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4장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 예수님에 대한 확신부터 히브리서 7장 율법은 약점을 지닌 사람들을 대사제로 세우지만, 율법 다음에 이루어진 맹세의 그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아드님을 대사제로 세운다는 이야기까지 오늘 성경 읽기 분량입니다.
바쁜 당신을 위해 오늘 읽기 분량 통째로 여기에 준비했어요!
성경이 안궁금하냐?!
12월 19일
성경읽기 진도표
히브 4-7
12월 19일 성경읽기표
창세기부터 요한묵시록까지 1년동안 구약 46권과 신약 27권 총 76권 성경 통독 가능한 천주교 성경읽기 진도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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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히브리서 성경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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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4-7장 성경읽기
(출처 : 가톨릭 굿뉴스 성경)
드넓게 펼쳐진 성경
성경읽기에 푹 빠질 시간
히브리서 4장
그러므로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 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미 탈락하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입시다.
사실 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그 말씀은 그들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귀여겨들은 이들과 믿음으로 결합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안식처는 물론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은 세상 창조 때부터 이미 다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사실 일곱째 날에 관하여 어디에선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또 여기에서는,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그곳에 들어갈 기회가 아직 있고, 또 예전에 기쁜 소식을 들은 이들은 순종하지 않은 탓으로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였기에, 하느님께서는 다시 “오늘”이라는 날을 정하셨습니다.
앞서 인용한 대로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다윗을 통하여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하고 말씀하실 때에 그리하신 것입니다.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을 안식처로 이끌었다면, 하느님께서 나중에 다른 날에 관하여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에게는 아직도 참안식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던 일을 마치고 쉬신 것처럼, 그분의 안식처에 들어가는 이도 자기가 하던 일을 마치고 쉬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와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게,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대사제이신 예수님
그런데 우리에게는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가 계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켜 나아갑시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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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5장
모든 대사제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혀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지정된 사람입니다. 곧 죄 때문에 예물과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도 약점을 짊어지고 있으므로, 무지하여 길을 벗어난 이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약한 탓에 백성의 죄뿐만 아니라 자기의 죄 때문에도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이 영예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과 같이 하느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아 얻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대사제가 되는 영광을 스스로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께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분께서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또 다른 곳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하느님에게서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셨습니다.
성숙한 신앙생활
이것에 관해서는 우리가 할 말이 많지만, 여러분이 알아듣는 데에 둔해진 까닭에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시간으로 보면 여러분은 벌써 교사가 되었어야 할 터인데, 아직도 하느님 말씀의 초보적인 원리를 다시 남에게서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이 필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젖을 먹고 사는 사람은 모두 아기이므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에 서툽니다.
단단한 음식은 성숙한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들은 경험으로,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는 훈련된 지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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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6장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관한 초보적인 교리를 놓아두고 성숙한 경지로 나아갑시다. 다시 기초를 닦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 기초는 곧 죽음의 행실에서 돌아서는 회개와 하느님에 대한 믿음, 세례에 관한 가르침과 안수, 죽은 이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입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는 성숙한 경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번 빛을 받아 하늘의 선물을 맛보고 성령을 나누어 받은 사람들이, 또 하느님의 선한 말씀과 앞으로 올 세상의 힘을 맛본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면, 그들을 다시 새롭게 회개하도록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하느님의 아드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욕을 보이는 것입니다.
자주 내리는 비를 빨아들여, 농사짓는 이들에게 유익한 농작물을 내주는 땅은 하느님에게서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가시나무와 엉겅퀴를 내게 되면 쓸모가 없어서 오래지 않아 저주를 받고, 마침내는 불에 타 버리고 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말하기는 하지만 여러분에게는 더 좋은 것, 바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 있음을 확신합니다.
