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6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아이슈타인, 아타나시오, 안수리오, 알베리코, 알폰소, 코난, 테오제네스, 티모테오, 티토, 총 9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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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6일 여자세례명 바울라, 토르드지타, 총 2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1월 26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9가지
1월 26일 남자세례명 목록
1. 아이슈타인
- 가톨릭 성인 이름
Eystei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대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188년 니다로스
아이슈타인 자료
노르웨이(Norway)의 국왕 잉게(Inge)의 전속 사제였던 성 아이슈타인은 1157년 니다로스(현재의 트론헤임, Trondheim)의 제2대 대주교로 임명되었으며, 그 후 로마(Roma)로 순례의 길을 떠나 1161년까지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그는 귀족들의 간섭을 물리치고 자유롭게 노르웨이의 교회를 지도하였고, 그 당시 유럽의 교회관습들을 노르웨이 교회에 적절하게 이식하여 큰 공헌을 쌓았다.
또한 그는 교황 대사로도 활약하면서 성직자들의 공동생활을 유도하고, 또 이에 알맞은 규정을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노르웨이 성직자들은 독신제도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성 아이슈타인은 자국 내의 정치 문제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그가 국왕 마그누스(Magnus)의 후원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과 라이벌 관계에 있는 스베레(Sverre)란 사람 때문에 잠시 영국으로 피신하여 성 에드문즈버리(Edmundsbury) 수도원에서 지냈는데, 아마도 그는 이곳에서 노르웨의 성왕 올라부스(Olavus, 7월 29일)의 성인전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성인전의 원고는 영국에서 발견되었다. 그 이유는 그가 자주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던 캔터베리의 성 토마스 베케트(Thomas Becket, 12월 29일) 성당을 참배했기 때문이다.
그는 1183년에 스베레와 화해한 뒤 고국으로 돌아왔고, 몇 년 뒤에 운명하였다. 그의 유해는 니다로스 대성당에 안장되었고, 1229년부터 성인으로 공경을 받아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아타나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thanas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소렌토
아타나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따나시오, 아따나시우스, 아타나시우스.
아타나시오 자료
성 아타나시우스는 이탈리아 남부 소렌토에서 공경을 받는 주교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는 아마도 정치문제에 휘말려 소렌토로 귀양을 갔던 나폴리(Napoli)의 주교 성 아타나시우스(7월 15일)와 동일인물일 수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안수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nsur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925년 오렌세
안수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수리오, 아수리우스, 안수리우스, 이사우리.
안수리오 자료
성 안수리우스(또는 안수리오)는 915년 에스파냐 갈리시아(Galicia) 지방 오렌세의 주교로 선출되었으며 리바스 데 실(Ribas de Sil) 수도원의 설립을 도왔다.
922년 주교좌에서 은퇴한 그는 자신이 설립을 도운 그 수도원에 들어가서 여생을 수도승으로서 기도하며 보냈다. 그는 아수리우스(Asurius) 또는 이사우리(Isauri)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알베리코
- 가톨릭 성인 이름
Alberic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설립자,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109년
알베리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알베리꼬, 알베리꾸스, 알베리쿠스, 알베리히, 알베릭, 오브리.
알베리코 자료
프랑스 샤티용쉬르센(Chatillon-sur-Seine) 근교의 은수자였던 성 알베리쿠스(또는 알베리코)는 동료 은수자들과 함께 몰렘(Molesme)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장상은 성 로베르투스(Robertus, 4월 29일)였고, 그는 원장이었다.
베네딕투스의 수도 규칙을 엄격히 따르는 새 수도원은 성 로베르투스의 덕망과 명성 덕분에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새 수도자들이 엄격한 규칙을 따르지 못하고 부유함에 취하거나 나태해지자 그는 1098년 초 20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성 로베르투스를 따라 몰렘 수도원을 나와 시토(Cteaux) 계곡에 새로운 수도원을 세웠다.
베네딕투스의 수도 규칙을 충실히 지키며 동시에 청빈한 가운데 은수 생활을 하는 새 수도원은 성 로베르투스를 총원장으로 해 설립되었다.
