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세례명 심포로사는 씸뽀로사, 씸포로사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천주교 여자세례명 심포로사 2분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심포로사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본받고 싶은 심포로사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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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로사 여자세례명 목록
1. 심포로사
- 세례명 축일
7월 2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Symphorosa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84년
심포로사 세례명과 같은 이름
씸뽀로사, 씸포로사.
심포로사 이야기
성 아리스톤(Ariston), 성 크레스켄티아누스(Crescentianus), 성 푸티키아누스(Futychianus), 성 우르바누스(Urbanus), 성 비탈리스(Vitalis), 성 유스투스(Justus), 성 펠리키시무스(Felicissimus), 성 펠릭스(Felix), 성녀 마르키아(Marcia)와 성녀 심포로사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시작한 박해 중에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Campania)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심포로사
- 세례명 축일
7월 18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Symphorosa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38년경
심포로사 세례명과 같은 이름
신포로사, 씸뽀로사, 씸포로사.
심포로사 이야기
오래된 순교 행전에 따르면, 성녀 심포로사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순교한 로마의 호민관 성 게툴리우스(Getulius, 6월 10일)의 아내로 하드리아누스 황제(117~138년 재위)의 그리스도교 박해 당시 로마 근교 티볼리(Tivoli)에서 일곱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황제는 티볼리에 호화스러운 새 궁전을 짓고 나서 그 궁전의 운명이 성녀 심포로사 가족이 바치는 희생 제사에 좌우된다는 신탁을 듣고 깜짝 놀랐다.
황제는 성녀 심포로사 가족을 신전으로 유인하여 신들에게 희생 제사를 바치도록 하려 했으나 모든 시도가 실패하자 성녀 심포로사를 헤르쿨레스(Hercules) 신전으로 끌고 오라고 명령했다. 성녀 심포로사는 남편의 모범을 따라 순교할 결심을 하고 황제의 요구를 용감하게 거절했다.
황제는 그녀에게 갖가지 고문을 자행한 다음 목에 무거운 돌을 매달아 아니에네 강(Aniene R.)에 던져 버렸다. 티볼리 의회 의원이던 그녀의 오빠가 시신을 수습해 도시 외곽에 묻어주었다.
다음날 황제는 신들에게 희생 제사를 바치기 위해 성녀 심포로사의 일곱 아들을 불러들였다. 그들의 이름은 성 크레스켄스(Crescens), 성 율리아누스(Julianus), 성 네메시우스(Nemesius), 성 프리미티부스(Primitivus), 성 유스티누스(Justinus), 성 스탁테우스(Stacteus) 그리고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이다.
일곱 아들 역시 부모처럼 이교 신상 앞에 분향하기를 끝까지 거부하며 신앙을 지켰다. 황제는 그들 모두를 헤르쿨레스 신전 공사를 위해 세워둔 7개의 말뚝에 묶은 뒤 각기 다른 방법으로 고문한 후 처형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시신을 궁전에 있는 깊은 도랑에 던져버렸다. 그 후 어느 정도 박해가 잠잠해지자 신자들이 순교자들의 시신을 수습해 로마 인근 티부르티나 가도(Via Tiburtina)에 안장하였다.
옛 순교 행전이 전하는 성녀 심포로사와 일곱 아들의 순교 이야기에 대한 신빙성을 식별하기는 어렵다. 자료에 따라 일곱 아들의 이름이 서로 다르게 전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구약성경 마카베오 하권 7장에 나오는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순교’ 이야기를 성녀 심포로사와 일곱 아들의 순교에 단순 적용한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18일 목록에서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에 순교한 성 게툴리우스의 아내 성녀 심포로사와 옛 순교 행전에 나오는 일곱 명의 아들 순교자들의 이름과 순교 형식 그리고 그들의 유해가 교황 비오 4세 때 성 안젤로 성당 제의실(성물 보관소)에서 발견되었다고 간단히 기록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로마의 티부르티나 가도에 있는 성녀 심포로사와 일곱 명의 동료들의 이름을 전해주며, 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고문을 받고 순교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가 되었다고 전해줌으로써 모자 관계나 일곱 형제에 관한 전설적 내용은 삭제하였다.
그럼으로써 성녀 심포로사가 순교자로서 존경받고 있고 티부르티나 가도의 묘지에 묻혔다는 확실한 사실만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순교 시기 또한 3/4세기로 기록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그들의 유해는 752년 교황 스테파누스 2세(Stephanus II)에 의해 로마의 어시장(Pescheria)과 가까운 성 안젤로(Angelo) 성당으로 옮겨 제단에 안치했다고 한다.
그리고 17세기에 로마의 카타콤바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발굴한 안토니오 보시오(Antonio Bosio)가 로마에서 14km 정도 떨어진 티부르티나 가도에서 대성당 유적을 발견했는데, 이 대성당이 성녀 심포로사와 그녀의 일곱 아들의 무덤 위에 건립되었음을 확인하였다.
1610년 이곳에서 발견된 석관에는 “여기에 스테파누스 2세 교황에 의해 이장된 순교자 성녀 심포로사와 그녀의 남편 성 게툴리우스와 그녀의 아들들 유해가 있다.”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었다. 이들은 모두 티볼리 교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성녀 심포로사는 이탈리아어로는 신포로사(Sinforosa)라고 부른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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