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게레베르노, 니콜라오, 레오나르도, 루페르토, 막시모, 바오로, 베드로, 빅토리노, 세베리노, 세쿤도, 실바노, 심플리치오, 아킬레스, 안드레아, 안드레아 아벨롱, 에우프라시오, 이시도로 (군인), 이시도로 (농부), 인달레시오, 체칠리오, 카시오, 크테시폰, 토르콰토, 헤시키오, 홀바르드, 힐라리오, 총 26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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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여자세례명 디오니시아, 마리아 막달레나 알브리치, 베르타, 체사레아, 총 4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5월 15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26가지
5월 15일 남자세례명 목록
- 게레베르노
- 니콜라오
- 레오나르도
- 루페르토
- 막시모
- 바오로
- 베드로
- 빅토리노
- 세베리노
- 세쿤도
- 실바노
- 심플리치오
- 아킬레스
- 안드레아
- 안드레아 아벨롱
- 에우프라시오
- 이시도로 (군인)
- 이시도로 (농부)
- 인달레시오
- 체칠리오
- 카시오
- 크테시폰
- 토르콰토
- 헤시키오
- 홀바르드
- 힐라리오
1. 게레베르노
- 가톨릭 성인 이름
Gereber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7세기
게레베르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게레베르누스, 게레베른, 게레브란도, 게레브란두스, 게레브란드.
게레베르노 자료
성 게레베르누스(또는 게레베르노)는 아일랜드의 사제로 성녀 딤프나(Dymphna, 5월 30일)가 유아일 때 세례를 주었다.
아일랜드의 한 작은 부족의 족장인 성녀 딤프나의 아버지가 아내와 사별한 후 슬픔을 이기지 못해 점차 광기 어린 사람으로 변하면서 점점 아내와 닮아가는 자신의 딸과 결혼하려는 근친상간의 위험에 처했을 때, 성녀 딤프나의 고해 사제였던 그는 자신을 찾아온 성녀 딤프나를 도와 연로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벨기에의 안트베르펜(Antwerpen)으로 피신하여 인근의 길(Geel)이란 곳에 기도처를 세우고 은수자로 살았다.
그는 평소 그리스도를 위해 동정녀로 살고자 했던 성녀 딤프나를 지도하여 그녀가 기도와 봉사 생활에 헌신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던 중 그는 성녀 딤프나의 아버지가 딸의 행방을 추적하기 위해 보낸 이들에게 발각되어 무참히 살해되었다. 성녀 딤프나도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아일랜드로 돌아갈 것을 강요받았지만 끝까지 거부하고 저항하다가 분노한 부친의 칼에 참수당하고 말았다.
성녀 딤프나와 성 게레베르누스가 살해된 후 그들의 유해는 겔의 주민들에 의해 수습되어 근처 동굴에 안장되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13세기 무렵 마을 사람들이 동굴에서 빛나는 관에 안치된 두 시신을 발견했다. 그녀의 관에는 ‘거룩한 동정 순교자 딤프나’라고 새겨진 판이 놓여 있었다.
그들의 유해는 새로운 묘에 안장되었는데, 성 게레베르누스의 유해는 후에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orth Rhine-Westphalia) 지역의 크산텐(Xanten)으로 재이장되었다. 그 과정에서 유해 일부는 인근 마을인 손스베크(Sonsbeck)에 모셔져 두 마을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게레브란두스(Gerebrandu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니콜라오
- 가톨릭 성인 이름
Nichola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925년 콘스탄티노플
니콜라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니고나오, 니꼴라오, 니꼴라우스, 니콜라스, 니콜라우스.
니콜라오 자료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였던 성 니콜라우스(Nicolaus, 또는 니콜라오)는 동방교회에서 법으로 금한 네 번째 혼인을 하려는 레오 6세 황제의 결혼을 끝까지 허락하지 않아 황제에 의해 해임된 후 추방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레오나르도
- 가톨릭 성인 이름
Leonard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250년경 카말돌리
레오나르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레너드, 레오나드, 레오나르두스, 레오나르드.
