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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 남자세례명 17가지

피어나네 2023. 2. 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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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다니엘, 바오로, 발렌스, 베르나르도 스캄마카, 사무엘, 셀레우코, 엘리야, 예레미야, 오네시모스, 율리아노 (이집트), 율리아노 (카이사레아), 이사야, 테오둘로, 파우스티노, 팜필로, 포르피리오, 호네스토, 총 17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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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 여자세례명 율리아나, 필립바 마레리아, 총 2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2월 16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7가지

 

 

 

 

2월 16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다니엘

  2. 바오로

  3. 발렌스

  4. 베르나르도 스캄마카

  5. 사무엘

  6. 셀레우코

  7. 엘리야

  8. 예레미야

  9. 오네시모스

  10. 율리아노 (이집트)

  11. 율리아노 (카이사레아)

  12. 이사야

  13. 테오둘로

  14. 파우스티노

  15. 팜필로

  16. 포르피리오

  17. 호네스토

 

2월 16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7가지

 

 

1. 다니엘

 

  • 가톨릭 성인 이름
    Danie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9년 카이사레아(Caesarea)

 

 

다니엘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대니얼.

 

 

다니엘 자료

성 엘리야(Elias)와 4명의 동료인 성 예레미야(Jeremias), 성 이사야(Isaias), 성 사무엘(Samuel), 성 다니엘은 모두 이집트 출신의 젊은 그리스도인들로 박해받는 신자들을 방문하고 돌봤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그들은 소아시아의 실리시아(Cilicia) 지방에 있는 광산으로 보내지는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그들은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황제(305~311년 재위) 치하 때 형을 마치고 이집트로 돌아가던 길에 팔레스티나의 카이사레아 성문 밖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고발되어 체포되었다. 그들은 모두 그 지방의 총독인 피르밀리아누스(Firmilianus) 앞으로 끌려가 심문을 받았다.

그들의 이름을 묻는 총독의 질문에 그들은 부모가 준 이교도의 이름이 아닌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들의 이름을 자신들의 이름으로 답했다.

그들의 출신지에 관한 질문에도 천상 예루살렘의 시민이란 의미에서 예루살렘이라고 답했다. 그들은 잔인한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가 모두 끌려 나와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이집트 출신의 다섯 젊은이가 순교한 뒤에 이미 오래전부터 갇혀있던 성 팜필루스(Pamphilus) 신부와 성 발렌스 부제 그리고 얌니아(Jamnia, 오늘날의 야브네 Yavne) 출신의 성 바오로(Paulus)도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리고 성 팜필루스의 하인인 성 포르피리우스(Porphyrius)가 총독에게 장례를 지내기 위해 그들의 시신을 달라고 청했다가 체포되었다. 그 또한 사형 선고를 받고 모진 고문 뒤에 불 속에 던져지는 화형으로 순교하였다.

이때 카파도키아(Cappadocia) 출신의 전직 군인인 성 셀레우쿠스(Seleucus)가 성 포르피리우스의 죽음을 목격했는데, 두렵고 고통스러운 죽음의 순간에도 변함없이 신앙을 증거하고 웃는 얼굴로 순교의 월계관을 쓰는 모습에 크게 감동하였다.

그래서 성 셀레우쿠스도 성 포르피리우스의 용맹한 순교를 칭송하다가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지혜롭고 신심 깊은 노인이던 성 테오둘루스(Theodulus)는 피르밀리아누스 총독 집안에서 가장 존경받는 하인이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평소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해오던 그는 성 엘리야를 비롯해 다섯 명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준 영웅적 행동에 감탄해서 감옥에 갇힌 그들을 방문하였다.

그들과 함께 기도하던 그는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도왔다는 혐의로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총독 앞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분노한 총독의 명령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

그리고 카파도키아 출신으로 여행을 마치고 막 카이사레아로 돌아온 성 율리아누스(Julianus)는 다섯 순교자의 영웅적 순교 이야기를 듣고는 그들이 순교한 곳으로 가서 그 땅에 입을 맞추고 성인들의 유해를 하나하나 끌어안으며 입을 맞춰 공경의 예를 표하였다.

이를 본 파수꾼들에 의해 그 또한 그리스도인으로 체포되어 총독 앞으로 끌려갔고, 산 채로 불태우는 화형을 선고받고 순교하였다.

이렇게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때문에 카이사레아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쓴 12명 순교자의 시신은 나흘 동안 매장되지 못하고 짐승의 밥으로 버려졌다. 하지만 짐승이나 새가 전혀 순교자의 시신을 건드리지 못하자 결국 수습해서 매장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 팜필루스와 성 발렌스와 성 바오로를 6월 1일 목록에, 함께 순교한 다섯 젊은이와 성 포르피리우스와 성 셀레우쿠스는 2월 16일 목록에, 그리고 성 테오둘루스와 성 율리아누스는 2월 17일 목록에 기록해 기념했었다.

그런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이들 12명의 순교자 모두를 2월 16일 목록에 기록하며 그날에 함께 기념하도록 했다. 이들 순교자의 희생으로 카이사레아 지역에서의 선교 활동이 더욱 활발히 이루어졌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바오로

 

  • 가톨릭 성인 이름
    Pau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9년 카이사레아(Caesarea)

 

 

바오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울로, 바울루스, 빠울로, 빠울루스, 파울로, 파울루스, 폴.

 

 

바오로 자료

예루살렘(Jerusalem)의 부제였던 성 발렌스(Valens)와 얌니아(Jamnia, 오늘날의 야브네 Yavne) 출신의 성 바오로(Paulus)는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황제(305~311년 재위)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카이사레아에 성서 학교를 세우고 성경 필사본을 분석 · 연구하며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선포하는 성 팜필루스(Pamphilus) 신부를 적극적으로 도우며 헌신했다.

그러던 중 307년 말 그들 모두 팔레스티나의 총독인 우르바누스(Urbanus)에 의해 체포되어 그리스도교 신앙 때문에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갇혀 2년여의 세월을 보냈다.

