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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일 남자세례명 19가지

피어나네 2023. 2.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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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니콜라오 스투디테스, 도나토, 라바노 마우로, 렘베르토, 마뇨, 모단, 아벤티노, 아퀼리노, 안드레아 코르시니, 에우티키오, 요셉, 요한 데 브리토, 이시도로, 제미노, 젤라시오, 질베르토, 테오필로, 필레아, 필로로모, 총 19분 목록이에요.

 

2월 4일이 영명축일인 남자세례명은 어떤 이름이 좋을까요?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천주교 세례명 상세정보로 이동합니다. 어울리는 세례명을 지금 바로 찾아보세요.

 

2월 4일 여자세례명 마리아 데 마티아스, 요안나, 총 2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2월 4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9가지

 

 

 

 

2월 4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니콜라오 스투디테스

  2. 도나토

  3. 라바노 마우로

  4. 렘베르토

  5. 마뇨

  6. 모단

  7. 아벤티노

  8. 아퀼리노

  9. 안드레아 코르시니

  10. 에우티키오

  11. 요셉

  12. 요한 데 브리토

  13. 이시도로

  14. 제미노

  15. 젤라시오

  16. 질베르토

  17. 테오필로

  18. 필레아

  19. 필로로모

 

2월 4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9가지

 

 

1. 니콜라오 스투디테스

 

  • 가톨릭 성인 이름
    Nicholas Studite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793-863년

 

 

니콜라오 스투디테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니고나오, 니꼴라오, 니꼴라우스, 니콜라스, 니콜라우스.

 

 

니콜라오 스투디테스 자료

크레타(Creta) 섬의 시도니아(Sydonia) 출신인 성 니콜라우스 스투디테스(Nicolaus Studites, 또는 니콜라오 스투디테스)는 열 살 때부터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스투디우스(Studius) 수도원에서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11월 11일)의 제자로서 교육을 받았고, 18세에 그곳의 수도자가 되었다.

황제 테오필루스가 성상공경 문제로 박해를 일으켰을 때에는 잠시 유배생활을 하였으나, 842년에 그 황제가 사망하자 귀향하여 원장이 되었다.

또 858년에 황제 미카엘 3세가 성 이냐시오(Ignatius, 10월 23일) 주교를 유배시키고 포티우스(Photius)를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로 임명하자, 그는 이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하여 자발적으로 유배의 길을 떠났던 인물이다.

몇 년 후 수도원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즉시 투옥되었다가 스투디우스 수도원에서 선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도나토

 

  • 가톨릭 성인 이름
    Dona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세기

 

 

도나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도나또, 도나뚜스, 도나투스.

 

 

도나토 자료

성 아퀼리누스(Aquilinus)와 성 게미누스(Geminus), 성 젤라시우스(Gelasius), 성 마그누스(Magnus), 성 도나투스(또는 도나토)는 3세기말 이탈리아 중부 포솜브로네(Fossombrone)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라바노 마우로

 

  • 가톨릭 성인 이름
    Rabanus Maurus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776?-856년 마인츠

 

 

라바노 마우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라바누스, 마오로, 마우로, 마우루스.

 

 

라바노 마우로 자료

독일의 마인츠 출신인 듯한 라바누스 마우루스(또는 라바노 마우로)는 헤센(Hessen) 지방 풀다(Fulda)의 수도원 학교와 프랑스 투르(Tours)에서 공부하였고, 풀다로 다시 돌아온 후에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특히 초기 교부들과 성서에 대하여 폭넓은 지식을 가졌던 것으로 유명하였다. 그는 815년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822년에는 원장이 되어 여러 교회와 수도원들을 건설하였다. 

또한 그는 스스로 원장직을 사임하여 지내던 중 71세의 나이로 마인츠의 주교로 임명되자, 교구 사제들에게 수도자와 같은 엄격한 규율을 적용시켜 쇄신코자 하였고, 고트샬크(Gottschalk)의 이단적인 가르침을 봉쇄하였다. 

그는 순교록을 기술하였고 또 유명한 “오소서, 성령이여!”(Veni Creator Spiritus)를 짓는 등 많은 찬미가와 시를 썼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렘베르토

 

  • 가톨릭 성인 이름
    Rembert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888년 브레멘-함부르크

 

 

렘베르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렘베르또, 렘베르뚜스, 렘베르투스.