레오나르도 자료
레오나르두스(Leonardus, 또는 레오나르도)는 이탈리아의 카말돌리에서 은수자로 살던 수도승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루페르토
- 가톨릭 성인 이름
Rupert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9세기경 빙겐
루페르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루페르또, 루페르뚜스, 루페르투스, 루페르트.
루페르토 자료
프랑스 로렌(Lorraine) 지방 백작의 친척인 성녀 베르타(Bertha)는 라인(Rhine) 강변에 광대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녀는 외교인과 결혼하여 아들을 두었고, 남편이 전투 중에 사망한 후 그녀의 아들인 성 루페르투스(Rupertus, 또는 루페르토)를 신자로 개종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호소를 여러 곳에 세웠고, 로마(Roma)를 순례한 후에는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아들과 함께 독일의 빙겐 근교에서 은수자가 되었다. 성 루페르투스가 20살에 세상을 떠난 뒤 성녀 베르타는 그곳에서 25년을 더 살다가 선종하였다.
그들이 은수생활을 했던 언덕은 성 루페르투스 이후에 루페르츠베르크(Rupertsberg)로 불리게 되었다. 12세기에 빙겐의 유명한 성녀인 힐데가르트(Hildegardis, 9월 17일)는 이들 모자(母子) 성인에 대한 공경을 불러일으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막시모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60년
막시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자료
성 카시우스(Cassius), 성 빅토리누스(Victorinus),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와 동료 신자들은 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Auvergne)의 클레르몽(Clermont)에서 그 지역을 침략한 게르만족의 족장 크로카스(Chrocas)의 통치 중에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바오로
- 가톨릭 성인 이름
Pau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1년 트로아스
바오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울로, 바울루스, 빠울로, 빠울루스, 파울로, 파울루스, 폴.
바오로 자료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소아시아 헬레스폰투스(Hellespontus) 지방의 람프사쿠스(Lampsacus)에 한 젊은 그리스도인이 있었다.
그는 귀족 출신으로 재능의 탁월함과 신앙과 덕에 있어서 뛰어난 성 베드로(Petrus)였다. 트로아스에서 지방총독인 옵티무스(Optimus)는 모든 신자들을 비너스(Venus) 신전 앞에 끌어다 놓고 희생 제물 바치기를 강요하였다.
이때 성 베드로는 용감하게 “당신이 그 행동은 나에게 악명 높은 음란한 여신에게 제사를 올리라고 명령하는 것인데 그저 놀랍기만 할 뿐이오. 언급조차 하기 싫은 여신에게 제사를 올리지 않는 것을 당신의 법으로 처벌한다는 것도 놀랍소” 하며 거절하였다.
그 즉시 옵티무스는 그를 바퀴에 매달라고 명령하였고 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그의 뼈는 부스러지게 되었다. 순교자는 자신의 눈을 하늘로 향하고 힘찬 표정으로 말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이 잔인한 폭군을 이길 수 있는 인내를 주셨기에 당신을 찬양하고 감사드립니다.”
흔들리지 않는 성 베드로의 결심을 본 옵티무스는 참수를 명령하였다. 성 베드로의 참수 후 세 명의 다른 그리스도인들, 즉 성 안드레아(Andreas)와 성 바오로(Paulus) 그리고 니코마쿠스(Nicomachus)가 옵티무스 앞에 섰다. 지방총독은 각자의 고향과 종교를 물었고 니코마쿠스는 대답하였다.
“나는 그리스도인이오.”
신들에게 제사를 드릴 것을 강요받자 니코마쿠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악마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소.”
지방총독은 그를 고문대에 매달고 고문하도록 명령했다. 고통을 못이길 정도가 되자 그는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신들에게 제사를 드릴 준비가 되어 있소” 하며 배교하였다. 지방총독은 즉시 그를 고문대에서 끌어내리라고 명령하였고, 그는 제사를 드리자마자 마귀에 의해 사로잡혀서 땅에 넘어져 머리를 찧으며 고통스러워하다가 죽었다.
16세가량 된 나약한 처녀였던 성녀 디오니시아(Dionysia)는 이 현장을 목격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가엾은 사람! 순간의 안락을 위해 영원한 고통에로 자신을 내던지다니!”