309년 우르바누스의 후임인 피르밀리아누스(Firmilianus) 총독 때 이집트 출신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때문에 실리시아(Cilicia)의 광산에서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아 형을 마치고 이집트로 돌아가던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성문 밖에서 체포되어 카이사레아로 끌려왔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 고발되어 잔인한 고문을 받고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리고 그들에 이어 감옥에 있던 성 팜필루스와 성 발렌스 그리고 성 바오로도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 팜필루스와 성 발렌스와 성 바오로를 6월 1일 목록에 기록하고, 함께 순교한 다섯 젊은이를 포함해 9명의 동료는 다른 날(2월 16일과 17일)에 기념한다고 했다.

그런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6월 1일에 기념하던 성 팜필루스와 성 발렌스와 성 바오로 그리고 2월 17일에 기념하던 두 동료도 모두 2월 16일 목록으로 옮겨 12명의 순교자를 같은 날 함께 기념하도록 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발렌스

 

  • 가톨릭 성인 이름
    Valen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부제,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9년 카이사레아(Caesarea)

 

 

발렌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발렌스 자료

예루살렘(Jerusalem)의 부제였던 성 발렌스와 얌니아(Jamnia, 오늘날의 야브네 Yavne) 출신의 성 바오로(Paulus)는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황제(305~311년 재위)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카이사레아에 성서 학교를 세우고 성경 필사본을 분석 · 연구하며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선포하는 성 팜필루스(Pamphilus) 신부를 적극적으로 도우며 헌신했다.

그러던 중 307년 말 그들 모두 팔레스티나의 총독인 우르바누스(Urbanus)에 의해 체포되어 그리스도교 신앙 때문에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갇혀 2년여의 세월을 보냈다.

309년 우르바누스의 후임인 피르밀리아누스(Firmilianus) 총독 때 이집트 출신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때문에 실리시아(Cilicia)의 광산에서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아 형을 마치고 이집트로 돌아가던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성문 밖에서 체포되어 카이사레아로 끌려왔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 고발되어 잔인한 고문을 받고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리고 그들에 이어 감옥에 있던 성 팜필루스와 성 발렌스 그리고 성 바오로도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 팜필루스와 성 발렌스와 성 바오로를 6월 1일 목록에 기록하고, 함께 순교한 다섯 젊은이를 포함해 9명의 동료는 다른 날(2월 16일과 17일)에 기념한다고 했다.

그런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6월 1일에 기념하던 성 팜필루스와 성 발렌스와 성 바오로 그리고 2월 17일에 기념하던 두 동료도 모두 2월 16일 목록으로 옮겨 12명의 순교자를 같은 날 함께 기념하도록 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베르나르도 스캄마카

 

  • 가톨릭 성인 이름
    Bernard Scammacca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수사

  • 활동 연도와 지역
    1430-1487년

 

 

베르나르도 스캄마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버나드, 베르나르두스.

 

 

베르나르도 스캄마카 자료

베르나르두스 스캄마카(Bernardus Scammacca, 또는 베르나르도 스캄마카)는 시칠리아(Sicilia) 카타니아(Catania)의 귀족 가문 태생이다.

그는 젊은 나이에 아주 난폭한 아내를 얻어 고생하였고, 또 말다툼 끝에 그의 다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런 와중에서 그는 하느님께 완전히 회두하였고, 도미니코회에 입회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지난날의 잘못을 씻는 길은 순종과 겸손으로 살아야만 가능하리라 굳게 믿었다. 이렇듯 그의 태도가 전혀 달라졌기 때문에 새들이 그의 팔에 내려앉아 노래하였다고 전해져 온다. 그가 땅에 엎드려 기도하거나 혹은 방에 혼자 있을 때에는 가끔씩 찬란한 빛이 비쳤으며, 그의 곁에는 천상 아기가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고 한다.

그는 1487년 1월 11일 카타니아에서 운명했는데, 그의 사후에도 이런 비슷한 기적이 수 없이 많았다고 한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25년 교황 레오 12세(Leo XII)에 의해 승인되었다. 도미니코회에서는 1월 11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사무엘

 

  • 가톨릭 성인 이름
    Samue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9년 카이사레아(Caesarea)

 

 

사무엘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사뮈엘, 새무얼, 싸무엘.

 

 

사무엘 자료

성 엘리야(Elias)와 4명의 동료인 성 예레미야(Jeremias), 성 이사야(Isaias), 성 사무엘, 성 다니엘(Daniel)은 모두 이집트 출신의 젊은 그리스도인들로 박해받는 신자들을 방문하고 돌봤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그들은 소아시아의 실리시아(Cilicia) 지방에 있는 광산으로 보내지는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그들은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황제(305~311년 재위) 치하 때 형을 마치고 이집트로 돌아가던 길에 팔레스티나의 카이사레아 성문 밖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고발되어 체포되었다.

그들은 모두 그 지방의 총독인 피르밀리아누스(Firmilianus) 앞으로 끌려가 심문을 받았다. 그들의 이름을 묻는 총독의 질문에 그들은 부모가 준 이교도의 이름이 아닌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들의 이름을 자신들의 이름으로 답했다.

그들의 출신지에 관한 질문에도 천상 예루살렘의 시민이란 의미에서 예루살렘이라고 답했다. 그들은 잔인한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가 모두 끌려 나와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이집트 출신의 다섯 젊은이가 순교한 뒤에 이미 오래전부터 갇혀있던 성 팜필루스(Pamphilus) 신부와 성 발렌스 부제 그리고 얌니아(Jamnia, 오늘날의 야브네 Yavne) 출신의 성 바오로(Paulus)도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리고 성 팜필루스의 하인인 성 포르피리우스(Porphyrius)가 총독에게 장례를 지내기 위해 그들의 시신을 달라고 청했다가 체포되었다. 그 또한 사형 선고를 받고 모진 고문 뒤에 불 속에 던져지는 화형으로 순교하였다.

이때 카파도키아(Cappadocia) 출신의 전직 군인인 성 셀레우쿠스(Seleucus)가 성 포르피리우스의 죽음을 목격했는데, 두렵고 고통스러운 죽음의 순간에도 변함없이 신앙을 증거하고 웃는 얼굴로 순교의 월계관을 쓰는 모습에 크게 감동하였다. 그래서 성 셀레우쿠스도 성 포르피리우스의 용맹한 순교를 칭송하다가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지혜롭고 신심 깊은 노인이던 성 테오둘루스(Theodulus)는 피르밀리아누스 총독 집안에서 가장 존경받는 하인이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평소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해오던 그는 성 엘리야를 비롯해 다섯 명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준 영웅적 행동에 감탄해서 감옥에 갇힌 그들을 방문하였다.

