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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1일 남자세례명 11가지

피어나네 2023. 12. 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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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1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다니엘, 다마소 1세, 바르사바, 빅토리코, 사비노, 젠시아노, 트라손, 폰시아노, 푸시아노, 프랑코 리피, 프레텍스타토, 총 11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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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1일 여자세례명 마리아 마라비야스 데 헤수스, 총 1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12월 11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1가지

 

 

 

 

12월 11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다니엘

  2. 다마소 1세

  3. 바르사바

  4. 빅토리코

  5. 사비노

  6. 젠시아노

  7. 트라손

  8. 폰시아노

  9. 푸시아노

  10. 프랑코 리피

  11. 프레텍스타토

 

12월 11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1가지

 

 

1. 다니엘

 

  • 가톨릭 성인 이름
    Danie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주행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09-493년

 

 

다니엘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대니얼.

 

 

다니엘 자료

유프라테스의 사모사타(Samosata) 근교인 마라타(Maratha) 태생인 성 다니엘은 12살 되던 해에 가까운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는 자기 원장과 더불어 안티오키아(Antiochia)를 여행하였는데, 돌아오는 길에 기둥 위에서 고행하고 있는 성 시메온(Simeon, 1월 5일)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 후 성 다니엘은 원장이 서거한 뒤에 원장이 되라는 권고를 뿌리치고 성지를 순례하였으며, 그 후 그는 성 시메온 주행자(柱行者)와 같은 고행을 하기로 결심하고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근교의 한 지점에서 기둥 위에 올라가서 은수자로서 살았다.

그는 콘스탄티노플 근교에 세운 기둥 위에서 33년 동안 살았는데, 황제 레오 1세는 그를 위해 단을 갖춘 여러 기둥을 건설해 주었고, 그를 서품하기 위해 잠시 내려오라는 요구까지 물리치자 성 겐나디우스(Gennadius)는 기둥 위로 가서 그에게 사제 서품을 주었다고 한다.

그는 465년에 콘스탄티노플에 대화재가 발생하리라 예언했으며, 그의 성덕과 치유 은사는 매우 유명하였다.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와서 설교해 주기를 청하면 그는 자신의 기둥 꼭대기에서 설교하여 많은 감명을 주었다.

또한 그는 황제 레오 1세와 제노의 자문관으로도 활약했고, 그리스도단성론(Monophysitism) 이단을 지원한 황제 발리스쿠스를 단죄하고 에우티키아누스(Eutychianus)를 지원하기 위하여 꼭 한 번 그의 기둥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성 다니엘은 기둥 위에서 운명하였는데, 사람들은 그를 그 기둥 밑에다 안장하고 공경해 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다마소 1세

 

  • 가톨릭 성인 이름
    Damasus I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교황

  • 활동 연도와 지역
    305?-384년

 

 

다마소 1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다마수스, 다마쑤스.

 

 

다마소 1세 자료

에스파냐 혈통을 가진 성 다마수스(또는 다마소)는 아마도 로마에서 태어난 듯하고, 사제였던 자신의 부친 교회에서 부제가 되었다가, 366년의 치열한 선거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이때 교황 선출에서 패배한 반대파는 우르시누스(Ursinus)를 대립교황으로 옹립하는 비극을 맛보아야 했다.

결국 이 분쟁은 반대파가 비극적 종말을 맞는 것으로 끝났다. 즉 우르시누스가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로부터 유배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평정되었으나, 성 다마수스 교황을 반대하는 무리들은 그의 재임 기간 동안에 늘 도전하였다. 그의 선출은 로마 교회회의에서 무혐의로 판정되었다.

성 다마수스는 아리우스주의(Arianism)의 강력한 반대자였고, 381년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공의회에 대리자를 파견하여 아리우스주의를 단죄하는 교황청 교서를 수락케 하였으며, 성령은 신성이 없다는 마케도니우스(Macedonius)의 교리를 단죄하였다.

재임 기간 중에 그는 동서방의 황제이던 테오도시우스 1세로 하여금 그리스도교를 로마 제국의 종교로 선언토록 하여 교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성서학자이던 성 다마수스는 성경의 정경을 발표하였고, 374년의 로마 교회회의를 통하여 올바른 성경을 명시하는 업적을 쌓았다. 유명한 성서학자인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는 그의 비서였다. 그래서 성 다마수스는 성 히에로니무스에게 성경 주석을 비롯하여 불가타 성경 번역을 부탁하였다.