이 말을 들은 옵티무스는 그녀가 그리스도교 신자인지를 물었고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매춘을 시킨 후 화형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위협이 효과가 없자 지방총독은 두 명의 젊은 청년에게 그녀의 순결을 빼앗도록 명령했고 청년들은 그녀를 자신들의 집으로 데려갔지만 너무도 거센 저항에 그만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자정을 넘기자 빛으로 반짝이는 젊은이가 나타나 집 전체에 빛을 퍼뜨리며 그들 앞에 섰다. 놀란 두 청년은 성스러운 처녀의 발 앞에 엎드렸다. 그녀는 청년들을 일으켜 세우고 겁내지 말라고 하며 말했다.
“이분은 나의 수호자이자 보호자이십니다.”
그 청년들은 자신들에게 해가 끼치지 않도록 그녀에게 중재를 요청하였다.
다음날 아침 이교도의 사제에 의해 흥분된 군중들이 지방총독의 집을 에워싸고 성 안드레아와 성 바오로를 자신들에게 넘기라고 거칠게 요구하였다. 군중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지방총독은 그들을 불러내어 디아나(Diana) 여신에게 제사를 드리라고 했다.
그들이 거부하자 총독은 그들에게 채찍질을 하고 구경꾼들에게 넘겨주었다. 구경하던 군중들은 성 안드레아와 성 바오로에게 돌을 던져 죽게 하였다.
성녀 디오니시아는 성 안드레아와 성 바오로를 처형하는 무질서한 소리를 듣자 울부짖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경비병들로부터 빠져나와 그들이 있던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자신의 동료들을 보면서 외쳤다.
“당신들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지금 당신들과 함께 이곳에서 죽겠습니다.”
지방총독은 성녀 디오니시아가 순결을 지키게 된 놀라운 사건과 순교자들과 함께 죽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녀를 성 안드레아와 성 바오로에게서 데리고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참수시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베드로
- 가톨릭 성인 이름
Peter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1년 람프사쿠스
베드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베드루스,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베드로 자료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소아시아 헬레스폰투스(Hellespontus) 지방의 람프사쿠스에 한 젊은 그리스도인이 있었다. 그는 귀족 출신으로 재능의 탁월함과 신앙과 덕에 있어서 뛰어난 성 베드로(Petrus)였다. 트로아스(Troas)에서 지방총독인 옵티무스(Optimus)는 모든 신자들을 비너스(Venus) 신전 앞에 끌어다 놓고 희생 제물 바치기를 강요하였다.
이때 성 베드로는 용감하게 “당신이 그 행동은 나에게 악명 높은 음란한 여신에게 제사를 올리라고 명령하는 것인데 그저 놀랍기만 할 뿐이오. 언급조차 하기 싫은 여신에게 제사를 올리지 않는 것을 당신의 법으로 처벌한다는 것도 놀랍소” 하며 거절하였다.
그 즉시 옵티무스는 그를 바퀴에 매달라고 명령하였고 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그의 뼈는 부스러지게 되었다. 순교자는 자신의 눈을 하늘로 향하고 힘찬 표정으로 말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이 잔인한 폭군을 이길 수 있는 인내를 주셨기에 당신을 찬양하고 감사드립니다.”
흔들리지 않는 성 베드로의 결심을 본 옵티무스는 참수를 명령하였다.
성 베드로의 참수 후 세 명의 다른 그리스도인들, 즉 성 안드레아(Andreas)와 성 바오로(Paulus) 그리고 니코마쿠스(Nicomachus)가 옵티무스 앞에 섰다. 지방총독은 각자의 고향과 종교를 물었고 니코마쿠스는 대답하였다.
“나는 그리스도인이오.”
신들에게 제사를 드릴 것을 강요받자 니코마쿠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악마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소.”
지방총독은 그를 고문대에 매달고 고문하도록 명령했다. 고통을 못이길 정도가 되자 그는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신들에게 제사를 드릴 준비가 되어 있소” 하며 배교하였다. 지방총독은 즉시 그를 고문대에서 끌어내리라고 명령하였고, 그는 제사를 드리자마자 마귀에 의해 사로잡혀서 땅에 넘어져 머리를 찧으며 고통스러워하다가 죽었다.