그들과 함께 기도하던 그는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도왔다는 혐의로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총독 앞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분노한 총독의 명령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

그리고 카파도키아 출신으로 여행을 마치고 막 카이사레아로 돌아온 성 율리아누스(Julianus)는 다섯 순교자의 영웅적 순교 이야기를 듣고는 그들이 순교한 곳으로 가서 그 땅에 입을 맞추고 성인들의 유해를 하나하나 끌어안으며 입을 맞춰 공경의 예를 표하였다.

이를 본 파수꾼들에 의해 그 또한 그리스도인으로 체포되어 총독 앞으로 끌려갔고, 산 채로 불태우는 화형을 선고받고 순교하였다.

이렇게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때문에 카이사레아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쓴 12명 순교자의 시신은 나흘 동안 매장되지 못하고 짐승의 밥으로 버려졌다. 하지만 짐승이나 새가 전혀 순교자의 시신을 건드리지 못하자 결국 수습해서 매장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 팜필루스와 성 발렌스와 성 바오로를 6월 1일 목록에, 함께 순교한 다섯 젊은이와 성 포르피리우스와 성 셀레우쿠스는 2월 16일 목록에, 그리고 성 테오둘루스와 성 율리아누스는 2월 17일 목록에 기록해 기념했었다.

그런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이들 12명의 순교자 모두를 2월 16일 목록에 기록하며 그날에 함께 기념하도록 했다. 이들 순교자의 희생으로 카이사레아 지역에서의 선교 활동이 더욱 활발히 이루어졌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셀레우코

 

  • 가톨릭 성인 이름
    Seleuc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9년 카이사레아(Caesarea)

 

 

셀레우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셀레우꼬, 셀레우꾸스, 셀레우쿠스, 쎌레우꼬, 쎌레우꾸스.

 

 

셀레우코 자료

성 엘리야(Elias)와 4명의 동료인 성 예레미야(Jeremias), 성 이사야(Isaias), 성 사무엘(Samuel), 성 다니엘(Daniel)은 모두 이집트 출신의 젊은 그리스도인들로 박해받는 신자들을 방문하고 돌봤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그들은 소아시아의 실리시아(Cilicia) 지방에 있는 광산으로 보내지는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그들은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황제(305~311년 재위) 치하 때 형을 마치고 이집트로 돌아가던 길에 팔레스티나의 카이사레아 성문 밖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고발되어 체포되었다.

그들은 모두 그 지방의 총독인 피르밀리아누스(Firmilianus) 앞으로 끌려가 심문을 받았다. 그들의 이름을 묻는 총독의 질문에 그들은 부모가 준 이교도의 이름이 아닌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들의 이름을 자신들의 이름으로 답했다.

그들의 출신지에 관한 질문에도 천상 예루살렘의 시민이란 의미에서 예루살렘이라고 답했다. 그들은 잔인한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가 모두 끌려 나와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이집트 출신의 다섯 젊은이가 순교한 뒤에 이미 오래전부터 갇혀있던 성 팜필루스(Pamphilus) 신부와 성 발렌스 부제 그리고 얌니아(Jamnia, 오늘날의 야브네 Yavne) 출신의 성 바오로(Paulus)도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리고 성 팜필루스의 하인인 성 포르피리우스(Porphyrius)가 총독에게 장례를 지내기 위해 그들의 시신을 달라고 청했다가 체포되었다. 그 또한 사형 선고를 받고 모진 고문 뒤에 불 속에 던져지는 화형으로 순교하였다.

이때 카파도키아(Cappadocia) 출신의 전직 군인인 성 셀레우쿠스(또는 셀레우코)가 성 포르피리우스의 죽음을 목격했는데, 두렵고 고통스러운 죽음의 순간에도 변함없이 신앙을 증거하고 웃는 얼굴로 순교의 월계관을 쓰는 모습에 크게 감동하였다.

그래서 성 셀레우쿠스도 성 포르피리우스의 용맹한 순교를 칭송하다가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지혜롭고 신심 깊은 노인이던 성 테오둘루스(Theodulus)는 피르밀리아누스 총독 집안에서 가장 존경받는 하인이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평소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해오던 그는 성 엘리야를 비롯해 다섯 명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준 영웅적 행동에 감탄해서 감옥에 갇힌 그들을 방문하였다.

그들과 함께 기도하던 그는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도왔다는 혐의로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총독 앞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분노한 총독의 명령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

그리고 카파도키아 출신으로 여행을 마치고 막 카이사레아로 돌아온 성 율리아누스(Julianus)는 다섯 순교자의 영웅적 순교 이야기를 듣고는 그들이 순교한 곳으로 가서 그 땅에 입을 맞추고 성인들의 유해를 하나하나 끌어안으며 입을 맞춰 공경의 예를 표하였다.

이를 본 파수꾼들에 의해 그 또한 그리스도인으로 체포되어 총독 앞으로 끌려갔고, 산 채로 불태우는 화형을 선고받고 순교하였다.

이렇게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때문에 카이사레아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쓴 12명 순교자의 시신은 나흘 동안 매장되지 못하고 짐승의 밥으로 버려졌다.

하지만 짐승이나 새가 전혀 순교자의 시신을 건드리지 못하자 결국 수습해서 매장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 팜필루스와 성 발렌스와 성 바오로를 6월 1일 목록에, 함께 순교한 다섯 젊은이와 성 포르피리우스와 성 셀레우쿠스는 2월 16일 목록에, 그리고 성 테오둘루스와 성 율리아누스는 2월 17일 목록에 기록해 기념했었다.

그런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이들 12명의 순교자 모두를 2월 16일 목록에 기록하며 그날에 함께 기념하도록 했다. 이들 순교자의 희생으로 카이사레아 지역에서의 선교 활동이 더욱 활발히 이루어졌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엘리야

 

  • 가톨릭 성인 이름
    Elia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9년 카이사레아(Caesarea)

 

 

엘리야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앨리아, 엘리아스.