 

 

렘베르토 자료

성 렘베르투스(Rembertus, 또는 렘베르토)는 벨기에 플랑드르(Flandre) 지방 브뤼헤(Brugge) 근방에서 태어나 투르홀트(Turholt) 수도원의 수도자로 지내던 중, 성 안스카리우스(Anscharius, 2월 3일)의 부름을 받고 그 성인의 선교지에서 일하게 되었다.

865년 성 안스카리우스의 선종 이후 그는 브레멘-함부르크 대교구의 주교로 피선되어 스웨덴과 덴마크 그리고 남부 독일 지방 교회를 책임지게 되었다. 그는 또 북부 슬라브인들의 개종을 시도했으며, 성구들을 팔아서 포로들을 속량하였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일과 기도의 균형을 맞출 줄 알았다는 것과 하느님의 현존을 잊어버릴 정도로 외부 일에 빠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성 안스카리우스의 전기를 썼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마뇨

 

  • 가톨릭 성인 이름
    Mag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세기

 

 

마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그누스, 마누스, 망누스.

 

 

마뇨 자료

성 아퀼리누스(Aquilinus)와 성 게미누스(Geminus), 성 젤라시우스(Gelasius), 성 마그누스(또는 마뇨), 성 도나투스(Donatus)는 3세기말 이탈리아 중부 포솜브로네(Fossombrone)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모단

 

  • 가톨릭 성인 이름
    Mod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6세기

 

 

모단 자료

아일랜드 추장의 아들인 성 모단은 스코틀랜드의 드라이버그(Dryburgh) 수도원에서 지극히 엄격한 보속생활을 하던 중 자신의 뜻과는 달리 원장이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수도원에만 있지 않고 스코틀랜드의 스털링(Stirling)에서 포스(Forth)에 이르는 지역에서 순회설교를 실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는 선교활동을 자주 중단하고, 그 동안에 덤바턴(Dumbarton) 교외의 산중에서 독수생활을 즐겼다. 그는 한 번 그곳에 들어가면 30-40일 정도씩 관상에만 몰두하였다.

이윽고 말년에 이른 그는 아예 그곳에 정착하여 독수생활을 하다가 선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아벤티노

 

  • 가톨릭 성인 이름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538년

 

 

아벤티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벤띠노, 아벤띠누스, 아벤티누스.

 

 

아벤티노 자료

프랑스 중부에서 태어난 성 아벤티누스(또는 아벤티노)는 은수자로서 살기 위해 은퇴할 때까지 트루아(Troyes)의 주교 성 루푸스(Lupus, 7월 29일)를 도와 가난한 이들에게 구호물품을 나누어주는 일을 하였다. 그가 은둔하던 장소는 현재 생아뱅탱(Saint-Aventin)으로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아퀼리노

 

  • 가톨릭 성인 이름
    Aquil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세기

 

 

아퀼리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귈리노, 아귈리누스, 아뀔리노, 아뀔리누스, 아퀼리누스.

 

 

아퀼리노 자료

성 아퀼리누스(또는 아퀼리노)와 성 게미누스(Geminus), 성 젤라시우스(Gelasius), 성 마그누스(Magnus), 성 도나투스(Donatus)는 3세기말 이탈리아 중부 포솜브로네(Fossombrone)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안드레아 코르시니

 

  • 가톨릭 성인 이름
    Andrew Corsini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302-1374년 피에졸레

 

 

안드레아 코르시니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꼬르시노, 꼬르시누스, 꼬르시니, 안드레아스, 앙드레, 앤드루, 앤드류, 코르시노, 코르시누스.

 

 

안드레아 코르시니 자료

성 안드레아 코르시니(Andreas Corsini)는 1302년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의 명문 귀족인 코르시니가(家)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니콜라스 코르시니(Nicholas Corsini)와 어머니 페레그리나(Peregrina)는 결혼 후 오랫동안 자녀가 없어서 근심하며 기도하던 중 아이를 가져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에 그를 낳았다.