16세가량 된 나약한 처녀였던 성녀 디오니시아(Dionysia)는 이 현장을 목격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가엾은 사람! 순간의 안락을 위해 영원한 고통에로 자신을 내던지다니!”
이 말을 들은 옵티무스는 그녀가 그리스도교 신자인지를 물었고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매춘을 시킨 후 화형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위협이 효과가 없자 지방총독은 두 명의 젊은 청년에게 그녀의 순결을 빼앗도록 명령했고 청년들은 그녀를 자신들의 집으로 데려갔지만 너무도 거센 저항에 그만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자정을 넘기자 빛으로 반짝이는 젊은이가 나타나 집 전체에 빛을 퍼뜨리며 그들 앞에 섰다. 놀란 두 청년은 성스러운 처녀의 발 앞에 엎드렸다. 그녀는 청년들을 일으켜 세우고 겁내지 말라고 하며 말했다.
“이분은 나의 수호자이자 보호자이십니다.”
그 청년들은 자신들에게 해가 끼치지 않도록 그녀에게 중재를 요청하였다.
다음날 아침 이교도의 사제에 의해 흥분된 군중들이 지방총독의 집을 에워싸고 성 안드레아와 성 바오로를 자신들에게 넘기라고 거칠게 요구하였다.
군중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지방총독은 그들을 불러내어 디아나(Diana) 여신에게 제사를 드리라고 했다. 그들이 거부하자 총독은 그들에게 채찍질을 하고 구경꾼들에게 넘겨주었다. 구경하던 군중들은 성 안드레아와 성 바오로에게 돌을 던져 죽게 하였다.
성녀 디오니시아는 성 안드레아와 성 바오로를 처형하는 무질서한 소리를 듣자 울부짖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경비병들로부터 빠져나와 그들이 있던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자신의 동료들을 보면서 외쳤다.
“당신들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지금 당신들과 함께 이곳에서 죽겠습니다.”
지방총독은 성녀 디오니시아가 순결을 지키게 된 놀라운 사건과 순교자들과 함께 죽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녀를 성 안드레아와 성 바오로에게서 데리고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참수시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빅토리노
- 가톨릭 성인 이름
Victor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60년
빅토리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빅또리노, 빅또리누스, 빅토리누스.
빅토리노 자료
성 카시우스(Cassius), 성 빅토리누스(또는 빅토리노), 성 막시무스(Maximus)와 동료 신자들은 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Auvergne)의 클레르몽(Clermont)에서 그 지역을 침략한 게르만족의 족장 크로카스(Chrocas)의 통치 중에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세베리노
- 가톨릭 성인 이름
Sever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50년 산 세베리노
세베리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세베리누스, 쎄베리노, 쎄베리누스.
세베리노 자료
성 세베리누스(또는 세베리노)와 성 빅토리누스(Victorinus, 6월 8일)는 형제지간으로 자기들의 막대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이탈리아 중부 마르케(Marche) 지방 셉템페다 근처에 있는 몬테네로(Montenero)에 가서 은수자가 되었다.
성 빅토리누스는 유혹을 이기기 위해 두 개의 나뭇가지 사이에 자신의 손을 끼워 넣고 기도하는 등 참회를 위한 특별한 고행을 실천했다. 그런데 540년에 교황 비길리우스(Vigilius)는 그들의 뜻과는 달리 성 세베리누스는 셉템페다(Septempeda)의 주교로, 성 빅토리누스는 카메리노(Camerino)의 주교로 임명했다.
그들은 몬테네로에서 은수자로 계속 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성 세베리누스는 자신의 교구 내에서 신자들의 신앙심을 되살리는 데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동고트족(Ostrogoths)의 토틸라(Totila)에게 그의 주교좌가 파괴되기 전에 갑자기 선종하였다. 하지만 후대에 그를 기념하기 위해 그 도시 이름을 산 세베리노(San Severino)로 부르게 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 세베리누스와 성 빅토리누스를 모두 6월 8일 목록에 기록해서 기념했었다. 그러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성 세베리누스를 5월 15일 목록으로 옮겨 기록했고, 성 빅토리누스에 대해서는 6월 8일이나 다른 날 목록에서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세쿤도
- 가톨릭 성인 이름
Secund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사도들의 제자,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에스파냐
세쿤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세군도, 세꾼도, 세꾼두스, 세쿤두스.
