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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트루다
천주교 여자세례명
5인 목록
제르트루다 여자세례명 목록
1. 제르트루다
- 세례명 축일
1월 6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Gertrude - 신분과 직업
동정녀, 신비가 - 활동 연도와 지역
+1358년 델프트(Delft)
제르트루다 세례명과 같은 이름
거트루드, 게르투르다, 게르투르데스, 게르투르디스, 게르트루다, 제르뜨루다, 제르뜨루디스, 제르트루디스, 젤뚜르다, 젤뜨루다, 젤투르다, 젤트루다.
제르트루다 이야기
성녀 제르트루다(Gertrudis)는 원래 하녀였다가 네덜란드의 델프트에서 베긴회의 회원이 되었다. 베긴(Beguine)은 엄밀한 의미에서 수도자는 아니지만 독립된 집에서 공동으로 수도생활을 하며 정결과 순종서원을 발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청빈 서원은 발하지 않고 2-3명씩 함께 생활하며 자선활동을 폈다. 그녀는 베긴회의 회원이 된 후부터 관상에만 전념하다가 1340년의 주님 수난 성 금요일에 그리스도의 다섯 성흔을 받았다. 그래서 교회는 그녀를 신비가의 한 사람으로 공경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제르트루다
- 세례명 축일
3월 17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Gertrude - 신분과 직업
동정녀, 수녀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659년 니벨레스(Nivelles)
제르트루다 세례명과 같은 이름
거트루드, 게르투르다, 게르투르데스, 게르투르디스, 게르트루다, 제르뜨루다, 제르뜨루디스, 제르트루디스, 젤뚜르다, 젤뜨루다, 젤투르다, 젤트루다.
제르트루다 이야기
성녀 제르트루다(Gertrudis)는 626년경 벨기에의 브뤼셀(Brussel)과 리에주(Liege) 사이에 있는 란덴(Landen)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프랑크 왕국의 북동쪽 지역을 지배하던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 왕국의 살림을 책임지는 궁전장(宮殿長)인 복자 페핀(Pepin the Elder, 2월 21일)과 메스(Metz, 오늘날 프랑스의 도시)의 귀족 가문 출신인 성녀 이타(Itta, 5월 8일)이다.
그리고 그녀의 언니는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이자 왕의 고문으로 나중에 메스의 주교가 된 성 아르눌포(Arnulphus, 7월 18일)의 아들 안세기젤(Ansegisel)과 결혼한 앙덴(Andenne)의 성녀 베가(Begga, 12월 17일)로,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조카가 바로 메로빙거 왕조를 이어 프랑크 왕국의 후반을 지배한 카롤링거 왕조(Carolingian dynasty)의 시조가 된 에르스탈의 피핀(Pepin of Herstal 또는 Pepin II)이다.
성녀 제르트루다는 어려서부터 부모의 경건한 생활을 본받으며 자랐고, 왕가와 귀족 간의 혼담과 정략결혼이 자연스러운 현실에서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랑으로 섬기겠다며 스스로 동정 서원을 하고 수도 생활을 동경했다.
640년에 아버지가 선종하자 어머니인 성녀 이타는 마스트리흐트(Maastricht)의 성 아만도(Amandus, 2월 6일) 주교의 도움을 받아 니벨레스(오늘날 벨기에의 브뤼셀[Brussel] 남쪽에 있는 도시)에 성 베네딕토(Benedictus)의 규칙을 따르는 수도원을 설립하고 막내딸인 성녀 제르트루다와 함께 들어가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성녀 제르트루다는 니벨레스 수도원에서 수도 서원을 하고 성 아만도 주교에게 수도복을 받았다. 그리고 스무 살 정도의 젊은 나이에 초대 수녀원장이 되어 슬기롭게 공동체를 이끌었다. 성녀 제르트루다는 성경과 전례에 큰 관심을 두었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수도원에 도서관을 세우려고 노력했다.
또한 순례자와 인근에서 선교 활동을 펼치는 수도승들을 환대하고 성심껏 지원하였다. 656년에 수녀원장에서 물러난 성녀 제르트루다는 성경 연구와 기도와 단식 등 엄격한 고행을 실천하는데 몰두하였다. 또한 생애의 마지막 몇 년 동안 환시의 은혜를 많이 받았다.
그녀는 659년 3월 17일 성 파트리치오(Patricius) 축일에 30대의 젊은 나이로 선종해 인근 성당에 묻혔다. 그녀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11세기에 새로 건립된 성당은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고, 성녀의 유해함도 많이 훼손되어 새로운 유해함으로 복원하였다.
성녀 제르트루다는 가난한 병자와 과부, 순례자와 여행자, 정원사와 방적공의 수호성인으로 중세 시대부터 많은 공경을 받았다. 벨기에와 네덜란드, 독일 등 북유럽의 많은 병원과 성당이 그녀의 이름으로 봉헌되었다.
