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세례명/세례명 이름 찾기

라자로 남자세례명 7인 목록

피어나네 2024. 1. 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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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세례명 라자로는 나자로, 나자루스, 라자루스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천주교 남자세례명 라자로 7분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라자로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본받고 싶은 라자로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본받고 싶은 남자 세례명 찾기

라자로
천주교 남자세례명
7인 목록

 

 

 

 

라자로 남자세례명 목록

 

  1. 라자로 (3월 14일)

  2. 라자로 (3월 27일)

  3. 라자로 (6월 21일)

  4. 라자로 (7월 29일)

  5. 라자로 (9월 28일)

  6. 라자로 (11월 7일)

  7. 라자로 (11월 17일)

 

라자로 천주교 남자세례명

 

 

1. 라자로

 

  • 세례명 축일
    3월 14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azarus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49/50년 밀라노

 

 

라자로 세례명과 같은 이름

나자로, 나자루스, 라자루스.

 

 

라자로 이야기

성 라자루스(또는 라자로)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지만 밀라노의 12명의 거룩한 주교 중 한 명으로 존경을 받고 있고, 449년 또는 450년 3월 14일 선종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재임 기간에 밀라노와 이탈리아를 점령하고자 끊임없이 침략하는 동고트족(Ostrogoths)과 야만인들에게 수많은 고초를 겪으면서 지혜롭게 신자들을 사목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예수님 승천과 관련된 기도문을 처음 도입한 주교로도 알려져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사순시기 중에 성인들을 기념하지 않던 암브로시우스 전례에 따라 2월 11일에 그의 축일을 지낸 밀라노의 전통을 반영해 2월 11일 목록에서 그를 언급하였다.

하지만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본래 그가 선종한 날인 3월 14일로 옮겨 그를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라자로

 

  • 세례명 축일
    3월 27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azarus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44년

 

 

라자로 세례명과 같은 이름

나자로, 나자루스, 라자루스.

 

 

라자로 이야기

성 자니타(Zanitas), 성 라자루스(또는 라자로), 성 마로타(Marotas), 성 나르세스(Narses), 성 엘리야(Elias), 성 아비보스(Abibos), 성 셈베트(Sembeeth), 성 마레(Mare)와 성 사바(Sabas) 모두 9명의 페르시아 순교자들은 페르시아의 국왕 사푸르 2세 치하에서 희생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라자로

 

  • 세례명 축일
    6월 21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azarus

  • 신분과 직업
    신약인물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라자로 세례명과 같은 이름

나자로, 나자루스, 라자루스.

 

 

라자로 이야기

성 라자루스(또는 라자로)는 루가 복음 16장 19-31절에 언급된 예수님의 비유 중에 나오는 가난한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중세시대에 널리 알려졌는데, 대개는 라자레토(병원), 라자로네(걸인) 그리고 성 라자로 수도회(나환자를 돌보는 수도회) 등의 명칭이 그에게서 유래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라자로

 

  • 세례명 축일
    7월 29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azarus

  • 신분과 직업
    신약인물, 예수의 제자,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베타니아

 

 

라자로 세례명과 같은 이름

나자로, 나자루스, 라자루스.

 

 

라자로 이야기

요한 복음 11~12장에 의하면 성 라자루스(또는 라자로)는 예루살렘 부근 베타니아에 살던 성녀 마르타(Martha)와 성녀 마리아(Maria)의 오빠로서 예수님의 친구였고, 병으로 인해 죽은 뒤 무덤에 있다가 예수님에 의해 다시 살아난 사람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죽은 지 나흘이나 된 성 라자루스를 소생시키기 전에 성녀 마르타 앞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11,25-26)라고 선포하셨다. 그리고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11,43)라는 말씀으로 죽었던 성 라자루스를 되살려주셨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수석 사제들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성 라자루스까지 죽이기로 결의하였다(12,10). 성 라자루스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에서 열린 예수님을 위한 잔치에 참석해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았던 것으로 나타난다(12,1-2). 그러나 그 외에 신약성경 안에서 죽음에서 소생한 성 라자루스의 행적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프랑스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성 라자루스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 · 승천하신 후 여동생인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그리고 막시무스(Maximus) 및 다른 동료들과 함께 박해를 피해 유다 땅을 떠나 노 없는 배를 타고 표류하다가 프랑스 남서부 프로방스(Provence) 지방에 도착했다.

그들은 그 지방에 복음서를 전달하고 열정적으로 복음을 선포해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고, 성 라자루스는 마르세유(Marseilles)의 초대 주교가 되어 활동하다가 그곳에서 선종했다고 한다. 하지만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체포되어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른 전설에 의하면 그는 여동생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다가 기적적으로 키프로스(Cyprus)에 도착해 키티온(Kition) 또는 라마카(Lamaka)의 주교로서 30년을 사목하다가 그곳에서 선종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성 라자루스와 그의 누이들은 시리아로 갔고, 그의 유해는 후에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이장되었고 많은 성당이 그를 기념해 세워졌다고 한다. 이렇듯 소생 이후 그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런데 프랑스 전승에는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 이후 그리스도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7월 22일)와 주님께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루카 7,36-50)와 베타니아의 성녀 마리아를 동일 인물로 보던 전통이 반영되어 있다.