세쿤도 자료
성 토르콰투스(Torquatus)는 성 베드로(Petrus)와 성 바오로(Paulus)가 에스파냐의 복음화를 목표로 파견한 최초의 7명의 선교사 중의 한 명이다. 그 외의 선교사는 성 카이킬리우스(Caecilius), 성 크테시폰(Ctesiphon), 성 에우프라시우스(Euphrasius), 성 헤시키우스(Hesychius), 성 인달레티우스(Indaletius), 성 세쿤두스(또는 세쿤도, 사도 20,4)이다.
성 토르콰투스는 주로 그라나다(Granada)의 과딕스(Guadix)에서 활동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에스파냐로 파견된 일곱 명의 선교사 주교는 모두 순교하였다. 성 카이킬리우스는 일리베리스(Illiberis, 오늘날의 그라나다 지방)의 주교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실바노
- 가톨릭 성인 이름
Silva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 타벤니시
실바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실바누스, 씰바노, 씰바누스.
실바노 자료
성 실바누스(또는 실바노)는 세상을 등지고 성 파코미우스(Pachomius, 5월 9일)의 지도하에 이집트 상부 테베(Thebae, 나일 강 중류에 위치한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수도로 오늘날의 룩소르 Luxor)의 타벤니시에서 수도승이 된 배우였다.
얼마 동안 그는 수련이 부족한 상태에서 다른 수도승들을 웃기고 종종 침묵의 계율을 깨뜨렸다. 성 파코미우스는 시범과 기도, 탄식과 눈물로써 그의 가련한 영혼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했으나 오랫동안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스승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에게 회개하지 않는 삶이 얼마나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인지 설명해 주었다.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성 실바누스는 지난날 자신의 과오에 대해 몹시 슬퍼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그의 간절한 통회는 그를 덕행에 있어서 진보하도록 이끌었고 스승으로부터 다른 모든 이들에게 겸손의 모범이 되었다는 평을 들었다. 이렇게 8년 동안 참회의 과정을 거친 후 그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심플리치오
- 가톨릭 성인 이름
Simplic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사르데냐
심플리치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심플리치우스, 심플리키오, 심플리키우스, 씸쁠리치오, 씸쁠리치우스.
심플리치오 자료
성 심플리키우스(또는 심플리치오) 주교는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섬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통치 중에 생매장 당해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아킬레스
- 가톨릭 성인 이름
Achille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330년 라리사
아킬레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낄라스, 아낄레스, 아낄리오, 아낄리우스, 아칠리오, 아칠리우스, 아킬라스, 아킬리오, 아킬리우스.
아킬레스 자료
성 아킬레스는 그리스 북부 에게해에 면하여 있는 테살리아(Thessalia) 지방 라리사의 주교였다. 그는 용기와 지혜를 지니고 겸손하게 주교직을 수행하였다.
그는 제1차 니케아(Nicaea) 공의회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고, 978년 이후 그의 유해는 불가리아(Bulgaria)의 프레스바(Presba)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아킬라스(Achillas) 또는 아킬리우스(Achilliu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안드레아
- 가톨릭 성인 이름
Andrew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1년 트로아스
안드레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안드레아스, 앙드레, 앤드루, 앤드류.
안드레아 자료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소아시아 헬레스폰투스(Hellespontus) 지방의 람프사쿠스(Lampsacus)에 한 젊은 그리스도인이 있었다. 그는 귀족 출신으로 재능의 탁월함과 신앙과 덕에 있어서 뛰어난 성 베드로(Petrus)였다. 트로아스에서 지방총독인 옵티무스(Optimus)는 모든 신자들을 비너스(Venus) 신전 앞에 끌어다 놓고 희생 제물 바치기를 강요하였다.