그의 어머니는 태중의 아기를 동정 성모의 보호하심에 맡겼고, 출산 전날에는 늑대를 낳는 꿈을 꾸기도 했으나 건강하고 예쁜 아이를 낳아 안드레아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어린 시절 학교에 입학한 성 안드레아 코르시니는 비상한 재능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그 성질이 난폭하고 고약해 어린 동생들을 늘 울리곤 해 어머니의 눈물과 기도가 그치지 않았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부모에게까지 대드는 그에게 어머니는 태몽으로 꾼 늑대 이야기를 해 주었고, 동정 성모께 전구해서 태어난 경위를 소상히 설명해주었다.

어머니의 이야기에 자극받은 그는 어머니가 동정 성모께 서원을 발한 성당을 찾아 오랫동안 기도한 후 1318년 피렌체에 있는 카르멜회에 입회했다. 명문 귀족 출신의 말썽꾸러기였던 그는 아주 모범적인 수도자로 변신했다.

그는 수도원의 청소나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수행하며 겸손의 덕을 쌓아갔다. 1328년 사제품을 받은 후 성대히 첫 미사를 봉헌하길 원했던 부모의 뜻과는 달리, 그는 교외의 작은 수도원 성당에서 조용히 미사를 봉헌했다.

그 후 그는 프랑스 파리(Paris)와 아비뇽(Avignon)에서 수학한 후 1349년 피에졸레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 직책을 모면하려고 멀리 도망을 쳐서 엔나(Enna)의 한 수도원에 몸을 숨겼으나 이내 발견되어 결국 주교 축성식을 가졌다.

주교로서 성 안드레아 코르시니는 분쟁을 조정하는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그 때문에 그는 볼로냐(Bologna)의 분쟁을 화해시키는 교황사절로 임명되어 큰 활약을 했다.

늘 겸손한 자세로 엄격한 생활을 실천하며 가난한 이와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사랑했던 성 안드레아 코르시니는 1373년 주님 성탄 대축일 밤미사를 봉헌하다가 성모의 발현을 보았는데, 성모님은 그가 주님 공현 대축일(삼왕 내조 축일)에 임종할 것을 미리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는 1440년 교황 에우게니우스 4세(Eugenius IV)에 의해 시복되었고, 1629년 4월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1737년 코르시니 가문 출신인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는 로마의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당 내에 그를 기념하는 경당을 만들어 봉헌했다. 그는 성 안드레아 코르시누스(Andreas Corsinus, 또는 안드레아 코르시노)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에우티키오

 

  • 가톨릭 성인 이름
    Eutych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 로마

 

 

에우티키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우띠치오, 에우띠치우스, 에우티치오, 에우티치우스, 에우티키우스.

 

 

에우티키오 자료

교황 성 다마수스 1세(Damasus I, 12월 11일)가 쓴 비문에 의하면 성 에우티키우스(또는 에우티키오)는 로마에서 우물에 던져져 순교하기 전에 감옥에서 12일 동안 음식 없이 갇혀 있었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요셉

 

  • 가톨릭 성인 이름
    Joseph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56-1612년 레오니사

 

 

요셉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요세푸스, 요제프,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호세.

 

 

요셉 자료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의 레오니사 출신인 성 요셉(Josephus)은 18세 때에 카푸친 회원으로 서원하고 요셉이란 수도명을 받았다.

그는 지극히 겸손하고 순종적이었으며 영웅적으로 극기생활을 하였다. 한 번은 3주간 동안이나 물도 빵도 없이 지낸 때도 있었다. 그는 항상 손에 십자가를 들고 설교했고, 끓어오르는 열정을 폭발시키는 듯한 자세로 열변을 토하였다.

1587년 그는 터키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부근의 페라(Pera)로 파견되어 수많은 배교자들을 회두시키고 모슬렘들을 상대로 설교하였다.

그 과정에서 두 차례나 투옥되었는데, 두 번째 투옥중에 그는 잔인한 형벌을 당한 후 간신히 사형을 면하고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후 움브리아 지방에서 열정적으로 사목활동을 하며 40시간 성체조배 신심을 보급한 그는 1612년 2월 4일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737년 6월 22일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746년 6월 29일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요한 데 브리토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de Britto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선교사,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47-1693년

 

 

요한 데 브리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브리투,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주앙,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 데 브리토 자료

성 요한 데 브리토(Joannes de Britto)는 1647년 3월 1일 포르투갈 리스본(Lisbon)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9살 때 왕자의 시중을 들기 위해 왕궁으로 들어갔고, 1662년 15세의 나이로 부모와 왕자의 반대를 물리치고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입회 때부터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우스(Franciscus Xaverius, 12월 3일)와 같은 선교사의 길을 소망한 그는 1673년 2월 5일 사제품을 받은 후 바로 인도 선교를 위해 파견되었다.

