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세례명/세례명 이름 찾기

루스티코 남자세례명 6인 목록

피어나네 2024. 5. 2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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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세례명 루스티코는 루스띠꼬, 루스띠꾸스, 루스티쿠스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천주교 남자세례명 루스티코 6분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루스티코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본받고 싶은 루스티코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본받고 싶은 남자 세례명 찾기

루스티코
천주교 남자세례명
6인 목록

 

 

 

 

루스티코 남자세례명 목록

 

  1. 루스티코 (7월 2일)

  2. 루스티코 (8월 9일)

  3. 루스티코 (9월 24일)

  4. 루스티코 (10월 9일)

  5. 루스티코 (10월 14일)

  6. 루스티코 (10월 26일)

 

루스티코 천주교 남자세례명 6인 목록

 

 

1. 루스티코

 

  • 세례명 축일
    7월 2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Rusticus

  • 신분과 직업
    차부제,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84년 카르타고

 

 

루스티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루스띠꼬, 루스띠꾸스, 루스티쿠스.

 

 

루스티코 이야기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오늘날 북아프리카의 튀니지에 속한 카르타고에서 아리우스파에 속한 반달족(Vandals)의 왕 후네릭(Huneric)에 의해 자행된 가톨릭교회에 대한 박해 때 순교한 성 리베라토(Liberatus) 수도원장과 동료들의 순교에 대해 전해주었다. 

당시 반달족은 반달족의 왕 게이세리크(Geiseric)의 지휘 하에 429년 에스파냐에서 아프리카로 건너가 455년 로마 제국 통치하의 아프리카를 장악하였다. 477년 게이세리크 왕을 계승한 그의 아들 후네릭(Huneric)은 5천 명의 가톨릭 신자를 죽이는 대박해를 자행했다. 

후네릭은 통치 7년째 되던 484년에 모든 가톨릭교회의 재산을 아리우스파 교회로 이전시키는 법령을 반포하고, 아리우스파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시민권을 박탈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모든 수도원에 대한 해산 명령도 내려왔다.

오늘날 튀니지 중서부의 오아시스 도시인 가프사(Gafsa, 라틴어로는 Capsa) 교외의 수도원에서 살던 성 리베라토 대수도원장과 성 보니파시오(Bonifatius) 부제, 성 세르보(Servus)와 성 루스티쿠스(또는 루스티코) 차부제, 성 로가토(Rogatus)와 성 셉티모(Septimus) 수도승 그리고 어린아이였던 성 막시모(Maximus)가 가톨릭의 정통신앙을 고백하고 체포되어 카르타고로 이송된 후 쇠사슬에 묶여 지하 감옥에 갇혔다.

전승과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그들은 온갖 약속으로 회유하는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굳건히 신앙을 지켰다. 그러자 신심 깊고 충실한 신앙인들이 경비병들에게 뇌물을 주고서라도 감옥을 방문해 그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지키도록 서로 격려하며 고난을 이겨나가던 중 그 사실을 알게 된 왕의 명령으로 더 혹독한 고문을 가하고 낡은 배에 태워 바다에서 불태워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하지만 몇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불이 붙지 않고 계속 꺼져버렸다.

분노한 박해자는 나무 기둥에 못 박히고 묶인 그들의 머리가 깨질 때까지 노를 들고 때린 후 그들의 시신을 바다에 던져 버렸다. 박해자들은 어린 성 막시모를 회유하려고 특별히 노력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들의 시신은 파도를 타고 해안으로 밀려왔고, 가톨릭 신자들은 그들의 시신을 정중히 수습해 고대 카르타고 항구 근처에 있는 비구아(Bigua) 수도원에 매장했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 리베라토와 여섯 명의 동료 순교자들을 8월 17일에 기념했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7월 2일로 옮겨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루스티코

 

  • 세례명 축일
    8월 9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Rusticus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90년경 베로나

 

 

루스티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루스띠꼬, 루스띠꾸스, 루스티쿠스.

 

 

루스티코 이야기

성 피르모(Firmus)와 성 루스티쿠스(또는 루스티코)는 이탈리아의 베로나에서 공경받고 있는 순교자이다. 그들은 친척 사이로 알려져 있다. 그다지 신뢰할 만하지는 않은 순교록에 따르면, 그들은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통치 때 베로나에서 순교한 베르가모(Bergamo) 출신의 저명한 시민들이었다. 