이때 성 베드로는 용감하게 “당신이 그 행동은 나에게 악명 높은 음란한 여신에게 제사를 올리라고 명령하는 것인데 그저 놀랍기만 할 뿐이오. 언급조차 하기 싫은 여신에게 제사를 올리지 않는 것을 당신의 법으로 처벌한다는 것도 놀랍소” 하며 거절하였다.
그 즉시 옵티무스는 그를 바퀴에 매달라고 명령하였고 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그의 뼈는 부스러지게 되었다. 순교자는 자신의 눈을 하늘로 향하고 힘찬 표정으로 말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이 잔인한 폭군을 이길 수 있는 인내를 주셨기에 당신을 찬양하고 감사드립니다.”
흔들리지 않는 성 베드로의 결심을 본 옵티무스는 참수를 명령하였다. 성 베드로의 참수 후 세 명의 다른 그리스도인들, 즉 성 안드레아(Andreas)와 성 바오로(Paulus) 그리고 니코마쿠스(Nicomachus)가 옵티무스 앞에 섰다. 지방총독은 각자의 고향과 종교를 물었고 니코마쿠스는 대답하였다.
“나는 그리스도인이오.”
신들에게 제사를 드릴 것을 강요받자 니코마쿠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악마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소.”
지방총독은 그를 고문대에 매달고 고문하도록 명령했다. 고통을 못이길 정도가 되자 그는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신들에게 제사를 드릴 준비가 되어 있소” 하며 배교하였다. 지방총독은 즉시 그를 고문대에서 끌어내리라고 명령하였고, 그는 제사를 드리자마자 마귀에 의해 사로잡혀서 땅에 넘어져 머리를 찧으며 고통스러워하다가 죽었다.
16세가량 된 나약한 처녀였던 성녀 디오니시아(Dionysia)는 이 현장을 목격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가엾은 사람! 순간의 안락을 위해 영원한 고통에로 자신을 내던지다니!” 이 말을 들은 옵티무스는 그녀가 그리스도교 신자인지를 물었고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매춘을 시킨 후 화형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위협이 효과가 없자 지방총독은 두 명의 젊은 청년에게 그녀의 순결을 빼앗도록 명령했고 청년들은 그녀를 자신들의 집으로 데려갔지만 너무도 거센 저항에 그만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자정을 넘기자 빛으로 반짝이는 젊은이가 나타나 집 전체에 빛을 퍼뜨리며 그들 앞에 섰다. 놀란 두 청년은 성스러운 처녀의 발 앞에 엎드렸다. 그녀는 청년들을 일으켜 세우고 겁내지 말라고 하며 말했다.
“이분은 나의 수호자이자 보호자이십니다.”
그 청년들은 자신들에게 해가 끼치지 않도록 그녀에게 중재를 요청하였다. 다음날 아침 이교도의 사제에 의해 흥분된 군중들이 지방총독의 집을 에워싸고 성 안드레아와 성 바오로를 자신들에게 넘기라고 거칠게 요구하였다.
군중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지방총독은 그들을 불러내어 디아나(Diana) 여신에게 제사를 드리라고 했다. 그들이 거부하자 총독은 그들에게 채찍질을 하고 구경꾼들에게 넘겨주었다. 구경하던 군중들은 성 안드레아와 성 바오로에게 돌을 던져 죽게 하였다.
성녀 디오니시아는 성 안드레아와 성 바오로를 처형하는 무질서한 소리를 듣자 울부짖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경비병들로부터 빠져나와 그들이 있던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자신의 동료들을 보면서 외쳤다.
“당신들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지금 당신들과 함께 이곳에서 죽겠습니다.”
지방총독은 성녀 디오니시아가 순결을 지키게 된 놀라운 사건과 순교자들과 함께 죽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녀를 성 안드레아와 성 바오로에게서 데리고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참수시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안드레아 아벨롱
- 가톨릭 성인 이름
Andrew Abellon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신부,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375-1450년
안드레아 아벨롱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안드레아스, 앙드레, 앤드루, 앤드류.
