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에 해당하는 여자세례명 레오크리시아, 루도비카 드 마리약, 마트로나, 말콜디아, 총 4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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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3월 15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4가지
3월 15일 여자세례명 목록
1. 레오크리시아
- 가톨릭 성인 이름
Leocriti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859년 코르도바
레오크리시아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레오끄리씨아, 레오크레시아, 레오크리티아, 루크레시아.
레오크리시아 자료
성녀 레오크리티아(또는 레오크리시아)는 에스파냐 남부 코르도바 태생으로, 에스파냐 사람이 아니라 부유한 어느 무어인의 딸이었다. 그녀는 부모 몰래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는데, 이 사실이 부모에게 알려지자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녀는 코르도바의 성 에울로기우스(Eulogius, 3월 11일)의 도움으로 여러 신자 집을 전전하며 몸을 숨길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성 에울로기우스와 함께 체포되어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녀는 루크레시아(Lucretia)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루도비카 드 마리약
- 가톨릭 성인 이름
Louise de Marillac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과부, 설립자, 수녀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591-1660년
루도비카 드 마리약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루도비까, 루이사, 루이즈, 마리악, 마릴락.
루도비카 드 마리약 자료
성녀 루도비카(Ludovica)는 1591년 8월 프랑스 북부 와즈(Oise) 지방의 뮤(Meux) 인근에서 태어났다. 혼외 관계로 태어난 그녀는 평생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른 채 아버지와 함께 루이 드 마리약(Louis de Marillac) 귀족 가문의 일원으로 성장했다.
아버지가 결혼한 후 성녀 루도비카는 도미니코회 수녀인 숙모가 있는 파리 인근 푸아시(Poissy)의 왕립 수녀원으로 보내져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12살 때 아버지가 사망한 후 형편이 어려워져 수녀원 기숙사를 나와 하숙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에서 그녀는 가사 일과 허브로 약을 만드는 비법 등을 배웠고, 귀족의 삶에서 서민의 삶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수녀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파리의 카푸친회 수녀원에 입회를 신청했으나 건강과 여러 이유로 거부되었다. 결국 가족들의 권유로 1613년 22살이 나이로 당시 프랑스 여왕의 비서였던 앙투안 르 그라(Antoine Le Gras) 백작과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낳았다.
프랑스의 왕족과 귀족들 안에서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살던 그녀의 결혼 생활은 12년밖에 이어지지 않았다. 건강이 안 좋았던 남편이 1625년 사망하고, 내전 등으로 혼란한 시기에 숙부들마저 처형당하거나 옥사하는 일이 생기면서 그녀는 실의에 빠져 심각한 우울증까지 겪게 되었다.
그러나 기도 중에 공동체 안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며 살게 될 것이라는 환시를 보았고, 뜻하지 않게도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1월 24일)에게 영적 지도를 받는 계기가 생기면서 삶의 일대 전환기를 마련하였다.
그녀는 평소 부유한 귀족 부인들과 함께 자선 활동을 하며 잘 알고 지냈던 성 빈첸시오 드 폴(Vincentius de Paul, 9월 27일)을 찾았다. 성 빈첸시오 드 폴은 1925년 선교 사제회를 설립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 본당 단위의 애덕회를 조직해 활동하고 있었다.
성 빈첸시오 드 폴의 초대로 가난한 이들을 도우며 살게 된 성녀 루도비카 드 마리약은 내적 치유를 경험하고 앞으로의 사도직을 준비할 수 있었다. 성 빈첸시오 드 폴은 성녀 루도비카 드 마리약의 소망을 받아들여 1633년 젊은 처녀들을 모아 ‘애덕의 수녀회’를 설립하고 그녀를 초대 원장으로 임명하였다.
이 수녀회가 오늘날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The Daughters of Charity of St. Vincent de Paul)라고 불리는 수녀회이다. 그때부터 그들의 수도원은 병원이요, 성당은 교구 내의 모든 성당이며, 봉쇄 구역은 길거리가 되었다. 회칙 초안도 그녀가 작성하였다. 그녀의 명석한 두뇌와 관대한 사랑은 이 수녀회의 급속한 성장을 예고하고 있었다.
성 빈첸시오 드 폴 신부가 선종하기 몇 달 전인 1660년 3월 15일, 성녀 루도비카 드 마리약이 파리에서 임종할 때 프랑스 내에는 이미 40개의 수도원이 있었고, 병자와 가난한 이를 돕는 구호소는 수없이 많았다. 그녀는 이런 말을 남겼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봉사하라. …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을 부끄럽게 하지 말 것이다. 그대가 섬기는 이는 곧 그리스도이시니…”
그녀는 1920년 5월 9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시복되었고, 1934년 3월 11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리고 1960년 교황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해 사회복지사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마트로나
- 가톨릭 성인 이름
Matron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하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 테살로니카
마트로나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드로나, 마뜨로나.
마트로나 자료
성녀 마트로나는 테살로니카의 어느 집에서 유대인 여주인을 모시는 하녀였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게 된 그녀는 매일같이 비밀리에 열리는 기도 모임에 참석하다가 여주인에게 발각되어 그리스도임을 드러났다.
여주인은 이전부터 그녀를 유대교로 개종시키려 하고 있었다. 성녀 마트로나는 회당에 들어가기를 끝내 거부하다가 여주인으로부터 모진 매를 맞고 그 상처를 말미암아 숨을 거두었다.
로마 순교록은 3월 15일자 목록에서 성녀 마트로나가 큰 몽둥이로 심하게 매를 맞으면서도 용감하게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자신의 순결한 영혼을 하느님께 봉헌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녀는 바르셀로나의 성녀 마트로나 또는 마드로나(Madrona of Barcelona)로도 불린다. 중세의 전승에 따르면, 테살로니카의 성녀 마트로나 수도원에 모셨던 그녀의 유해가 9/10세기 경 프랑스 마르세유(Marseille)로 옮기게 되었다.
성녀의 유해를 실은 배가 바르셀로나 앞바다를 지나갈 때 폭풍으로 인해 항구로 피신하게 되었는데, 배가 바르셀로나 항구를 떠나려 할 때마다 폭풍이 다시 일어 떠날 수가 없었다.
상인과 선원들은 성녀 마트로나가 그곳에 머물기를 원한다고 생각하고 성녀의 유해를 팔았다. 그 후 성녀 마트로나의 유해를 바르셀로나의 몬주익(Montjuic) 산에 있는 한 성당에 모셨다.
16세기 이후 성녀 마트로나는 성녀 에울랄리아(Eulalia, 2월 12일)와 성녀 마리아 데 세르벨리온(Maria de Cervellione, 9월 19일)에 이어 바르셀로나의 세 번째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으나 현재는 빠진 상태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바르셀로나 지역에서 성녀의 유해와 성당이 존재하며 사람들의 공경이 이어지면서 성녀 마트로나가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 테살로니카로 갔다는 전설도 생겨났다. 그리스도 정교회에서는 그녀의 축일을 3월 27일에 기념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말콜디아
- 가톨릭 성인 이름
Malcoldi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090년 아스티
말콜디아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말꼬디아, 말꼴디아, 말코디아.
말콜디아 자료
성녀 말콜디아는 베네딕토회 수녀로 후에 이탈리아 아스티에 있는 성녀 아나스타시아(Anastasia) 성당 부근에서 은수자로 살았다. 그녀는 말코디아(Malcodia)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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