그러나 몰렘 수도원과 문제가 발생해 1099년 우르바누스 2세(Urbanus II) 교황의 중재로 성 로베르투스가 몰렘 수도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성 알베리쿠스는 1099년 시토 수도원의 제2대 수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성 로베르투스가 제시한 수도원의 이상적 모습을 현실에서 실현하려 노력했다.
또한 수도자들에게 검정색 수도복이 아닌 염색하지 않은 천으로 만든 흰색 수도복을 입게 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시토회 수도자들은 후에 ‘백의(白衣)의 수도자’라고 불리게 되었다.
‘일하며 기도하라’는 베네딕도회의 정신을 따르며, 자선과 자급자족의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고, 엄격함을 추구한 그는 재임 기간 중 파스칼리스 2세(Paschalis II) 교황으로부터 시토 수도원 설립 승인을 받았다.
성 알베리쿠스는 하느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극도의 청빈과 힘든 노동의 표양을 보였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 후임자인 제3대 수도원장 성 스테파누스 하딩(Stephanus Harding, 4월 17일)은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은 공경하올 사부님과 영적 지도자를 잃었지만, 나는 사부님과 영적 지도자뿐만 아니라 친구이자 주님의 동료 군사를 잃었습니다.”
성 로베르투스와 성 알베리쿠스, 성 스테파누스 하딩은 시토회의 공동 설립자이다. 성 알베리쿠스는 알베리히(Alberich) 또는 오브리(Aubrey)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알폰소
- 가톨릭 성인 이름
Alphons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9세기 아스토르가
알폰소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알폰수스, 알퐁소, 알퐁수스.
알폰소 자료
에스파냐 아스토르가 교구의 주교인 성 알폰수스(Alfonsus, 또는 알폰소)는 주교좌에서 은퇴한 후 갈리시아(Galicia) 지방에 있는 성 스테파누스 데 리바스(Stephanus de Ribas) 수도원에서 수도승이 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코난
- 가톨릭 성인 이름
Con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7세기경 이오나
코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꼬난.
코난 자료
이오나의 수도승이었던 성 코난이 실재 인물이냐는 물음이 많이 있으나 실존했던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정확한 자료는 없는 형편이다. 그는 아마도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성 피아크리우스(Fiacrius, 8월 30일)를 교육시킨 인물이라고 한다.
그는 스코틀랜드에서 맨(Man) 섬으로 와서 그곳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후일 헤브리디스(Hebrides) 섬과 맨 섬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테오제네스
- 가톨릭 성인 이름
Theogene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8년 히포 레기우스
테오제네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테오게네스.
테오제네스 자료
성 테오게네스(또는 테오제네스)는 아프리카 히포 레기우스(Hippo Regius, 또는 Hippona)의 주교로 발레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36명의 신자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현대의 학자들은 이들 순교자들이 소아시아 중서부 프리지아(Phrygia)의 라오디케아(Laodicea)에서 순교한 것으로 본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티모테오
- 가톨릭 성인 이름
Timothy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바오로의 제자,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97년경 에페수스
티모테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디모떼오, 디모떼우스, 디모태오, 디모태우스, 디모테오, 디모테우스, 티모시, 티모테우스.
티모테오 자료
사도행전 16,1-4절에 따르면 성 티모테우스(Timotheus, 또는 티모테오, 디모테오)는 소아시아 지방 리카오니아(Lycaonia)의 리스트라(Lystra)에서 그리스인 아버지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다인 어머니 에우니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스어로 ‘공경하다, 영광스럽게 하다’라는 뜻의 ‘티마오’와 ‘하느님’을 뜻하는 ‘테오스’가 합쳐진 ‘티모테우스’는 ‘하느님을 공경하는 또는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는 진실한 믿음을 지닌 젊은이로 성장했는데, 사도 성 바오로(Paulus, 6월 29일)는 그러한 믿음이 그의 할머니 로이스(Lois)와 어머니 에우니케(Eunice)에게 깃들어 있던 믿음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했다(2티모 1,5).