안드레아 아벨롱 자료
안드레아 아벨롱(Andreas Abellon)은 프랑스의 생막시맹(Saint-Maximin)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생막시맹은 그 지방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성모 마리아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7월 22일) 일행이 팔레스티나(Palestina)를 빠져나와 배를 타고 정처 없이 떠났다가 프랑스 남동부 프로방스(Provence) 지방에 상륙하여 복음을 선포하였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생막시맹 마을에서 금욕생활을 하다가 삶을 마치고 그곳에 묻혔다고 한다. 그래서 안드레아 아벨롱의 전 생애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성지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젊은 시절 그는 프랑스로 선교활동을 온 성 빈첸시오 페레리우스(Vincentius Ferrerius, 4월 5일) 신부의 감동적인 강론을 들었다. 성 빈첸시오 페레리우스 신부의 강론은 순결과 참회의 선택을 하려는 젊은 안드레아 아벨롱의 삶에 모범이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그는 고향에 있는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여 행복하고 거룩한 수련기를 마친 후 서원을 하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몇 년 동안 설교자로서 그리고 영혼의 인도자로서 활동한 그는 그 동안 방치되어 있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성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곳은 일찍부터 많은 이들이 찾는 순례지였지만 순례자들을 위한 배려나 그들의 영적인 필요를 충족시켜 줄 별다른 준비가 없었다.
안드레아 아벨롱의 시대에 생막시맹의 도미니코회 신부들은 순례자들에 대한 영적인 도움을 자신들의 선교사명으로 인식했으나 재정적인 뒷받침이 없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안드레아 아벨롱은 성지에 영속적인 기반이 필요함을 보고 수도원을 설립하고자 했다.
그의 이러한 계획에 여왕이 관심을 보여 재정적인 후원을 해줌으로써 그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왕립 수도원을 세우고 원장이 되었다. 그는 신심이 뛰어났고 수도회의 규칙을 엄수하여 큰 성덕을 닦은 사람으로 공경을 받았다.
그리고 선교활동 뿐만 아니라 미술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졌기 때문에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성지뿐 아니라 남부 프랑스의 수많은 도미니코회 성당을 장식하였다고 전해온다.
그는 사망 후에 성지 성당에 묻혔고 곧이어 그의 무덤은 순례의 장소가 되었다. 그에 대한 공경은 1902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6. 에우프라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Euphras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사도들의 제자,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에스파냐
에우프라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우프라시우스, 유프라시오, 유프라시우스.
에우프라시오 자료
성 토르콰투스(Torquatus)는 성 베드로(Petrus)와 성 바오로(Paulus)가 에스파냐의 복음화를 목표로 파견한 최초의 7명의 선교사 중의 한 명이다.
그 외의 선교사는 성 카이킬리우스(Caecilius), 성 크테시폰(Ctesiphon), 성 에우프라시우스(또는 에우프라시오), 성 헤시키우스(Hesychius), 성 인달레티우스(Indaletius), 성 세쿤두스(Secundus, 사도 20,4)이다. 성 토르콰투스는 주로 그라나다(Granada)의 과딕스(Guadix)에서 활동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에스파냐로 파견된 일곱 명의 선교사 주교는 모두 순교하였다. 성 카이킬리우스는 일리베리스(Illiberis, 오늘날의 그라나다 지방)의 주교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7. 이시도로 (군인)
- 가톨릭 성인 이름
Isidor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군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1년? 키오스
이시도로 (군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이시도루스, 이시도르, 이시돌.
이시도로 (군인) 자료
성 이시도루스(Isidorus, 또는 이시도로)는 로마(Roma) 해군의 장교로 에게해의 키오스 섬에 주둔하고 있을 때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함대 사령관은 그를 불러 신전의 신상에 희생 제물을 바치도록 강요하였으나 그는 이를 거부하였다. 그러자 사령관은 그의 혀를 자른 후 참수하여 시신을 저수지에 던져버렸다.
전승에 의하면 그의 친구였던 동료 군인 암미아누스(Ammianus)와 성녀 미로페(Myropes, 7월 13일)가 그의 시신을 정성들여 수습하였고, 그로인해 그들 역시 체포되어 순교하였다고 한다.