 

 

엘리야 자료

성 엘리야와 4명의 동료인 성 예레미야(Jeremias), 성 이사야(Isaias), 성 사무엘(Samuel), 성 다니엘(Daniel)은 모두 이집트 출신의 젊은 그리스도인들로 박해받는 신자들을 방문하고 돌봤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그들은 소아시아의 실리시아(Cilicia) 지방에 있는 광산으로 보내지는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그들은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황제(305~311년 재위) 치하 때 형을 마치고 이집트로 돌아가던 길에 팔레스티나의 카이사레아 성문 밖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고발되어 체포되었다.

그들은 모두 그 지방의 총독인 피르밀리아누스(Firmilianus) 앞으로 끌려가 심문을 받았다. 그들의 이름을 묻는 총독의 질문에 그들은 부모가 준 이교도의 이름이 아닌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들의 이름을 자신들의 이름으로 답했다.

그들의 출신지에 관한 질문에도 천상 예루살렘의 시민이란 의미에서 예루살렘이라고 답했다. 그들은 잔인한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가 모두 끌려 나와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이집트 출신의 다섯 젊은이가 순교한 뒤에 이미 오래전부터 갇혀있던 성 팜필루스(Pamphilus) 신부와 성 발렌스 부제 그리고 얌니아(Jamnia, 오늘날의 야브네 Yavne) 출신의 성 바오로(Paulus)도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리고 성 팜필루스의 하인인 성 포르피리우스(Porphyrius)가 총독에게 장례를 지내기 위해 그들의 시신을 달라고 청했다가 체포되었다.

그 또한 사형 선고를 받고 모진 고문 뒤에 불 속에 던져지는 화형으로 순교하였다. 이때 카파도키아(Cappadocia) 출신의 전직 군인인 성 셀레우쿠스(Seleucus)가 성 포르피리우스의 죽음을 목격했는데, 두렵고 고통스러운 죽음의 순간에도 변함없이 신앙을 증거하고 웃는 얼굴로 순교의 월계관을 쓰는 모습에 크게 감동하였다.

그래서 성 셀레우쿠스도 성 포르피리우스의 용맹한 순교를 칭송하다가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지혜롭고 신심 깊은 노인이던 성 테오둘루스(Theodulus)는 피르밀리아누스 총독 집안에서 가장 존경받는 하인이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평소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해오던 그는 성 엘리야를 비롯해 다섯 명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준 영웅적 행동에 감탄해서 감옥에 갇힌 그들을 방문하였다.

그들과 함께 기도하던 그는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도왔다는 혐의로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총독 앞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분노한 총독의 명령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

그리고 카파도키아 출신으로 여행을 마치고 막 카이사레아로 돌아온 성 율리아누스(Julianus)는 다섯 순교자의 영웅적 순교 이야기를 듣고는 그들이 순교한 곳으로 가서 그 땅에 입을 맞추고 성인들의 유해를 하나하나 끌어안으며 입을 맞춰 공경의 예를 표하였다.

이를 본 파수꾼들에 의해 그 또한 그리스도인으로 체포되어 총독 앞으로 끌려갔고, 산 채로 불태우는 화형을 선고받고 순교하였다.

이렇게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때문에 카이사레아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쓴 12명 순교자의 시신은 나흘 동안 매장되지 못하고 짐승의 밥으로 버려졌다. 하지만 짐승이나 새가 전혀 순교자의 시신을 건드리지 못하자 결국 수습해서 매장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 팜필루스와 성 발렌스와 성 바오로를 6월 1일 목록에, 함께 순교한 다섯 젊은이와 성 포르피리우스와 성 셀레우쿠스는 2월 16일 목록에, 그리고 성 테오둘루스와 성 율리아누스는 2월 17일 목록에 기록해 기념했었다.

그런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이들 12명의 순교자 모두를 2월 16일 목록에 기록하며 그날에 함께 기념하도록 했다. 이들 순교자의 희생으로 카이사레아 지역에서의 선교 활동이 더욱 활발히 이루어졌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예레미야

 

  • 가톨릭 성인 이름
    Jeremiah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9년 카이사레아(Caesarea)

 

 

예레미야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예레미아, 예레미아스, 제레미.

 

 

예레미야 자료

성 엘리야(Elias)와 4명의 동료인 성 예레미야(Jeremias), 성 이사야(Isaias), 성 사무엘(Samuel), 성 다니엘(Daniel)은 모두 이집트 출신의 젊은 그리스도인들로 박해받는 신자들을 방문하고 돌봤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그들은 소아시아의 실리시아(Cilicia) 지방에 있는 광산으로 보내지는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그들은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황제(305~311년 재위) 치하 때 형을 마치고 이집트로 돌아가던 길에 팔레스티나의 카이사레아 성문 밖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고발되어 체포되었다.

그들은 모두 그 지방의 총독인 피르밀리아누스(Firmilianus) 앞으로 끌려가 심문을 받았다. 그들의 이름을 묻는 총독의 질문에 그들은 부모가 준 이교도의 이름이 아닌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들의 이름을 자신들의 이름으로 답했다.

그들의 출신지에 관한 질문에도 천상 예루살렘의 시민이란 의미에서 예루살렘이라고 답했다. 그들은 잔인한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가 모두 끌려 나와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이집트 출신의 다섯 젊은이가 순교한 뒤에 이미 오래전부터 갇혀있던 성 팜필루스(Pamphilus) 신부와 성 발렌스 부제 그리고 얌니아(Jamnia, 오늘날의 야브네 Yavne) 출신의 성 바오로(Paulus)도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리고 성 팜필루스의 하인인 성 포르피리우스(Porphyrius)가 총독에게 장례를 지내기 위해 그들의 시신을 달라고 청했다가 체포되었다. 그 또한 사형 선고를 받고 모진 고문 뒤에 불 속에 던져지는 화형으로 순교하였다.

이때 카파도키아(Cappadocia) 출신의 전직 군인인 성 셀레우쿠스(Seleucus)가 성 포르피리우스의 죽음을 목격했는데, 두렵고 고통스러운 죽음의 순간에도 변함없이 신앙을 증거하고 웃는 얼굴로 순교의 월계관을 쓰는 모습에 크게 감동하였다.