많은 잡음이 있었지만 그의 재임 기간에 이룩한 일은 가히 놀라울 정도이다. 또한 그는 로마가 교회 중의 최고 교회임을 선언하였고, 많은 성당을 건축하고 카타콤바와 순교자들의 무덤을 복원하여 그곳을 순례하는 신자들이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받도록 격려하였다.

위대한 교황이었던 그는 사후 자신이 아르데아티나(Ardeatina) 가도에 건축한 성당에 묻혔다가 후에 산 로렌초 인 다마소(San Lorenzo in Damaso) 성당으로 이장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바르사바

 

  • 가톨릭 성인 이름
    Barsaba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42년

 

 

바르사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르사바스.

 

 

바르사바 자료

페르시아 태생의 성 바르사바는 수도원장으로서 12명의 그의 수도승들과 함께 페르시아 사산왕조의 사푸르 2세 왕의 박해 중에 순교하였다. 그는 기적을 행하는 이로 유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빅토리코

 

  • 가톨릭 성인 이름
    Victoric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빅토리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빅또리꼬, 빅또리꾸스, 빅토리꼬, 빅토리꾸스, 빅토리쿠스.

 

 

빅토리코 자료

성 푸시아누스(Fuscianus)와 성 빅토리쿠스(또는 빅토리코)는 성 퀜티누스(Quentinus) 당시에 프랑스 지방으로 파견된 로마(Roma)의 선교사들인데, 이 성인들은 주로 모리니족들을 회개시키는 일을 전담하였다.

성 빅토리쿠스는 불로네, 성 푸시아누스는 테루안(Therouanne)에 근거지를 두고 인근 지방에 교회를 세워 나갔다. 그러나 다른 신을 섬기는 프랑스 지방의 많은 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그들이 성 퀜티누스를 만나러 아미앵(Amiens)에 왔을 때 박해가 있음을 알았다.

그 지방에서 성 겐티아누스(Gentianus)라는 노인을 만났는데, 이분 역시 몰래 신앙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이 지방의 집정관 릭시오바루스는 이 세 분을 찾아내어 겐티아누스는 현장에서 목을 베었고, 다른 두 성직자는 아미앵으로 끌고 가서 참수하였다. 이들의 순교 이후 릭시오바루스는 미쳤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사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Sab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20년 피아첸차

 

 

사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사비누스, 싸비노, 싸비누스.

 

 

사비노 자료

이탈리아 피아첸차의 주교인 성 사비누스(또는 사비노)는 일찍부터 교회를 위해 봉사했다. 그는 교황 성 다마수스 1세(Damasus I, 12월 11일)에 의해 멜레티우스(Meletius) 이교를 가라앉히기 위해 안티오키아(Antiochia)로 파견되었었다.

그는 또한 밀라노(Milano)의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의 절친한 친구로서 정기적으로 성 암브로시우스의 저작물 초본을 받아 읽은 후 비평 및 의견을 제시하는 글을 써 보냈다.

그는 381년 아퀼레이아(Aquileia) 공의회에 참석하여 아리우스파(Arianism)를 단죄하는데 앞장섰고, 9년 뒤에는 밀라노 교회회의에서 요비니아파를 격렬히 비난하여 정통교리를 수호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젠시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Gent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젠시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겐티아노, 겐티아누스, 젠시아누스, 젠씨아노, 젠씨아누스.

 

 

젠시아노 자료

성 푸시아누스(Fuscianus)와 성 빅토리쿠스(Victoricus)는 성 퀜티누스(Quentinus) 당시에 프랑스 지방으로 파견된 로마(Roma)의 선교사들인데, 이 성인들은 주로 모리니족들을 회개시키는 일을 전담하였다.

성 빅토리쿠스는 불로네, 성 푸시아누스는 테루안(Therouanne)에 근거지를 두고 인근 지방에 교회를 세워 나갔다. 그러나 다른 신을 섬기는 프랑스 지방의 많은 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그들이 성 퀜티누스를 만나러 아미앵(Amiens)에 왔을 때 박해가 있음을 알았다.

그 지방에서 성 겐티아누스(Gentianus, 또는 젠시아노)라는 노인을 만났는데, 이분 역시 몰래 신앙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이 지방의 집정관 릭시오바루스는 이 세 분을 찾아내어 겐티아누스는 현장에서 목을 베었고, 다른 두 성직자는 아미앵으로 끌고 가서 참수하였다. 이들의 순교 이후 릭시오바루스는 미쳤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트라손

 

  • 가톨릭 성인 이름
    Traso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2년

 

 

트라손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뜨라손.