리스본을 떠나 그해 9월 고아(Goa)에 도착해 수련과 타밀어 공부를 병행한 후 마두라이(Madurai)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선교 활동을 펼쳤다.

그는 당시 선교지역의 문화와 풍습을 존중하며 복음을 선포하던 예수회의 적응주의적 원칙에 따라 될 수 있는 대로 그곳 주민들의 언어와 생활 습관 등을 따르려고 노력했다.

복장도 당시 힌두교의 수행자들이 입던 진노랑의 승복으로 바꿔 입고, 지역 주민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그 과정에서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만나자 그 지역 통치자와 브라만들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마두라이 지역에서 11년 동안 복음을 전한 그는 1685년 마두라이 지역의 선교 책임자가 되었고, 이듬해 5월 입국이 금지되어 있던 마라바(Marava) 지역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수천 명의 개종자가 나오자 교리교육을 도와주던 협력자들과 함께 체포되어 약 한 달간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받은 후 8월에 풀려났다.

다시 마두라이로 돌아온 그는 예수회의 대의원으로 뽑혀 유럽 교회에 가서 인도의 선교 상황을 보고하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690년 다시 인도로 돌아왔다.

1692년 그는 신자들을 방문하고자 다시 마라바로 들어갔고, 예비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미사를 봉헌하며 선교 활동을 재개했다.

당시 그가 머물던 곳의 한 왕자가 병으로 고생하던 중 성 요한 데 브리토 신부를 돕던 교리교사들의 극진한 간병으로 치유되자 세례받기를 청했다.

성 요한 데 브리토 신부는 왕자에게 여러 명의 아내 중 첫 번째 부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돌려보내길 요구했고, 왕자는 그의 뜻대로 실행하고 나서 1693년 1월 6일 세례성사를 받았다.

그런데 왕자가 돌려보낸 부인들 중에 왕의 조카딸이 있었다. 이로 인해 앙심을 품은 왕은 군인들을 보내 성 요한 데 브리토 신부를 체포한 후 자신의 지역에서 다시는 선교 활동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긴 죄로 오리유르(Oriyur) 지역으로 추방해 죽이도록 명했다.

1월 31일 오리유르로 이송된 그는 2월 4일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다. 그는 1853년 8월 21일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시복되었고, 1947년 6월 22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이시도로

 

  • 가톨릭 성인 이름
    Isidor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수도승

  • 활동 연도와 지역
    +450년경 펠루시움

 

 

이시도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이시도루스, 이시도르, 이시돌.

 

 

이시도로 자료

알렉산드리아 태생인 성 이시도루스(Isidorus, 또는 이시도로)는 젊어서 그 도시를 떠나 펠루시움 교외 리크노스(Lychnos)에 있는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 후 그는 사제가 되어 원장으로 봉사하였다. 그는 특히 수도자로서의 의무 수행에 충실하였고 수많은 서한으로써 유명하였다.

약 2천통에 달하는 그의 편지들은 주로 신심적인 권고와 신학적인 교육을 목표로 한 것으로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인양성을 부정하고 그리스도 단성설을 주장한 네스토리우스(Nestorius)와 에우티케스(Eutyches) 이단의 강력한 반대자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제미노

 

  • 가톨릭 성인 이름
    Gem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세기

 

 

제미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게미노, 게미누스, 제미누스.

 

 

제미노 자료

성 아퀼리누스(Aquilinus)와 성 게미누스(또는 제미노), 성 젤라시우스(Gelasius), 성 마그누스(Magnus), 성 도나투스(Donatus)는 3세기말 이탈리아 중부 포솜브로네(Fossombrone)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젤라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Gelas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세기

 

 

젤라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겔라시오, 겔라시우스, 젤라시우스.

 

 

젤라시오 자료

성 아퀼리누스(Aquilinus)와 성 게미누스(Geminus), 성 젤라시우스(또는 젤라시오), 성 마그누스(Magnus), 성 도나투스(Donatus)는 3세기말 이탈리아 중부 포솜브로네(Fossombrone)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6. 질베르토

 

  • 가톨릭 성인 이름
    Gilbert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설립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083?-1189년경 셈프링햄

 

 

질베르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길버트, 길베르토, 길베르투스, 질베르투스.