그래서 성 셀레우쿠스도 성 포르피리우스의 용맹한 순교를 칭송하다가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지혜롭고 신심 깊은 노인이던 성 테오둘루스(Theodulus)는 피르밀리아누스 총독 집안에서 가장 존경받는 하인이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평소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해오던 그는 성 엘리야를 비롯해 다섯 명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준 영웅적 행동에 감탄해서 감옥에 갇힌 그들을 방문하였다.

그들과 함께 기도하던 그는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도왔다는 혐의로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총독 앞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분노한 총독의 명령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

그리고 카파도키아 출신으로 여행을 마치고 막 카이사레아로 돌아온 성 율리아누스(Julianus)는 다섯 순교자의 영웅적 순교 이야기를 듣고는 그들이 순교한 곳으로 가서 그 땅에 입을 맞추고 성인들의 유해를 하나하나 끌어안으며 입을 맞춰 공경의 예를 표하였다.

이를 본 파수꾼들에 의해 그 또한 그리스도인으로 체포되어 총독 앞으로 끌려갔고, 산 채로 불태우는 화형을 선고받고 순교하였다.

이렇게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때문에 카이사레아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쓴 12명 순교자의 시신은 나흘 동안 매장되지 못하고 짐승의 밥으로 버려졌다. 하지만 짐승이나 새가 전혀 순교자의 시신을 건드리지 못하자 결국 수습해서 매장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 팜필루스와 성 발렌스와 성 바오로를 6월 1일 목록에, 함께 순교한 다섯 젊은이와 성 포르피리우스와 성 셀레우쿠스는 2월 16일 목록에, 그리고 성 테오둘루스와 성 율리아누스는 2월 17일 목록에 기록해 기념했었다.

그런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이들 12명의 순교자 모두를 2월 16일 목록에 기록하며 그날에 함께 기념하도록 했다. 이들 순교자의 희생으로 카이사레아 지역에서의 선교 활동이 더욱 활발히 이루어졌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오네시모스

 

  • 가톨릭 성인 이름
    Onesim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바오로의 제자,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에페수스

 

 

오네시모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오네시모, 오네시무스.

 

 

오네시모스 자료

필레몬에게 보낸 사도 바오로(Paulus, 6월 29일)의 편지 1장 10-18절에 의하면 성 오네시모스(또는 오네시모)는 프리지아(Phrygia, 고대 소아시아 중서부 지역) 지방 콜로새(Colossae)에 살던 성 필레몬(Philemon, 11월 22일)의 노예였다. 그러다가 주인의 재산을 훔쳐 도망 나와 로마까지 흘러들어온 듯하다.

새로운 세상에서 새 출발을 하려고 했던 그는 당시 감옥에 갇혀 있던 사도 바오로를 만나게 되었다. 사도 바오로는 그에게 복음을 전해주었고, 성 오네시모스는 진심으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사도 바오로의 ‘믿음의 아들’이 되어 옥중에 있는 사도 바오로를 정성껏 보살폈다.

사도 바오로는 편지와 함께 그를 성 필레몬에게 되돌려 보내면서 성 오네시모스를 이제 종이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주도록 요청하였다. 그럼으로써 성 오네시모스가 종이 아닌 진정한 자유인으로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성 필레몬은 성 오네시모스를 종이 아닌 형제로 받아주었고, 그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 사도 바오로는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이렇게 그를 소개하였다.

“충실하고 사랑받는 형제 오네시모스도 같이 보냅니다. 그는 여러분의 동향인입니다.”(4,9)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에 따르면, 그 후 성 오네시모스는 말씀의 설교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에페수스의 주교까지 되었으며, 로마에서 돌에 맞아 순교하여 로마 순교록에도 기록되었다고 한다.

“로마 순교록”은 성 오네시모스가 성 티모테우스(Timotheus, 1월 26일)의 뒤를 이어 에페수스의 주교가 되어 주님의 말씀을 전하다 체포되어 로마로 끌려와 돌에 맞아 순교했고, 그의 시신은 처음에 로마에 묻혔다가 나중에 에페수스로 옮겨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율리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Jul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이집트

 

 

율리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율리아누스, 줄리안, 줄리언.

 

 

율리아노 자료

성 율리아누스(Julianus, 또는 율리아노)는 이집트에서 순교한 5천여 명 순교자들의 지도자였다.

그러나 그와 그의 동료들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다. 어떤 기록에는 다섯 명의 군인이란 표현이 라틴어의 비슷한 단어 때문에 5천 명으로 잘못 사용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율리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Jul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9년 카이사레아(Caesarea)

 

 

율리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율리아누스, 줄리안, 줄리언.

 

 

율리아노 자료

성 엘리야(Elias)와 4명의 동료인 성 예레미야(Jeremias), 성 이사야(Isaias), 성 사무엘(Samuel), 성 다니엘(Daniel)은 모두 이집트 출신의 젊은 그리스도인들로 박해받는 신자들을 방문하고 돌봤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그들은 소아시아의 실리시아(Cilicia) 지방에 있는 광산으로 보내지는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그들은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황제(305~311년 재위) 치하 때 형을 마치고 이집트로 돌아가던 길에 팔레스티나의 카이사레아 성문 밖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고발되어 체포되었다.

그들은 모두 그 지방의 총독인 피르밀리아누스(Firmilianus) 앞으로 끌려가 심문을 받았다. 그들의 이름을 묻는 총독의 질문에 그들은 부모가 준 이교도의 이름이 아닌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들의 이름을 자신들의 이름으로 답했다.

그들의 출신지에 관한 질문에도 천상 예루살렘의 시민이란 의미에서 예루살렘이라고 답했다. 그들은 잔인한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가 모두 끌려 나와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이집트 출신의 다섯 젊은이가 순교한 뒤에 이미 오래전부터 갇혀있던 성 팜필루스(Pamphilus) 신부와 성 발렌스 부제 그리고 얌니아(Jamnia, 오늘날의 야브네 Yavne) 출신의 성 바오로(Paulus)도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리고 성 팜필루스의 하인인 성 포르피리우스(Porphyrius)가 총독에게 장례를 지내기 위해 그들의 시신을 달라고 청했다가 체포되었다. 그 또한 사형 선고를 받고 모진 고문 뒤에 불 속에 던져지는 화형으로 순교하였다.