 

 

트라손 자료

성 트라손과 성 폰티아누스(Pontianus) 그리고 성 프라이텍스타투스(Praetextatus)는 이탈리아 로마(Roma)에서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돕다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에 순교하였다. 성 프라이텍스타투스는 프락텍스타투스(Practextatu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폰시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Pont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2년

 

 

폰시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본시아노, 본시아누스, 폰시아누스, 폰씨아노, 폰씨아누스, 폰티아노, 폰티아누스.

 

 

폰시아노 자료

성 트라손(Trason)과 성 폰티아누스(Pontianus, 또는 폰시아노) 그리고 성 프라이텍스타투스(Praetextatus)는 이탈리아 로마(Roma)에서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돕다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에 순교하였다. 성 프라이텍스타투스는 프락텍스타투스(Practextatu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푸시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Fusc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푸시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푸쉬아노, 푸쉬아누스, 푸시아누스.

 

 

푸시아노 자료

성 푸시아누스(Fuscianus, 또는 푸시아노)와 성 빅토리쿠스(Victoricus)는 성 퀜티누스(Quentinus) 당시에 프랑스 지방으로 파견된 로마(Roma)의 선교사들인데, 이 성인들은 주로 모리니족들을 회개시키는 일을 전담하였다.

성 빅토리쿠스는 불로네, 성 푸시아누스는 테루안(Therouanne)에 근거지를 두고 인근 지방에 교회를 세워 나갔다. 그러나 다른 신을 섬기는 프랑스 지방의 많은 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그들이 성 퀜티누스를 만나러 아미앵(Amiens)에 왔을 때 박해가 있음을 알았다. 그 지방에서 성 겐티아누스(Gentianus)라는 노인을 만났는데, 이분 역시 몰래 신앙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이 지방의 집정관 릭시오바루스는 이 세 분을 찾아내어 겐티아누스는 현장에서 목을 베었고, 다른 두 성직자는 아미앵으로 끌고 가서 참수하였다. 이들의 순교 이후 릭시오바루스는 미쳤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프랑코 리피

 

  • 가톨릭 성인 이름
    Franco Lippi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수사, 통회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211-1291년 시에나

 

 

프랑코 리피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프랭크.

 

 

프랑코 리피 자료

프랑코 리피는 1211년 12월 3일 이탈리아의 시에나 인근 그로티(Grotti)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젊었을 때 매우 게으르고 난폭한 사람이었는데, 부친이 사망한 뒤에는 더욱 나빠져서 노름과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였다. 

또한 그는 콘도티에리(Condottieri)라는 깡패 조직에 가담하였고, 중년에는 과도한 방탕생활로 인해 건강마저 해쳤다. 또 50세 때에 싸움 중에 시력을 잃어 앞을 못 보는 지경에 처하자 비로소 그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고해성사를 보고 만약 자신의 시력이 회복된다면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 있는 성 야고보 성당을 순례하겠다고 서약했는데, 그의 기도가 받아들여져 기적적으로 시력을 회복했다. 이에 힘을 얻은 그는 맨발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순례하고 로마(Rome)까지도 순례하였다. 

그 후 시에나로 돌아와서 은수자로서 통회의 삶을 살기 시작했고, 65세에 카르멜회에 들어가 평수사가 되었다. 그는 수도원 성당 부근의 작은 방에 머물며 수없는 악의 유혹에 이겨내고 성모님의 환시를 통해 위로를 받기도 했다. 

그는 여생의 위대한 통회자로서 살다가 1291년 12월 11일 선종하였다. 1870년 교황 비오 9세(Pius IX) 때 그에 대한 공경이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프레텍스타토

 

  • 가톨릭 성인 이름
    Praetexta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2년

 

 

프레텍스타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프라이텍스타토, 프라이텍스타투스, 프락텍스타토, 프락텍스타투스, 프래텍스타토, 프래텍스타투스, 프레텍스타투스.

 

 

프레텍스타토 자료

성 트라손(Trason)과 성 폰티아누스(Pontianus) 그리고 성 프라이텍스타투스(또는 프레텍스타토)는 이탈리아 로마(Roma)에서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돕다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에 순교하였다. 성 프라이텍스타투스는 프락텍스타투스(Practextatu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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