그는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좋은 평탄을 받고 있었고, 아마도 사도 성 바오로의 제1차 선교 여행 중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제2차 선교 여행 중에 리스트라에 당도한 사도 성 바오로는 그와 동행하기를 원했다. 사도 성 바오로는 그 고장 유다인들 안에서 말썽이 일어날까 봐 성 티모테우스에게 할례를 베풀고 함께 여러 고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성 티모테우스는 사도 성 바오로의 서간 여러 곳에서 ‘우리의 형제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하느님의 협력자’(1테살 3,2), ‘나의 협력자 티모테오’(로마 16,21), ‘내가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나의 성실한 아들’(1코린 4,17)이라 불릴 만큼 사도 성 바오로의 제자를 넘어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협력자 그리고 아들 같은 존재였다.
성 티모테우스는 사도 성 바오로가 그리스로 건너가 베로이아(Beroea)에서 선교할 때 함께 했고, 유다인들의 반대로 성 바오로가 먼저 아테네로 간 후 베로이아에 머물던 그는 성 바오로의 지시를 받고 성 실라스(Silas, 7월 13일)와 함께 아테네로 찾아갔다(사도 17,10-15).
그리고 성 바오로와 함께 코린토에서 선교 활동을 했고(사도 18,5; 2코린 1,19), 코린토 공동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사도 성 바오로의 지시를 받고 그곳을 방문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야 할 가르침을 상기시켜 주었다(1코린 4,17).
그는 또한 성 에파프로디토스(Epaphroditus, 3월 22일)와 함께 사도 성 바오로의 지시로 필리피 공동체를 방문했고(필리 2,19-22), 테살로니카 공동체의 힘을 북돋아 주고자 파견되었으며(1테살 3,2), 에페소에서 복음을 전하고(사도 19,22) 감옥에 갇혀 수인이 된 사도 성 바오로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필레 1장; 콜로 1,1).
그리고 사도 성 바오로가 에페소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그의 마지막 여정에도 동행하였다(사도 20,4).
신약성경 안에서 성 티모테우스의 이후 행적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는 없으나 교회 전승을 통해 다소나마 알 수 있다. 다마스쿠스(Damascus)의 성 요한(Joannes, 12월 4일)은 그의 “설교집”에서 성 티모테우스가 에페수스의 초대 주교였으며 성모 마리아의 죽음을 목격했다고 기록했다.
교회 역사가인 에우세비우스(Eusebius)는 “교회사”에서 성 티모테우스가 마르쿠스 네르바(Marcus Nerva) 황제 치하인 97년에 순교했고, 356년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us I)가 그의 유해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겨갔다고 전했다.
그는 디아나(Diana) 여신을 공경하는 에페수스의 이교 축제 중에 디아나 여신이 우상에 불과함을 지적하다가 광분한 군중들에게 끌려가 매를 맞고 잔인하게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한다.
사도 성 바오로는 사목 서간으로 분류되는 두 통의 편지를 성 티모테우스에게 보냈는데, 그 안에서 거짓 교사들과 싸우고 복음을 위해 투쟁할 것을 권유하며 그리스도교 교역자의 직무에 대한 지침을 제시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티토
- 가톨릭 성인 이름
Ti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바오로의 제자,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크레타
티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디도, 디또, 티투스.
티토 자료
성 티투스(또는 티토, 디도)는 사도 바오로(Paulus)에 의해 개종한 후 그의 비서가 되어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하였다. 사도 바오로는 그를 코린토스(Corinthos)로 파견하여 오류를 시정케 하면서 예루살렘의 가난한 신자들을 위한 헌금을 모금하게 하였다.
그 후 그는 사도 바오로에 의하여 크레타(Creta)의 주교로 축성되어 바오로의 사업을 이어나갔다. 그 후 그는 달마티아(Dalmatia)를 방문한 뒤 크레타로 돌아와서 운명한 듯하다.
그는 법률가 제나가 쓴 “티투스행전”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가 성 바오로로부터 받은 편지의 주요 내용은 영적인 권고를 비롯하여 착한 목자가 지녀야할 자질 및 크레타 신자들에게도 엄격한 규율이 필요하다는 것 등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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