이때 카파도키아(Cappadocia) 출신의 전직 군인인 성 셀레우쿠스(Seleucus)가 성 포르피리우스의 죽음을 목격했는데, 두렵고 고통스러운 죽음의 순간에도 변함없이 신앙을 증거하고 웃는 얼굴로 순교의 월계관을 쓰는 모습에 크게 감동하였다.

그래서 성 셀레우쿠스도 성 포르피리우스의 용맹한 순교를 칭송하다가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지혜롭고 신심 깊은 노인이던 성 테오둘루스(Theodulus)는 피르밀리아누스 총독 집안에서 가장 존경받는 하인이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평소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해오던 그는 성 엘리야를 비롯해 다섯 명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준 영웅적 행동에 감탄해서 감옥에 갇힌 그들을 방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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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 함께 기도하던 그는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도왔다는 혐의로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총독 앞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분노한 총독의 명령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

그리고 카파도키아 출신으로 여행을 마치고 막 카이사레아로 돌아온 성 율리아누스(Julianus, 또는 율리아노)는 다섯 순교자의 영웅적 순교 이야기를 듣고는 그들이 순교한 곳으로 가서 그 땅에 입을 맞추고 성인들의 유해를 하나하나 끌어안으며 입을 맞춰 공경의 예를 표하였다.

이를 본 파수꾼들에 의해 그 또한 그리스도인으로 체포되어 총독 앞으로 끌려갔고, 산 채로 불태우는 화형을 선고받고 순교하였다.

이렇게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때문에 카이사레아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쓴 12명 순교자의 시신은 나흘 동안 매장되지 못하고 짐승의 밥으로 버려졌다. 하지만 짐승이나 새가 전혀 순교자의 시신을 건드리지 못하자 결국 수습해서 매장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 팜필루스와 성 발렌스와 성 바오로를 6월 1일 목록에, 함께 순교한 다섯 젊은이와 성 포르피리우스와 성 셀레우쿠스는 2월 16일 목록에, 그리고 성 테오둘루스와 성 율리아누스는 2월 17일 목록에 기록해 기념했었다.

그런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이들 12명의 순교자 모두를 2월 16일 목록에 기록하며 그날에 함께 기념하도록 했다. 이들 순교자의 희생으로 카이사레아 지역에서의 선교 활동이 더욱 활발히 이루어졌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이사야

 

  • 가톨릭 성인 이름
    Isaiah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9년 카이사레아(Caesarea)

 

 

이사야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이사이야.

 

 

이사야 자료

성 엘리야(Elias)와 4명의 동료인 성 예레미야(Jeremias), 성 이사야(Isaias), 성 사무엘(Samuel), 성 다니엘(Daniel)은 모두 이집트 출신의 젊은 그리스도인들로 박해받는 신자들을 방문하고 돌봤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그들은 소아시아의 실리시아(Cilicia) 지방에 있는 광산으로 보내지는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그들은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황제(305~311년 재위) 치하 때 형을 마치고 이집트로 돌아가던 길에 팔레스티나의 카이사레아 성문 밖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고발되어 체포되었다.

그들은 모두 그 지방의 총독인 피르밀리아누스(Firmilianus) 앞으로 끌려가 심문을 받았다. 그들의 이름을 묻는 총독의 질문에 그들은 부모가 준 이교도의 이름이 아닌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들의 이름을 자신들의 이름으로 답했다.

그들의 출신지에 관한 질문에도 천상 예루살렘의 시민이란 의미에서 예루살렘이라고 답했다. 그들은 잔인한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가 모두 끌려 나와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이집트 출신의 다섯 젊은이가 순교한 뒤에 이미 오래전부터 갇혀있던 성 팜필루스(Pamphilus) 신부와 성 발렌스 부제 그리고 얌니아(Jamnia, 오늘날의 야브네 Yavne) 출신의 성 바오로(Paulus)도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리고 성 팜필루스의 하인인 성 포르피리우스(Porphyrius)가 총독에게 장례를 지내기 위해 그들의 시신을 달라고 청했다가 체포되었다. 그 또한 사형 선고를 받고 모진 고문 뒤에 불 속에 던져지는 화형으로 순교하였다.

이때 카파도키아(Cappadocia) 출신의 전직 군인인 성 셀레우쿠스(Seleucus)가 성 포르피리우스의 죽음을 목격했는데, 두렵고 고통스러운 죽음의 순간에도 변함없이 신앙을 증거하고 웃는 얼굴로 순교의 월계관을 쓰는 모습에 크게 감동하였다.

그래서 성 셀레우쿠스도 성 포르피리우스의 용맹한 순교를 칭송하다가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지혜롭고 신심 깊은 노인이던 성 테오둘루스(Theodulus)는 피르밀리아누스 총독 집안에서 가장 존경받는 하인이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평소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해오던 그는 성 엘리야를 비롯해 다섯 명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준 영웅적 행동에 감탄해서 감옥에 갇힌 그들을 방문하였다.
|
그들과 함께 기도하던 그는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도왔다는 혐의로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총독 앞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분노한 총독의 명령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

그리고 카파도키아 출신으로 여행을 마치고 막 카이사레아로 돌아온 성 율리아누스(Julianus, 또는 율리아노)는 다섯 순교자의 영웅적 순교 이야기를 듣고는 그들이 순교한 곳으로 가서 그 땅에 입을 맞추고 성인들의 유해를 하나하나 끌어안으며 입을 맞춰 공경의 예를 표하였다.

이를 본 파수꾼들에 의해 그 또한 그리스도인으로 체포되어 총독 앞으로 끌려갔고, 산 채로 불태우는 화형을 선고받고 순교하였다.

이렇게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때문에 카이사레아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쓴 12명 순교자의 시신은 나흘 동안 매장되지 못하고 짐승의 밥으로 버려졌다. 하지만 짐승이나 새가 전혀 순교자의 시신을 건드리지 못하자 결국 수습해서 매장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 팜필루스와 성 발렌스와 성 바오로를 6월 1일 목록에, 함께 순교한 다섯 젊은이와 성 포르피리우스와 성 셀레우쿠스는 2월 16일 목록에, 그리고 성 테오둘루스와 성 율리아누스는 2월 17일 목록에 기록해 기념했었다.

