리키시무스(또는 펠리치시모)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에 이탈리아의 페루자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책과 종려가지를 들고 기품있는 옷을 입은 젊은이로 표현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6. 포르티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Portia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533년 미란다

 

 

포르티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뽀르띠아노, 뽀르띠아누스, 뽀르씨아노, 뽀르씨아누스, 포르띠아노, 포르띠아누스, 포르시아노, 포르시아누스, 포르씨아노, 포르씨아누스, 포르티아누스.

 

 

포르티아노 자료

성 포르티아누스(또는 포르티아노)는 원래 노예로 주인으로부터 도망쳐 프랑스 오베르뉴(Auvergne)의 미란다 수도원으로 피신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수도자가 되었고 후에 원장이 되었다.

그는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고 메로빙거왕조의 분국인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의 왕 티에리(Thierry)에게 오베르뉴의 포로들을 풀어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여 관철시키기도 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7. 프로타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Protas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352년 밀라노

 

 

프로타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쁘로따시오, 쁘로따시우스, 프로타시우스.

 

 

프로타시오 자료

성 프로타시우스(Protasius, 또는 프로타시오)는 331년부터 이탈리아 밀라노의 주교로서 활동하였다. 그는 아리우스주의(Arianism)를 반대하는 성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5월 2일)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그는 343년에 열린 사르디카(Sardica) 시노드에도 참석하여 아리우스파를 반대하는데 특별한 역할을 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8월 28일)의 증언에 의하면 밀라노에 있는 그의 무덤은 눈먼 아이가 눈을 뜨는 등 많은 기적적 치유의 장소가 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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