그들은 이교도의 우상 앞에 희생 제물 바치기를 거부하여 총독 앞으로 끌려가 고문을 당한 후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들에 대한 또 다른 전승은 그들과 같은 이름을 가진 두 명의 아프리카 순교자들의 유해가 베로나로 이장되고 나서 그들을 그 지역 성인으로 만들기에 적합한 이야기로 발전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8월 9일 목록에서 막시미아누스 황제 때 베로나에서 순교한 성 피르모와 성 루스티코에 대해 전해주었다. 하지만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역사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더는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다. 

두 순교자의 유해는 베로나에 그들의 이름으로 봉헌된 성당(San Fermo Maggiore)에 모셔져 있다. 성 피르모는 성 페르무스(Fermus, 또는 페르모)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루스티코

 

  • 세례명 축일
    9월 24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Rusticus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세기 클레르몽

 

 

루스티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루스띠꼬, 루스띠꾸스, 루스티쿠스.

 

 

루스티코 이야기

옛 “로마 순교록”은 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Auvergne) 지방 클레르몽의 주교이자 고해사제인 성 루스티쿠스(또는 루스티코)가 선종했다고 전해주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클레르몽의 교구 신부로서 하느님의 특별한 개입을 통해 주교로 선출되었다고 한다. 전임인 베네란두스(Venerandus) 주교가 선종한 뒤에 후임자 선택을 위한 치열한 논쟁을 벌어지고 있을 때, 어느 수녀가 “주님께서 선택하시면 그분이 오실 것”이라고 외쳤다. 

그때 문이 열리고 교구의 본당신부인 성 루스티코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지만 교구 출신 본당 사제로서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와 개입으로 주교직을 맡은 후 446년경에 선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9월 24일 목록에서 오늘날 프랑스 클레르몽페랑(Clermont-Ferrand)의 주교인 성 루스티코가 그 도시의 사제로서 사람들의 기쁨을 위해 주교직을 받아들였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루스티코

 

  • 세례명 축일
    10월 9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Rusticus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8년? 파리

 

 

루스티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루스띠꼬, 루스띠꾸스, 루스티쿠스.

 

 

루스티코 이야기

역사가인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오(Gregorius, 11월 17일) 주교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성 디오니시오(Dionysius)는 이탈리아 태생의 주교로 3세기 중엽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로 무너진 갈리아 지방의 재복음화를 위해 성 파비아노(Fabianus, 1월 20일) 교황에 의해 파견된 7명의 선교사 주교인 ‘갈리아의 사도들’ 중 한 명이라고 한다. 

로마에서 파견된 7명의 갈리아의 사도는 파리에 정착해 그곳의 초대 주교가 된 성 디오니시오 외에 나르본의 성 바오로(Paulus, 3월 22일), 투르(Tours)의 성 가티아노(Gatianus, 12월 18일), 툴루즈(Toulouse)의 성 사투르니노(Saturninus, 11월 29일), 아를(Arles)의 성 트로피모(Trophimus, 12월 29일), 클레르몽(Clermont)의 성 아우스트레모니오(Austremonius, 11월 1일), 리모주(Limoges)의 성 마르티알리스(Martialis, 6월 30일)가 있다. 

그중에서 툴루즈의 성 사투르니노와 파리의 성 디오니시오가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성 디오니시오는 파리의 초대 주교로서 자신과 동행한 성 루스티쿠스(또는 루스티코) 신부와 성 엘레우테리오(Eleutherius) 부제와 함께 몇 년 동안 활발히 선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때 모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파리 근교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성 디오니시오와 동료들의 수난과 순교에 대해서는 세 가지 전설적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첫 번째 전설에 따르면, 파리 지역에서 선교 활동에 큰 성공을 거둔 성 디오니시오와 동료들이 체포된 후 용감하게 신앙을 증거하고 참수당해 그 시신이 센강(Seine R.)에 던져졌다는 것이다.

다른 전승으로는 성 디오니시오가 참수당한 후 직접 자신의 머리를 들고 파리 북쪽을 향해 걸어갔다는 것도 있다. 520년경에 출간된 “성녀 제노베파의 생애”(Vie de Sainte Genevieve)에 따르면, 이미 그 당시에 성 디오니시오를 전례 안에서 공경하고 있었고, 성 디오니시오가 자신의 머리를 들고 파리 북쪽으로 걸어갔던 곳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무덤 자리로 알려주신 곳으로 오늘날 그를 기념해 대성당이 건립된 생드니(Saint-Denis) 지역이었다고 한다.