실제로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22일 목록에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해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주셨고 부활의 첫 목격 증인이 된 인물로 마르세유에서 선종했다고 했고, 7월 29일 목록에서 성녀 마르타에 대해서는 구세주를 환대한 집주인으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성 라자루스와 남매 사이로 프랑스 남동부 타라스콩(Tarascon)에서 선종한 것으로 기록하였다.

이렇게 베타니아의 성녀 마리아의 신원이 분명하지 않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로마 보편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7월 29일에 성녀 마르타 기념일만 수록하였다. 성 라자루스는 보편 전례력에서는 빠졌지만, 옛 “로마 순교록”의 12월 17일 목록에서 주님에 의해 죽음에서 소생한 인물로 주교로서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선종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녀 마르타, 성녀 마리아, 성 라자로 기념일’을 7월 29일로 정하고, 기존의 로마 보편 전례력 7월 29일에 기념하던 ‘성녀 마르타 기념일’을 대체하기로 한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교령(2021년 1월 26일)을 승인 확정했다.

그동안 서방 교회 전통에서 성녀 마리아의 신원이 분명하지 않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로마 보편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7월 29일에 성녀 마르타 기념일만 수록했었다. 성 라자루스는 로마 보편 전례력에서는 빠졌지만, 옛 “로마 순교록”의 12월 17일 목록에서 주님에 의해 죽음에서 소생한 인물이자 주교로서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선종했다고 소개하며 기념해 왔었다.

이번 교령은 최신 “로마 순교록”의 연구 결과와 일부 지역 전례력에서 이미 3남매를 같은 날 함께 기념해 온 사실 등을 근거로 7월 29일을 3남매의 복음적 증거를 함께 기념하는 날로 변경 · 확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주 예수님은 베타니아의 집에서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의 가족 정신과 우애를 경험하셨고, 이런 까닭에 요한 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다고 말한다.

마르타는 예수님께 너그러이 환대를 베풀었고,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온순하게 경청했으며, 라자로는 죽음을 굴복시키신 분의 명령으로 무덤에서 즉시 나왔다.”라고 3남매의 복음적 증거를 강조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라자로

 

  • 세례명 축일
    9월 28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azarus

  • 신분과 직업
    평신도,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37년 나가사키

 

 

라자로 세례명과 같은 이름

나자로, 나자루스, 라자루스.

 

 

라자로 이야기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Laurentius Ruiz)는 첫 번째 필리핀인 성인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해 순교한 첫 필리핀 순교자이다. 그는 1600년경 마닐라(Manila)의 비논도(Binondo)에서 신자였던 중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중국어와 타갈로그어를 배웠다. 그리고 도미니코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스페인어를 배웠다.

그는 비논도 성당의 복사로 활동하였고 성사 보조자와 성사 기록자로 봉사하였다. 그는 아마도 서예로 생계를 유지했으리라 짐작되는데, 사적 혹은 공적인 용도의 서류를 아름다운 필기체로 만들어주는 일을 하였다. 그 직업은 안정되고 교육받은 사람임을 암시하는데, 당대에 많은 사람들이 그 기술을 배우고자 했다는 사실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1636년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불운한 사건에 연루되어 살인 혐의로 고발되었다. 그릇된 재판으로 사형을 받을까 두려운 나머지 성 라우렌티우스는 필리핀을 떠나기 위해 배를 탔다.

그런데 그 배에는 세 명의 도미니코회 신부인 성 안토니우스 곤살레스(Antonius Gonzalez), 성 귈레르무스 쿠르테(Guillermus Courtet), 성 미카엘 데 아오자라자(Michael de Aozaraza)와 일본인 사제인 성 빈첸시오 시오즈카 드 라 크루스(Vincentius Shiwozuka de la Cruz)와 평신도이며 나환자인 교토(Kyoto)의 성 라자루스(또는 라자로)가 타고 있었다.

그는 바다에 나오고 나서야 그 배가 대대적인 그리스도교 박해가 일어나고 있는 일본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본의 오키나와(Okinawa)에 도착한 성 라우렌티우스와 동료들은 곧 그리스도인임이 발각되어 체포되어 나가사키로 압송되었다. 그들은 며칠 동안 갖은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했으나 용감하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였다.