하느님은 불의한 분이 아니시므로, 여러분이 성도들에게 봉사하였고 지금도 봉사하면서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보여 준 행위와 사랑을 잊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각자가 희망이 실현되도록 끝까지 같은 열성을 보여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여 게으른 사람이 되지 말고, 약속된 것을 믿음과 인내로 상속받는 이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확실한 약속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당신보다 높은 분이 없어 그러한 분을 두고 맹세하실 수 없었으므로, 당신 자신을 두고 맹세하시면서, “정녕코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너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끈기 있게 기다린 끝에 약속된 것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은 이를 두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그 맹세는 모든 논쟁을 그치게 하는 보증이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상속받을 이들에게 당신의 뜻이 변하지 않음을 더욱 분명히 보여 주시려고, 맹세로 보장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두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에 관하여 거짓말을 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로, 당신께 몸을 피한 우리가 앞에 놓인 희망을 굳게 붙잡도록 힘찬 격려를 받게 하셨습니다.
이 희망은 우리에게 영혼의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하며 또 저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멜키체덱과 같은 영원한 대사제가 되시어, 우리를 위하여 선구자로 그곳에 들어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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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7장
멜키체덱의 사제직
이 멜키체덱은 “살렘 임금”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로서, “여러 임금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에게 축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먼저 그의 이름은 ‘정의의 임금’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또한 살렘의 임금 곧 평화의 임금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언제까지나 사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위대한지 생각해 보십시오. 선조 아브라함도 가장 좋은 전리품에서 십분의 일을 그에게 바쳤습니다.
레위 자손 가운데에서 사제직을 맡는 이들에게는, 율법에 따라 백성에게서 십일조를 거두는 규정이 있습니다. 백성 역시 그들의 형제로서 같은 아브라함의 소생인데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멜키체덱은 그들의 족보에 들지 않았으면서도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았고, 약속을 받은 그에게 축복해 주었습니다.
따질 것도 없이, 축복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서 받는 법입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언젠가 죽을 인간들이 십일조를 받고, 다른 쪽에서는 아직도 살아 있다고 성경에서 증언하는 이가 그것을 받았습니다.
이를테면 십일조를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을 통하여 십일조를 바친 셈입니다. 멜키체덱이 아브라함을 만났을 때, 레위가 자기 조상의 몸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
백성은 레위의 사제직을 바탕으로 율법을 받았는데, 만일 그 사제직으로 완전성에 이를 수 있었다면, 아론과 같은 사제를 임명하지 않고 멜키체덱과 같은 다른 사제를 세울 필요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사제직이 변하면 율법에도 반드시 변화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분은 다른 지파에 속하신 분으로서, 그 지파에서는 아무도 제단에서 직무를 수행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의 주님께서 유다 지파에서 나오신 것은 명확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사제들에 관하여 말할 때에 이 지파를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멜키체덱과 닮은 다른 사제께서 나오시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분께서는 육적인 혈통과 관련된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하고 성경에서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의 규정은 무력하고 무익하기 때문에 폐지되었습니다. 사실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더 나은 희망이 주어져, 우리는 그것을 통하여 하느님께 다가갑니다.
이 일은 하느님의 맹세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들은 하느님의 맹세 없이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주님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않으시리이다. ‘너는 영원한 사제다.’”라고 하였듯이, 그분께 말씀하신 분의 맹세로 사제가 되셨습니다.
그러한 만큼 예수님께서는 더 나은 계약을 보증해 주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또한 다른 사제들은 죽음 때문에 직무를 계속할 수가 없어 그 수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영원히 사시기 때문에 영구한 사제직을 지니십니다.
따라서 그분께서는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늘 살아 계시어 그들을 위하여 빌어 주십니다.
사실 우리는 이와 같은 대사제가 필요하였습니다. 거룩하시고 순수하시고 순결하시고 죄인들과 떨어져 계시며 하늘보다 더 높으신 분이 되신 대사제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다른 대사제들처럼 날마다 먼저 자기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치고 그다음으로 백성의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으십니다. 당신 자신을 바치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다 이루신 것입니다.
율법은 약점을 지닌 사람들을 대사제로 세우지만, 율법 다음에 이루어진 맹세의 그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아드님을 대사제로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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