교회 미술에서 성녀 제르트루다는 성 베네딕토회 수도복을 입고 책이나 배(폭풍과 바다 괴물로부터 선원들을 구해준 기적에서 유래)를 들고 있거나 수녀원장을 상징하는 지팡이를 쥐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전염병을 가져오는 들쥐로부터 보호자로 여겨지면서 들쥐와 함께 그려지곤 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3월 17일 목록에서 니벨레스의 성녀 제르트루다가 고귀한 가문 출신의 동정녀로서 세상을 미워하고 평생 선행을 실천했기에 하늘에서 그리스도를 배우자로 모실 자격이 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같은 날 목록에서 귀족 집안 출신으로 성 아만도 주교에게 동정녀의 베일을 받고 어머니가 세운 수도원을 현명하게 다스린 니벨레스의 성녀 제르트루다 수녀원장이 열심히 성경을 읽고 밤샘 기도와 단식 등 엄격한 금욕을 실천했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제르트루다
- 세례명 축일
8월 13일 - 호칭 구분
복녀 - 가톨릭 성인 이름
Gertrude - 신분과 직업
동정녀 - 활동 연도와 지역
+1297년 알텐베르크(Altenberg)
제르트루다 세례명과 같은 이름
거트루드, 게르투르다, 게르투르데스, 게르투르디스, 게르트루다, 제르뜨루다, 제르뜨루디스, 제르트루디스, 젤뚜르다, 젤뜨루다, 젤투르다, 젤트루다.
제르트루다 이야기
1227년 9월 성지의 십자군에 가담했던 남편이 죽은 뒤에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Elisabeth, 11월 17일) 왕비는 세 번째 딸을 낳고 제르트루다(Gertrudis)라고 불렀다.
남편이 출정에 앞서 만일 딸을 낳으면 알텐베르크의 프레몽트레 수녀회에 입회시키라고 했기 때문에 어린 제르트루다는 곧 그곳으로 보내졌다. 장성한 그녀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수녀가 되었고 22세 때에는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어머니의 뜻을 따라 그녀는 자신이 물려받은 유산 대부분을 수도원을 짓거나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에 사용하였다. 그녀는 15년 동안 원장직을 맡아 봉사하다가 운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제르트루다 (대)
- 세례명 축일
11월 16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Gertrude the Great - 신분과 직업
수녀, 신비가, 저술가 - 활동 연도와 지역
1256-1302년경 헬프타(Helfta)
제르트루다 (대) 세례명과 같은 이름
거트루드, 게르투르다, 게르투르데스, 게르투르디스, 게르트루다, 게르트루드, 제르뜨루다, 제르뜨루디스, 제르트루드, 제르트루디스, 제르트루트, 젤뚜르다, 젤뜨루다, 젤투르다, 젤트루다.
제르트루다 (대) 이야기
성녀 대 제르트루다(Gertrudis Magna)는 1256년 1월 6일 독일에서 태어났다. 출생지와 가족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지만, 다섯 살이 되던 1261년 아이슬레벤(Eisleben)에 있는 헬프타 베네딕토회의 성 마리아 수도원 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성덕으로 유명했던 이 수도원은 설립자이자 원장인 하크본(Hackeborn)의 제르트루다 수녀가 지혜롭게 운영하면서 문화와 영성의 중심지가 되었다. 어린 나이의 성녀 제르트루다는 수녀원장의 동생이며 수도원 학교 교장이었던 하크본의 성녀 메히틸다(Mechtildis, 11월 19일) 수녀의 지도하에 개방적이고 휴머니즘적인 교육을 받았다.
15세 때 학교를 마치고 수녀회에 입회했는데, 그녀의 지적 열망과 타고난 지능으로 인해 성 베네딕토(Benedictus, 7월 11일)와 클레르보(Clairvaux)의 성 베르나르도(Bernardus, 8월 20일)의 영성뿐 아니라 음악, 문학, 문법학, 예술 등에도 탁월한 재능을 드러냈다. 특히 라틴어에 정통해서 수녀원 내 필사실에서 일하는 소임을 맡았다.
그러나 세속 학문과 모든 것을 지성적으로만 판단하려는 사고로 인해 영적 생활이 소원해지고 거의 냉담 상태까지 갔었다. 그로 인해 극심한 영적 고통을 겪던 성녀 제르트루다는 1281년 1월 27일 환시를 통해 예수님의 발현을 체험했다.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발현한 예수님께서는 지적 공부에만 몰두한 그녀를 책망하며 “멀지 않아 너의 구원은 올 것이다. 왜 그렇게 고통을 받느냐? 너를 슬픔에서 벗어나게 조언해 줄 사람이 하나도 없느냐?”라고 위로했다고 한다.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자신과 예수님 사이에 사랑의 유대가 있음을 깨달은 성녀 제르트루다는 내적 평온함을 찾고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갔다.
