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3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나탈리스, 마엘, 무치오, 발레리아노, 세르바시오, 안노, 안드레아 후베르토 푸르네, 에우티미오, 오네시모, 요한(침묵의), 제라르도, 총 11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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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 여자세례명 글리체리아, 메레웬나, 율리아나, 총 3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5월 13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1가지
5월 13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나탈리스
- 가톨릭 성인 이름
Natali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751년 밀라노
나탈리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나딸리스.
나탈리스 자료
740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주교가 된 나탈리스는 아리우스(Arius) 이단에 빠진 롬바르드족(Lombards)을 정통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는 어려운 시기에 주교로 재임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마엘
- 가톨릭 성인 이름
Mae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6세기경 바드시
마엘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일, 마헬.
마엘 자료
성 마엘은 성 카드판(Cadfan, 11월 1일)의 제자로 스승이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에서 영국 웨일스(Wales)까지 갈 때 동행했다. 그 후 그는 웨일스 북서부 바드시 섬에서 은수자로서 여생을 보냈다. 거룩함과 지혜가 출중했던 그는 마헬(Mahel)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무치오
- 가톨릭 성인 이름
Muc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콘스탄티노플
무치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모치오, 모치우스, 모키오, 모키우스, 무치우스, 무키오, 무키우스.
무치오 자료
콘스탄티노플에서 태어난 성 무키우스(또는 무치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순교한 사제이다.
그는 당시 마케도니아의 암피폴리스(Amphipolis)에서 선교하던 뛰어난 설교가였는데, 바쿠스(Bacchus) 신의 축제 때 그는 바쿠스 신의 제단을 땅에 내팽개쳤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군중들에게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화형을 받게 되었다. 그는 똑바로 선 자세로 천천히 걸어서 화염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이교도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이때 총독과 재판관이 불을 끄게 하고는 야수의 밥이 되게 했으나 야수들이 먹기를 거절하자 하는 수 없이 참수하였다고 한다. 그는 모키우스(Mocius)로도 알려져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발레리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Valer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350년경 오세르
발레리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발레리아누스, 발레리안.
발레리아노 자료
성 발레리아누스(Valerianus, 또는 발레리아노)는 프랑스 오세르의 제3대 주교로서 아리우스(Arius) 이단에 대항하여 가톨릭 신앙을 지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세르바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Servat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384년 통게렌
세르바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세르바시우스, 세르바티오, 세르바티우스, 쎄르바씨오, 쎄르바씨우스.
세르바시오 자료
아르메니아(Armenia) 출신인 성 세르바티우스(또는 세르바시오)는 성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5월 2일)가 유배당했을 때 그를 극진히 보살피면서 위대한 교부의 가르침을 옹호하고, 사르디카(Sardica) 공의회에서 가톨릭 신앙을 굳세게 보호하는 데 앞장섰다.
359년에 그는 리미니(Rimini) 공의회에 참석하여 아쟁(Agen)의 주교인 성 파이바디우스(Phaebadius, 4월 25일)와 더불어 아리우스(Arius) 이단과 대적했다.
그는 오늘날의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에 속한 림뷔르흐(Limburg) 지방의 통게렌에서 선종했다. 그의 유해는 통게렌이 침략 당했을 때 오늘날의 네덜란드령 림부르흐(Limburg) 지방 마스트리흐트(Maastricht)의 성 세르바티우스 대성당으로 옮겨졌다.
성 세르바티우스 대성당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성당이다. 교회 미술에서 성 세르바티우스는 보통 나무로 만든 신을 신고 있거나, 한 손에 열쇠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주교 지팡이로 용을 누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안노
- 가톨릭 성인 이름
Anno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780년 베로나
안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안논, 한노.
안노 자료
이탈리아의 베로나에서 태어나서 고향의 주교가 된 성 안노는 주로 순교자 성 피르무스(Firmus, 8월 9일)와 성 루스티쿠스(Rusticus, 8월 9일)의 이장과 관련하여 기억되고 있다. 그는 안논(Annon) 또는 한노(Hanno)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안드레아 후베르토 푸르네
- 가톨릭 성인 이름
Andrew Hubert Fournet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설립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752-1834년
안드레아 후베르토 푸르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안드레아스, 앙드레, 앤드루, 앤드류, 허버트, 후베르또, 후베르뚜스, 후베르토, 후베르투스.
안드레아 후베르토 푸르네 자료
프랑스의 푸아티에(Poitiers) 근교 마유(Maille)에서 태어난 성 안드레아 후베르투스 푸르네(Andreas Hubertus Fournet, 안드레아 후베르토 푸르네)는 사제가 되길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과는 달리 청년 시절 종교에 염증을 느꼈고 일상생활도 한 마디로 엉망이었다.
푸아티에의 대학에서 법과 철학을 공부할 때 그는 게으르고 단순히 즐기기만 좋아했다. 몇 차례 직업을 얻지 못하고 방황하자 그의 부모는 그를 매우 가난한 본당의 사제로 있던 삼촌에게 보냈다.
교구 사제였던 삼촌의 영향으로 삶을 방향을 잡은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서 신학을 공부하고 사제품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고향인 마유 본당의 주임사제로 발령받았다.
