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에 해당하는 여자세례명 아나스타시아, 아달신다, 에우제니아, 총 3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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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 남자세례명 야고포네, 총 1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12월 25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3가지
12월 25일 여자세례명 목록
1. 아나스타시아
- 가톨릭 성인 이름
Anastasi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과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시르미움
아나스타시아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나스따시아, 아나스타샤.
아나스타시아 자료
판노니아(Pannonia) 지방 시르미움[오늘날의 세르비아 북부 사바(Sava) 강 유역 스렘스카 미트로비차(Sremska Mitrovica)] 태생으로 알려진 성녀 아나스타시아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감옥에 갇힌 신자들을 만나기 위해 아퀼레이아(Aquileia)에서 시르미움으로 갔다가 붙잡혀 같은 해 12월 25일 팔마리아(Palmaria) 섬에서 참수당했고, 유해는 훗날 성당으로 바뀐 아폴로니아(Apollonia)의 집에 안장되었다.
전설적인 자료에 의하면, 그녀는 로마의 귀족 프레텍사투스(Praetexatus)와 시르미움의 성녀 파우스타(Fausta, 12월 19일)의 딸로서, 어려서 아퀼레이아의 성 크리소고누스(Chrysogonus, 11월 24일)에게 교육을 받았다.
이방인이던 푸빌리우스(Pubilius)와 결혼했지만,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선교여행을 떠나 아퀼레이아에서 시르미움까지 갔다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로 그녀 역시 체포되었다.
그녀는 배에 실려서 이탈리아 서북부 리구리아해(Ligurian Sea)의 팔마리아 섬으로 끌려갔는데, 그 배에는 죄수들이 가득해 괴롭힘을 당하다가 성녀 테오도타(Theodota)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구출되기도 했다.
성녀 아나스타시아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 많지 않고, 그 근거 또한 확실하지 않은 여러 이야기가 섞여 있지만, 그녀는 이미 5세기부터 로마에서 큰 공경을 받았다.
5세기 말 로마 미사경본의 감사기도(제1양식) 안에서 기억하는 7명의 성녀 중 한 명으로 추가되었고, 전통적으로 치유자와 구마자로서 공경을 받아왔다. 그녀의 유해는 크로아티아의 자다르(Zadar)에 있는 성녀 아나스타시아 주교좌성당에 모셔져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아달신다
- 가톨릭 성인 이름
Adalsindis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수녀 - 활동 연도와 지역
+715년 아마예
아달신다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달신디스.
아달신다 자료
성녀 아달신다는 오스트레반트(Ostrevant)의 성 아달발두스(Adalbaldus, 2월 2일)와 성녀 릭트루다(Rictrudis, 5월 12일)의 딸이다.
성녀 에우세비아(Eusebia, 3월 16일)와 성녀 클로트신다(Clotsindis, 6월 30일) 그리고 성 마우론티우스(Maurontius, 5월 5일)와 형제 사이인 그녀는 프랑스 북부 아라스(Arras) 근방의 하마예 수도원에서 베네딕토회 수녀가 되었다. 그녀의 자매인 성녀 에우세비아가 바로 그 수도원의 원장이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에우제니아
- 가톨릭 성인 이름
Eugeni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7년경 로마
에우제니아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우게니아, 외제니, 유진.
에우제니아 자료
옛 “로마 순교록”은 12월 25일 목록에서 성녀 에우게니아(또는 에우제니아)에 대해 분명히 기록하였다.
그에 따르면 성녀 에우게니아는 갈리에누스 황제 때에 많은 기적을 일으키고 거룩한 동정녀들을 모았으며, 총독 니케티우스(Nicetius)에게 맞서 많은 고난을 겪은 후 참수형을 순교하여 로마의 아프로니아누스(Apronianus) 묘지에 묻혔다고 한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로마의 라티나 가도(Via Latina)에 있는 아프로니아누스 묘지에 성녀 에우게니아 순교자가 묻혔다고 간단히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오래된 순교록의 전기를 통해 전해지는 전설에 따르면, 성녀 에우게니아는 로마 제국의 콤모두스(Commodus, 180~192년 재위) 황제 시대에 이집트의 총독으로 활약했던 성 필리푸스(Philippus, 9월 13일)의 딸로서 가족과 함께 이집트에서 살았다.
그녀는 원치 않는 결혼을 피하고 동정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의 집을 나와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의 주교인 헬레누스(Helenus)에게 세례를 받고, 집안의 환관이자 시종으로 그녀에게 복음을 전해주었던 성 프로투스(Protus, 9월 11일)와 성 히야킨투스(Hyacinthus, 9월 11일)의 도움으로 남장을 하고 남자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수도원장까지 되었다.
치유의 은사를 받은 성녀 에우게니아는 어느 날 한 여인의 병을 치료하던 중 그 여인의 성적인 유혹을 물리치자 오히려 여인으로부터 간통의 죄를 범했다는 모함을 받아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 법정의 재판관이 바로 그녀의 부친이었다. 성녀 에우게니아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여자이며, 바로 재판관의 딸이란 사실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무죄를 선고받은 성녀 에우게니아는 아버지를 설득해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도록 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을 개종시켰는데, 그중에는 그녀의 어머니인 클라우디아(Claudia)도 포함되어 있다. 딸의 설득과 거룩한 삶에 감동하여 개종한 성 필리푸스는 그 후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되었지만, 황제의 박해를 받아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아버지가 순교한 후 성녀 에우게니아는 남은 가족들과 성 프로투스와 성 히야킨투스 형제와 함께 로마로 이주하였다. 그녀는 로마에서 거룩한 삶을 원하는 동정녀들을 모아 수녀원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발레리아누스(Valerianus, 253~260년 재위)와 갈리에누스(Gallienus, 253~268년 재위) 황제들의 박해 때 그리스도교 신자로 고발되어 로마의 여신 디아나(Diana) 신전으로 끌려가 제물을 바칠 것을 강요받았다.
이때 갑자기 디아나 여신상이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났고, 박해자는 그녀를 돌로 친 다음 강물에 던져버렸다. 하지만 그녀가 죽지 않자 감옥에 가둔 후 일체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전설에 따르면 그녀는 발현하신 그리스도에게 직접 음식을 받아먹었고, 주님의 탄생 축일에 죽을 것이라는 말씀대로 12월 25일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고 한다.
그녀의 유해는 라티나 가도에 있는 아프로니아누스의 묘지에 묻혔고, 그 위에 그녀에게 봉헌된 성당이 건립되었으나 현재 남아 있지는 않다. 동방 정교회는 12월 24일에 그녀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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