그녀는 예수님과의 깊은 일치와 친교 속에서 새로운 열정을 불태우게 되었다. 세속적인 학문에 흥미를 잃고 오로지 성경과 교부들의 저서 그리고 전례에 관심을 집중하게 된 성녀 제르트루다는 머지않아 스콜라 사상에도 정통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계시와 여러 발현을 보게 되었다.
이로써 그녀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기리는 영원한 찬가’로 바뀌게 되었다. 그녀의 생활은 하느님과의 친밀한 영적 체험의 연속이었다. 성녀 제르트루다는 자신의 저술을 통해 하느님께서 자신의 심장에 눈에 보이지 않는 성흔(聖痕, stigma)을 주셨다고 밝혔다.
성녀 제르트루다는 자신의 삶과 그리스도의 발현, 그리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신비로운 은총의 계시를 다룬 “하느님 사랑의 사자(使者)”(Legatus Divinae Pietatis)를 저술했다. 5권으로 된 이 책은 그녀의 대표적 저서로 자서전적 고백서이자 영적 유언서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 “영성 수련”과 성녀 메히틸다에 의해 기록된 기도와 시로 된 소책자가 전해지고 있다.
그녀의 신심의 특징은 예수 성심에 대한 강렬한 사랑 체험과 헌신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영성사에서 ‘예수 성심의 신학자’라고 불렸고, 예수 성심 공경을 시작한 선구자 혹은 첫 사도로 여겨졌다. 그녀는 중세의 신비신학과 신비주의에 중요한 역할과 기여를 했고, 특히 13세기 독일 교회 안에서 가장 위대한 신비가로 여겨진다. 그녀의 풍부한 신비 경험으로 인해 ‘독일의 데레사’로 불리기도 한다.
1288년 심한 병을 알게 된 성녀 제르트루다는 합병증으로 치유 불가능한 상태에서 예언의 은사를 받기도 했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던 그녀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수녀원의 시간 전례(성무일도)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헬프타 수도원에서 오랫동안 중병으로 고통받던 성녀 제르트루다는 1302년경 11월 중순에 “아! 신랑이 오신다.”라고 외치면서 세상을 떠났다.
이때 그녀의 나이가 46세였는데, 선종한 정확한 날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후대의 연구 결과 11월 17일로 보고 있다. 성녀 제르트루다는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올려지지는 않았으나 1606년 교황청으로부터 공식 전례의 기도와 독서, 찬가에서 그녀를 공경할 수 있다는 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1738년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는 그녀의 축일을 전 세계 가톨릭교회 안에서 지낼 수 있도록 확대하면서 다른 제르트루다 성녀와 구별하고 그녀의 영적 깊이를 높이 평가해 이름 앞에 ‘위대한’(the Great, 大)이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1678년 그녀의 이름이 “로마 순교록”의 11월 17일 목록에 추가되었고, 축일은 11월 15일에 기념한다고 했다. 1969년 로마 보편 전례력 개정 이후 가톨릭교회 안에서 성녀 제르트루다의 축일은 11월 16일로 옮겨 기념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11월 17일 목록에서 헬프타의 성녀 제르트루다의 선종에 대해 언급하며 축일은 그 전날 기념한다고 했다.
그리고 11월 16일 목록에서 동정 성녀 대(大) 제르투르다가 어린 시절부터 고독한 생활과 문학 연구에 헌신하고 독일 헬프타의 시토회 수도원에 들어가 완덕을 향해 나아갔고, 완전한 회심을 경험한 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기도하는데 온전히 자신을 봉헌했다고 기록하였다.
독일 일부 지역과 베네딕토회에서는 11월 17일에 그녀의 축일을 기념한다. 교회 미술에서 성녀 제르트루다는 베네딕토회를 상징하는 검은색 수도복과 시토회를 상징하는 흰색 수도복을 입고, ‘나는 당신(제르트루다)의 마음속에 삽니다’라는 유명한 구절과 함께 가슴에 아기 예수가 있고 예수 성심을 상징하는 하트 문양과 함께 그려진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제르트루다
- 세례명 축일
12월 6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Gertrude - 신분과 직업
수녀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649년 아마예(Hamaye)
제르트루다 세례명과 같은 이름
거트루드, 게르투르다, 게르투르데스, 게르투르디스, 게르트루다, 제르뜨루다, 제르뜨루디스, 제르트루디스, 젤뚜르다, 젤뜨루다, 젤투르다, 젤트루다.
제르트루다 이야기
성 아달발두스(Adalbaldus, 2월 2일)의 할머니인 성녀 제르트루다는 남편과 사별한 후 두에(Douai) 근교의 아마예에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 후 그녀는 그 수도원에 들어가 초대원장이 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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