그런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이들 12명의 순교자 모두를 2월 16일 목록에 기록하며 그날에 함께 기념하도록 했다. 이들 순교자의 희생으로 카이사레아 지역에서의 선교 활동이 더욱 활발히 이루어졌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테오둘로

 

  • 가톨릭 성인 이름
    Theodul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노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9년 카이사레아(Caesarea)

 

 

테오둘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떼오둘로, 떼오둘로스, 떼오둘루스, 테오둘로스, 테오둘루스.

 

 

테오둘로 자료

성 엘리야(Elias)와 4명의 동료인 성 예레미야(Jeremias), 성 이사야(Isaias), 성 사무엘(Samuel), 성 다니엘(Daniel)은 모두 이집트 출신의 젊은 그리스도인들로 박해받는 신자들을 방문하고 돌봤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그들은 소아시아의 실리시아(Cilicia) 지방에 있는 광산으로 보내지는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그들은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황제(305~311년 재위) 치하 때 형을 마치고 이집트로 돌아가던 길에 팔레스티나의 카이사레아 성문 밖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고발되어 체포되었다.

그들은 모두 그 지방의 총독인 피르밀리아누스(Firmilianus) 앞으로 끌려가 심문을 받았다. 그들의 이름을 묻는 총독의 질문에 그들은 부모가 준 이교도의 이름이 아닌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들의 이름을 자신들의 이름으로 답했다.

그들의 출신지에 관한 질문에도 천상 예루살렘의 시민이란 의미에서 예루살렘이라고 답했다. 그들은 잔인한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가 모두 끌려 나와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이집트 출신의 다섯 젊은이가 순교한 뒤에 이미 오래전부터 갇혀있던 성 팜필루스(Pamphilus) 신부와 성 발렌스 부제 그리고 얌니아(Jamnia, 오늘날의 야브네 Yavne) 출신의 성 바오로(Paulus)도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리고 성 팜필루스의 하인인 성 포르피리우스(Porphyrius)가 총독에게 장례를 지내기 위해 그들의 시신을 달라고 청했다가 체포되었다. 그 또한 사형 선고를 받고 모진 고문 뒤에 불 속에 던져지는 화형으로 순교하였다.

이때 카파도키아(Cappadocia) 출신의 전직 군인인 성 셀레우쿠스(Seleucus)가 성 포르피리우스의 죽음을 목격했는데, 두렵고 고통스러운 죽음의 순간에도 변함없이 신앙을 증거하고 웃는 얼굴로 순교의 월계관을 쓰는 모습에 크게 감동하였다.

그래서 성 셀레우쿠스도 성 포르피리우스의 용맹한 순교를 칭송하다가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지혜롭고 신심 깊은 노인이던 성 테오둘루스(또는 테오둘로)는 피르밀리아누스 총독 집안에서 가장 존경받는 하인이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평소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해오던 그는 성 엘리야를 비롯해 다섯 명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준 영웅적 행동에 감탄해서 감옥에 갇힌 그들을 방문하였다.

그들과 함께 기도하던 그는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도왔다는 혐의로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총독 앞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분노한 총독의 명령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

그리고 카파도키아 출신으로 여행을 마치고 막 카이사레아로 돌아온 성 율리아누스(Julianus)는 다섯 순교자의 영웅적 순교 이야기를 듣고는 그들이 순교한 곳으로 가서 그 땅에 입을 맞추고 성인들의 유해를 하나하나 끌어안으며 입을 맞춰 공경의 예를 표하였다.

이를 본 파수꾼들에 의해 그 또한 그리스도인으로 체포되어 총독 앞으로 끌려갔고, 산 채로 불태우는 화형을 선고받고 순교하였다.

이렇게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때문에 카이사레아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쓴 12명 순교자의 시신은 나흘 동안 매장되지 못하고 짐승의 밥으로 버려졌다. 하지만 짐승이나 새가 전혀 순교자의 시신을 건드리지 못하자 결국 수습해서 매장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 팜필루스와 성 발렌스와 성 바오로를 6월 1일 목록에, 함께 순교한 다섯 젊은이와 성 포르피리우스와 성 셀레우쿠스는 2월 16일 목록에, 그리고 성 테오둘루스와 성 율리아누스는 2월 17일 목록에 기록해 기념했었다.

그런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이들 12명의 순교자 모두를 2월 16일 목록에 기록하며 그날에 함께 기념하도록 했다. 이들 순교자의 희생으로 카이사레아 지역에서의 선교 활동이 더욱 활발히 이루어졌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파우스티노

 

  • 가톨릭 성인 이름
    Faust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381년 브레시아

 

 

파우스티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파우스띠노, 파우스띠누스, 파우스티누스.

 

 

파우스티노 자료

성 파우스티누스(또는 파우스티노)는 360년경 성 우르시키누스(Ursicinus, 12월 1일)를 계승해서 이탈리아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 브레시아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브레시아의 순교자 성 파우스티누스(2월 15일)와 성 요비타(Jovita, 2월 15일)와는 방계 친척 사이로 그들의 행적을 편집하였다. 교회미술에서 성 파우스티누스는 화살 다발을 손에 쥐고 있는 주교로 표현된다. 그는 전염병에 걸렸을 때 간구를 청하는 성인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팜필로

 

  • 가톨릭 성인 이름
    Pamphil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9년 카이사레아(Caesarea)

 

 

팜필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빰삘로, 빰삘루스, 빰필로, 빰필루스, 팜필루스.

 

 

팜필로 자료

성 팜필루스(또는 팜필로)는 3세기 중엽 페니키아(Phoenicia, 오늘날 시리아, 레바논 해안지대의 고대 지명)의 베리투스(Berytus, 현재의 베이루트 Beirut)에서 태어났다.

그의 제자로서 유명한 교회사가인 에우세비우스(Eusebius)가 성 팜필루스의 생애(순교록)에 관한 책을 썼지만 유실되어 일부 인용문을 통해서만 그에 대해 알 수 있을 뿐이다.

성 팜필루스는 베이루트에서 부유하고 존경받는 부모 덕분에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 후에 그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완전한 사람’(마태 19,21 참조)이 되고자 했다.