두 번째 전설은 성 디오니시오와 동료들의 순교 장소에 관한 것이다. 그들은 파리 북부에 메르쿠리우스(Mercurius, Mercury) 신을 경배하던 언덕에서 참수되었는데, 그곳은 해발 129m로 파리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순교 이후 ‘순교자의 산(언덕)’(Mons Martyrum)이란 의미를 지닌 ‘몽마르트르(Montmartre)’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순교 후 센강에 던져진 그들의 시신은 곧 신자들에 의해 수습되어 안장되었고, 12세기에 성 베네딕토 수녀회에서 그들의 무덤 위에 성당을 건립하면서 생드니의 성 베네딕토 수도원으로 발전했다.

오늘날 몽마르트르 정상에는 1875년에 착공하여 1914년에 완공된 예수 성심 대성당(Sacre-Cœur Basilica)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주변 거리는 근대 미술가와 예술가들이 많이 살았던 지역적 특성을 살려 예술의 거리로 조성되었다.

세 번째 전설은 파리의 주교였던 성 디오니시오의 신원에 대한 혼동과 관련된 것이다. 중세 때 일부 전승은 3세기 중엽에 순교한 파리의 성 디오니시오 주교와 1세기에 아테네에서 사도 성 바오로(Paulus, 6월 29일)에 의해 개종하고 후에 아테네의 초대 주교가 된 아레오파고스(Areopagos)의 성 디오니시오(사도 17,34; 10월 3일) 그리고 성 바오로가 아테네로 여행할 때 개종한 익명의 신비주의적 저술가 등 세 사람을 서로 혼동하고 있었다.

17세기까지 이런 혼동이 있었으나 이들 간에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중세 때에 이들 갈리아의 일곱 사도를 사도 시대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사도적 전통과 연결하여 지역 교회의 전통을 강조하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런 영향에서 시작된 오해로 보인다.

실제로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9일 목록에서 아레오파고스의 성 디오니시오가 사도 성 바오로에게 세례를 받고 아테네의 초대 주교가 되었고, 로마로 가서 교황 클레멘스 1세(Clemens I, 11월 23일)의 축복을 받고 갈리아 지방 복음화를 위해 파견되었으며, 몇 년 동안 파리에서 맡겨진 직무를 충실히 수행한 후 성 루스티코 신부와 성 엘레우테리오 부제와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하지만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이러한 오류에 빠지지 않고 10월 9일에 파리의 성 디오니시오 주교와 동료들의 순교를, 그리고 10월 3일에 아레오파고스의 성 디오니시오 주교를 기념하도록 수정하여 기록하였다. 그럼으로써 그들의 활동 시기 또한 3세기와 1세기로 명확히 했다.

교회미술에서 성 디오니시오는 전설적 순교 이야기에 근거해 주교 복장을 하고 자신의 머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표현된다. 프랑스와 파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는 성 디오니시오는 데니스(Denis) 또는 드니(Denis)로 불리며, 14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널리 알려진 ‘14명의 구난 성인’(救難 聖人, Holy Helpers) 중 한 명으로 공경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루스티코

 

  • 세례명 축일
    10월 14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Rusticus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74년 트리어

 

 

루스티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루스띠꼬, 루스띠꾸스, 루스티쿠스.

 

 

루스티코 이야기

독일 남서부 트리어의 주교였던 성 루스티쿠스(또는 루스티코)는 성 고아르(Goar, 7월 6일)에 의해 성적인 부당한 행위로 고발되어 주교좌에서 사임한 후 성 고아르의 지도하에 은수자로서 지냈다. 그는 자신의 남은 생애를 깊은 참회와 침잠 속에서 보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루스티코

 

  • 세례명 축일
    10월 26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Rusticus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61년경 나르본

 

 

루스티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루스띠꼬, 루스띠꾸스, 루스티쿠스.

 

 

루스티코 이야기

성 루스티쿠스(또는 루스티코)는 보노소라고 부르는 어느 주교의 아들로서 남부 프랑스 지방 출신이다. 411경에 기술된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의 편지가 그에게 보내졌는데, 이 편지의 수취인은 은수생활에 관하여 좋은 권고를 요청한 듯 보인다. 

427년에 루스티코는 나르본의 주교로 축성되었지만 그 교구는 지극히 불안한 처지였다. 그것은 고트인의 침략에 따라 아리우스(Arius) 이단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정통 가톨릭과 끊임없는 투쟁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르본에 주교좌를 세웠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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