 

 

질베르토 자료

영국의 링컨셔(Lincolnshire)의 셈프링햄 태생인 성 길베르투스(Gilbertus, 또는 질베르토)는 부유한 노르만(Norman) 기사인 조셀린(Jocelin)의 아들로 태어나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가 영국으로 귀향한 뒤에 부친을 계승하여 셈프링햄과 티링턴(Tirington)의 상속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후 그는 링컨(Lincoln)의 로버트 블로엣(Robert Bloet) 주교 관할의 성직자가 되었으나, 1131년에 부친이 사망한 관계로 작위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같은 해부터 그는 일곱 명의 젊은 여성들과 남성들이 봉쇄생활을 하는 그룹의 지도자로 활약하였고, 이 단체를 수도회로 육성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후 얼마 뒤에 그는 프랑스 디종(Dijon) 근처 시토(Citeaux)에 가서 시토회원들이 여자 수도회를 맡아 줄 것을 요청하여 승낙을 받았다.

그리고 남자 수도회는 자신이 지도하여 교황 성 에우게니우스 3세(Eugenius III, 7월 8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길베르투스회로도 알려진 이 공동체는 영국에서만 26개의 수도원으로 성장하였으나 헨리 8세의 탄압을 받게 되었다.

1165년 그는 캔터베리(Canterbury)의 성 토마스 베케트(Thomas Becket, 12월 29일) 주교를 지원한 죄목으로 투옥되기도 하였다. 그는 1202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7. 테오필로

 

  • 가톨릭 성인 이름
    Theophil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통회자

  • 활동 연도와 지역
    +6세기경  아다나

 

 

테오필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떼오필로, 떼오필루스, 테오필루스.

 

 

테오필로 자료

독일 브라운슈바이크(Braunschweig)의 간데스하임(Gandersheim) 수녀원의 로스비타(Hrosvitha)가 쓴 10세기의 라틴어 연극 작품에는 성 테오필루스(또는 테오필로)가 실리시아(Cilicia) 지방 아다나 교구의 주교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는 겸손한 주교였다고 한다.

로스비타가 전하는 다소 전설적인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어떤 사람에 의해서 교회의 직책에서 면직되자 사탄과 계약을 맺고 난폭하게 행동한 어떤 주교였다.

후일 그 주교는 회개하고 성모님께 간청하여 용서를 구하였으나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기 가슴에 사탄에게 서약한 증서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더욱 간절히 통회하고 공식적으로 자기 죄를 고백하였으며 그 증서를 교우들이 보는 앞에서 불태웠다. 그런데 사실은 그가 바로 성 테오필루스였다고 한다.

사실 성 테오필루스의 이야기는 후일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괴테(Goethe)가 파우스트(Faust)를 쓰는데 기초적인 소재가 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8. 필레아

 

  • 가톨릭 성인 이름
    Philea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5년경 트무이스

 

 

필레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삘레아스, 필레아스.

 

 

필레아 자료

이집트 트무이스의 주교이던 성 필레아는 분별력이 있고 또 학식이 뛰어났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감옥에서 그는 알렉산드리아 신자들의 박해 상황을 글로 써 보낸 직후에 순교하였다.

이 때 호민관이던 성 필로로무스(Philoromus) 역시 성 필레아를 배교시키려는 집정관의 노력에 반대하다가 순교하였다. 이 둘은 배교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지킴으로써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순교의 길에 동참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9. 필로로모

 

  • 가톨릭 성인 이름
    Philorom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호민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5년경

 

 

필로로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삘로로모, 삘로로무스, 필로로무스.

 

 

필로로모 자료

이집트 트무이스(Thmuis)의 주교이던 성 필레아(Phileas)는 분별력이 있고 또 학식이 뛰어났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감옥에서 그는 알렉산드리아 신자들의 박해 상황을 글로 써 보낸 직후에 순교하였다.

이 때 호민관이던 성 필로로무스(또는 필로로모) 역시 성 필레아를 배교시키려는 집정관의 노력에 반대하다가 순교하였다. 이 둘은 배교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지킴으로써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순교의 길에 동참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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