그는 고향을 떠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갔고, 그곳에서 오리게네스(Origenes)의 동료인 피에리우스(Pierius)의 문하생이 되어 교리학교에 다녔다. 그 후 그는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뛰어난 학식으로 당대 최고의 성서학자로 존경받던 그는 카이사레아에 성서 학교와 도서관을 세웠는데, 교회 역사가인 에우세비우스가 이곳의 학생이었다. 그는 다양한 성경 사본과 책들을 구해 도서관을 채우고, 성경의 정확한 번역과 학문 연구에 활용했다.

그는 307년 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중에 팔레스티나의 총독인 우르바누스(Urbanus)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앙 때문에 고문을 받고 투옥되어 2년이나 갇혀 지냈다.

옥중에서도 그는 제자인 에우세비우스와 함께 스승인 오리게네스의 신학 이론을 방어하기 위해 다섯 권의 책을 집필했다. 그 후 그는 피르밀리아누스(Firmilianus) 총독하에서 다시 심문과 고문을 받고 다른 신자들과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옛 “로마 순교록”은 6월 1일 목록에서 이때 성 팜필루스와 함께 예루살렘(Jerusalem)의 부제 성 발렌스(Valens)와 얌니아(Jamnia, 오늘날의 야브네 Yavne) 출신의 성 바오로(Paulus), 그리고 다른 날(2월 16일과 17일) 기념하는 9명의 동료가 감옥에서 끌려 나와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런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6월 1일에 기념하던 성 팜필루스와 다른 두 동료 그리고 2월 17일에 기념하던 두 동료도 모두 2월 16일 목록으로 옮겨 12명의 순교자를 같은 날 함께 기념하도록 했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6월 1일에 성 팜필루스의 축일을 기념하는데, 2월 16일에 12명의 순교자 모두를 함께 기념하기도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6. 포르피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Porphyry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하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9년 카이사레아(Caesarea)

 

 

포르피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뽀르삐리오, 뽀르삐리우스, 포르피리, 포르피리오스, 포르피리우스.

 

 

포르피리오 자료

성 엘리야(Elias)와 4명의 동료인 성 예레미야(Jeremias), 성 이사야(Isaias), 성 사무엘(Samuel), 성 다니엘(Daniel)은 모두 이집트 출신의 젊은 그리스도인들로 박해받는 신자들을 방문하고 돌봤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그들은 소아시아의 실리시아(Cilicia) 지방에 있는 광산으로 보내지는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그들은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황제(305~311년 재위) 치하 때 형을 마치고 이집트로 돌아가던 길에 팔레스티나의 카이사레아 성문 밖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고발되어 체포되었다. 그들은 모두 그 지방의 총독인 피르밀리아누스(Firmilianus) 앞으로 끌려가 심문을 받았다.

그들의 이름을 묻는 총독의 질문에 그들은 부모가 준 이교도의 이름이 아닌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들의 이름을 자신들의 이름으로 답했다.

그들의 출신지에 관한 질문에도 천상 예루살렘의 시민이란 의미에서 예루살렘이라고 답했다. 그들은 잔인한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가 모두 끌려 나와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이집트 출신의 다섯 젊은이가 순교한 뒤에 이미 오래전부터 갇혀있던 성 팜필루스(Pamphilus) 신부와 성 발렌스 부제 그리고 얌니아(Jamnia, 오늘날의 야브네 Yavne) 출신의 성 바오로(Paulus)도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리고 성 팜필루스의 하인인 성 포르피리우스(Porphyrius, 또는 포르피리오)가 총독에게 장례를 지내기 위해 그들의 시신을 달라고 청했다가 체포되었다. 그 또한 사형 선고를 받고 모진 고문 뒤에 불 속에 던져지는 화형으로 순교하였다.

이때 카파도키아(Cappadocia) 출신의 전직 군인인 성 셀레우쿠스(Seleucus)가 성 포르피리우스의 죽음을 목격했는데, 두렵고 고통스러운 죽음의 순간에도 변함없이 신앙을 증거하고 웃는 얼굴로 순교의 월계관을 쓰는 모습에 크게 감동하였다.

그래서 성 셀레우쿠스도 성 포르피리우스의 용맹한 순교를 칭송하다가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지혜롭고 신심 깊은 노인이던 성 테오둘루스(Theodulus)는 피르밀리아누스 총독 집안에서 가장 존경받는 하인이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평소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해오던 그는 성 엘리야를 비롯해 다섯 명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준 영웅적 행동에 감탄해서 감옥에 갇힌 그들을 방문하였다.

그들과 함께 기도하던 그는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도왔다는 혐의로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총독 앞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분노한 총독의 명령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

그리고 카파도키아 출신으로 여행을 마치고 막 카이사레아로 돌아온 성 율리아누스(Julianus)는 다섯 순교자의 영웅적 순교 이야기를 듣고는 그들이 순교한 곳으로 가서 그 땅에 입을 맞추고 성인들의 유해를 하나하나 끌어안으며 입을 맞춰 공경의 예를 표하였다.

이를 본 파수꾼들에 의해 그 또한 그리스도인으로 체포되어 총독 앞으로 끌려갔고, 산 채로 불태우는 화형을 선고받고 순교하였다.

이렇게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때문에 카이사레아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쓴 12명 순교자의 시신은 나흘 동안 매장되지 못하고 짐승의 밥으로 버려졌다. 하지만 짐승이나 새가 전혀 순교자의 시신을 건드리지 못하자 결국 수습해서 매장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 팜필루스와 성 발렌스와 성 바오로를 6월 1일 목록에, 함께 순교한 다섯 젊은이와 성 포르피리우스와 성 셀레우쿠스는 2월 16일 목록에, 그리고 성 테오둘루스와 성 율리아누스는 2월 17일 목록에 기록해 기념했었다.

그런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이들 12명의 순교자 모두를 2월 16일 목록에 기록하며 그날에 함께 기념하도록 했다. 이들 순교자의 희생으로 카이사레아 지역에서의 선교 활동이 더욱 활발히 이루어졌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7. 호네스토

 

  • 가톨릭 성인 이름
    Hones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70년 님

 

 

호네스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호네스또, 호네스뚜스, 호네스투스.

 

 

호네스토 자료

프랑스의 님 태생인 성 호네스투스(또는 호네스토)는 툴루즈(Toulouse)의 성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11월 29일)의 제자로서 에스파냐로 파견되었다. 그는 나바라(Navarra)의 팜플로나(Pamplona)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살해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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