성 라우렌티우스는 신앙을 철회하지 않았고 그의 사형집행인에게 자신은 하느님을 위해 죽으며, 자신이 죽는 대신 수천 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1637년 9월 27일 그는 교수대에 거꾸로 달려 구덩이로 떨어졌다. 이틀 동안의 고통 후에 그는 출혈과 질식으로 인해 숨을 거두었다.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다.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와 같이 이 시기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순교한 15명의 동료들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1981년 2월 18일에 마닐라에서 시복되었고, 1987년 10월 18일 같은 교황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라자로

 

  • 세례명 축일
    11월 7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azarus

  • 신분과 직업
    설립자, 증거자, 주행자

  • 활동 연도와 지역
    968-1054년

 

 

라자로 세례명과 같은 이름

나자로, 나자루스, 라자루스.

 

 

라자로 이야기

성 라자루스(또는 라자로)는 기둥 위의 고행자인 동시에 수도원 설립자이다. 968년 마녜시아(Magnesia) 근처에서 태어난 성 라자루스는 어린 시절부터 성지 이스라엘에 큰 매력을 느껴, 몇 번이나 그곳에 가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스라엘로 가게 된 그는 거기서 은수 생활을 하다가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성 사바(Sabas)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 후 에페수스(Ephesus) 근처에 수도원 세 개를 세웠는데, 하나는 구세주 수도원이고, 또 하나는 예수 부활 수도원이며, 나머지 하나는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수도원이다.

그는 수도원 성당 근처에 세워진 기둥 위에 오두막집을 짓고 고행 생활을 한 유명한 주두(柱頭) 고행자이다. 그는 수도자들에게 규칙서를 만들어 주었는데, 그 규칙서에서 그는 수도자들의 영육간의 의무를 규정하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돌보도록 강조하였다. 1054년 11월 8일에 가레시우스(Galesius) 산에서 사망하였다.

치프리우스의 그레고리우스 2세(Gregorius II) 대주교가 그의 전기를 썼으며, 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14세기의 한 수도자가 그의 수도생활에 관해 썼다. 극기와 절제의 고요한 생활 가운데에서도 가난한 사람들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 성 라자로의 삶은 관상생활과 활동생활의 훌륭한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라자로

 

  • 세례명 축일
    11월 7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azarus

  • 신분과 직업
    수도승, 화가,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867년경 콘스탄티노플

 

 

라자로 세례명과 같은 이름

나자로, 나자루스, 라자루스, 조그라포스.

 

 

라자로 이야기

성 라자루스(또는 라자로)는 8세기 말이나 9세기 초에 아르메니아(Armenia)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나이에 콘스탄티노플에 와서 수도승이 되었고, 수도원에서 성화 그리는 법을 배웠다. 그는 수도 생활에 정진하며 기도와 묵상을 통해 얻은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8세기 초부터 성화상(Icon) 공경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과 파괴령으로 많은 순교자가 나오고 교회의 아름다운 성화상도 많이 파괴되거나 훼손되었다. 8세기 말부터 박해가 완화되고 상화상 공경이 허용되다가 9세기 초에 다시금 성화상 논쟁이 불붙었다. 이때 콘스탄티노플에는 성상 파괴론자인 테오필로스 황제(829-842년 재위)가 있었다.

당시 저명한 화가였던 성 라자루스는 테오필로스 황제의 재위 중에 손상된 성화들을 복구하며 바쁘게 지냈다. 그러나 그로 인해 그는 황제 앞으로 끌려 나갔고, 성화를 그렸다는 이유와 자신이 그린 성화상을 직접 파괴하라는 황제의 명령을 거부한 죄로 잔혹한 고문을 당하였다.

황제는 그를 감옥에 가두고 심한 고문을 가했고, 다시는 성화를 그릴 수 없도록 뜨겁게 달군 인두로 손을 지져 살이 녹고 뼈가 보일 정도로 고통을 주었다.

다행히 성화상을 옹호하던 테오도라 황후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풀려나 보스포러스(Bosphorus) 해협 인근에 있는 수도원에서 지낼 수 있었다. 842년 테오필로스 황제가 사망하고 테오도라가 여황제로 즉위하면서 성화상 공경이 복원되었다.

성 라자루스는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고, 심한 고문으로 상처를 입은 손도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다. 그는 파괴된 성화상들을 복원하고 새로운 성화를 그리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고, 테오도라의 아들인 미카엘 3세(842-867년 재위) 황제에 의해 서방 교회와의 화합과 단결을 위해 로마(Roma)에 특사로 파견되기도 했다.

그는 867년경 다시금 로마 파견 임무를 수행하던 중 선종했는데, 정확한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시신은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져 갈라타(Galata)에 있는 에반데레스(Evanderes) 수도원에 묻혔다. 그리스어로 ‘화가’(Zographos)라는 별명을 이름 뒤에 붙여 성 ‘라자루스 조그라포스’라고도 불리는 그의 축일은 가톨릭교회는 2월 23일에 기념해왔다.

옛 “로마 순교록”도 2월 23일 목록에서 그에 대해 기록하였다. 하지만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일치 공의회였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이어받아 동방 정교회에서 축일로 기념해 온 11월 17일로 옮겨 그의 행적을 전해주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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