프랑스 혁명 때 그는 성직자 법에 맹세하기를 거부하고 주교의 명을 따라 5년 동안 에스파냐로 피신했다. 1797년 다시 본당으로 돌아온 그는 신자들의 보호를 받으며 비밀리에 성사를 집전하다가 성 금요일에 체포되었다.
이때 그는 수레에 실려 감옥에 끌려가는 것에 대해 항거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신 바로 이 날, 그분을 따르는 내가 수레를 타고 갈 수 없다” 하여 내려서 걸어갔다고 한다.
성 안드레아 후베르투스 푸르네는 아제스(Ages)의 성녀 요안나 엘리사벳 비쉬엘(Joanna Elisabeth Bichier, 8월 26일)과 교분이 많았는데, 1801년 이후부터 그는 그녀를 도와 십자가의 딸 수녀회 창립에 공을 들였다.
그는 1820년에 자기 교구에서 은퇴하여 1834년 5월 13일 비엔(Vienne)의 라 퓌(La Puye)에서 선종할 때까지 이 수녀회를 지도하였다. 그는 1926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33년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에우티미오
- 가톨릭 성인 이름
Euthym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028년 아토스산
에우티미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우띠미오, 에우띠미우스, 에우티미우스.
에우티미오 자료
이베리아(Iberia, 또는 그루지야 Georgia) 사람인 성 요한(Joannes, 7월 12일)의 아들로서 이베리아에서 태어난 성 에우티미우스(또는 에우티미오)는 그의 부친을 따라서 그리스 북부의 아토스 산으로 갔다.
이곳에서 그는 부친과 함께 이베리아계 수도자를 위하여 이비론(Iviron) 수도원을 건설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1002년경에 그의 부친을 계승하여 수도원장이 되었다.
성 에우티미우스는 성경를 이베리아어로 번역하여 교회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이 일을 위하여 원장직을 사임하고 14년 동안이나 성경 번역에만 전념하는 집념을 보여주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는 또 황제 콘스탄티누스 8세의 명에 따라 이비론에서 일어난 그리스와 이베리아 수도자들 간의 분쟁을 해소하였다. 그는 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귀에서 떨어진 상처가 악화되어 운명하였다. 그는 계몽주의자 에우티미우스(Euthymius the Illuminator)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오네시모
- 가톨릭 성인 이름
Onesim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361년 수아송
오네시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오네시무스.
오네시모 자료
성 오네시무스(또는 오네시모)는 프랑스 수아송 교구의 제5대 주교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요한(침묵의)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the Silent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54-558년
요한(침묵의)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침묵의) 자료
아르메니아(Armenia)의 니코폴리스(Nicopolis)에서 태어난 침묵의 성 요한(Joannes Silentiarius)은 걸출한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양친이 사망하자 18세의 나이로 수도원을 짓고 10명의 동료들과 함께 은둔 생활을 시작하였다.
나이 어린 그의 지도에도 불구하고 이 공동체는 열심한 생활과 꾸준한 노동을 실천함으로써 그의 성덕과 지도력이 곧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세바스테(Sebaste)의 대주교로부터 아르메니아 지방 콜로니아(Colonia)의 주교로 임명되었는데 그 자신은 끝까지 반대하였다.
28세의 나이로 주교가 된 그는 9년 동안 주교직을 성실히 수행하였으나 은수자 생활에 대한 미련 때문에 주교직을 사임하고는 조용히 예루살렘(Jerusalem)으로 갔다고 한다.
그는 어느 날 밤 기도하던 중에 공중에서 밝은 십자가를 보았는데, 그 십자가에서 '너는 이 빛을 따르라'는 소리를 듣고 성 사바 수도원으로 갔다.
그는 하느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그곳에 순례자 숙소를 지어 봉사하면서 항상 주님만 바라보고 살기 위하여 침묵하며 살았다. 그는 모든 봉사를 그리스도께 직접 하는 것으로 여겼고, 무슨 일이든지 일 자체보다는 하느님 사랑을 지키기 위하여 침묵하였다고 한다.
그는 성 사바(Sabas, 12월 5일)와 함께 40년을 살았다. 그러므로 그는 9년간의 주교직을 제외하면 76년간 은수자로서 고독한 삶을 통하여 하느님만을 관조하며 살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제라르도
- 가톨릭 성인 이름
Gerard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3회원 - 활동 연도와 지역
1174-1242년 빌라마냐
제라르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게라르도, 게라르두스, 제라드, 제라르두스, 제라르드.
제라르도 자료
잘 알려지지 않은 재속 프란치스코회의 기원에 대해서 게라르두스(Gerardus, 또는 제라르도)의 전기가 다소 알려준다고 한다. 그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에서 태어나서 십자군 전쟁에 참전하여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났다.
이탈리아로 돌아온 그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로부터 3회 입회를 허가받았다. 그 후 그는 여생을 고향 인근의 빌라마냐에서 은수자로서 엄격한 생활과 관상생활에 주력하였다.
그는 거의 20여 년 동안 은수 생활을 했는데 수많은 기적과 예언으로 인해 그의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33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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