성녀 미로페는 사망 후에 성 이시도루스 옆에 묻혔고, 후에 그들의 무덤이 기적적으로 발견되어 그 위에 기념성당이 지어졌다. 성 이시도루스에 대한 공경은 지중해 전역으로 퍼져 선원들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그는 키오스와 그의 유해가 모셔진 베네치아(Venezia)에서 특별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8. 이시도로 (농부)
- 가톨릭 성인 이름
Isidor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농부, 평신도 - 활동 연도와 지역
1070-1130년
이시도로 (농부)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이시도루스, 이시도르, 이시돌.
이시도로 (농부) 자료
에스파냐의 마드리드(Madrid) 근교에서 태어난 성 이시도루스(Isidorus, 또는 이시도로)는 마드리드 근교에 있는 후안 데 베르가스(Juan de Vergas)의 영지에서 노동자로 일하였다. 그러나 그의 신심은 매우 깊었고, 수많은 기적을 행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자신도 가난하였지만 비록 적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면서 살았다.
그는 5월 15일에 마드리드에서 운명하였는데, 그의 아내 마리아 토리비아(Maria Toribia) 역시 남편 못지않은 신심과 가난을 살았기 때문에 성녀 마리아 데 라 카베사(Maria de la Cabeza, 9월 9일)라는 이름으로 공경을 받는다.
실로 그는 노동자, 이웃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모범이었다. 국왕 필립 3세가 중병에 걸렸을 때 그의 전구로 회복되자 그의 시성 운동을 적극 장려하여 1619년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이어 1622년 3월 12일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는 농부와 마드리드 시의 수호성인이다. 또한 그는 1947년 미국 국립 농촌 생활 위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9. 인달레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Indalet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사도들의 제자,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에스파냐
인달레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인달레시우스, 인달레씨오, 인달레씨우스, 인달레티오, 인달레티우스.
인달레시오 자료
성 토르콰투스(Torquatus)는 성 베드로(Petrus)와 성 바오로(Paulus)가 에스파냐의 복음화를 목표로 파견한 최초의 7명의 선교사 중의 한 명이다.
그 외의 선교사는 성 카이킬리우스(Caecilius), 성 크테시폰(Ctesiphon), 성 에우프라시우스(Euphrasius), 성 헤시키우스(Hesychius), 성 인달레티우스(또는 인달레시오), 성 세쿤두스(Secundus, 사도 20,4)이다. 성 토르콰투스는 주로 그라나다(Granada)의 과딕스(Guadix)에서 활동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에스파냐로 파견된 일곱 명의 선교사 주교는 모두 순교하였다. 성 카이킬리우스는 일리베리스(Illiberis, 오늘날의 그라나다 지방)의 주교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0. 체칠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Caecil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사도들의 제자,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에스파냐
체칠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체칠리우스, 카이킬리오, 카이킬리우스, 케키리오, 케킬리우스
.
체칠리오 자료
성 토르콰투스(Torquatus)는 성 베드로(Petrus)와 성 바오로(Paulus)가 에스파냐의 복음화를 목표로 파견한 최초의 7명의 선교사 중의 한 명이다.
그 외의 선교사는 성 카이킬리우스(또는 카이킬리오, 체칠리오), 성 크테시폰(Ctesiphon), 성 에우프라시우스(Euphrasius), 성 헤시키우스(Hesychius), 성 인달레티우스(Indaletius), 성 세쿤두스(Secundus, 사도 20,4)이다. 성 토르콰투스는 주로 그라나다(Granada)의 과딕스(Guadix)에서 활동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에스파냐로 파견된 일곱 명의 선교사 주교는 모두 순교하였다. 성 카이킬리우스는 일리베리스(Illiberis, 오늘날의 그라나다 지방)의 주교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1. 카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Cass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60년
카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가시오, 가시우스, 까씨오, 까씨우스, 카시우스, 카씨오, 카씨우스.
카시오 자료
성 카시우스(또는 카시오), 성 빅토리누스(Victorinus), 성 막시무스(Maximus)와 동료 신자들은 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Auvergne)의 클레르몽(Clermont)에서 그 지역을 침략한 게르만족의 족장 크로카스(Chrocas)의 통치 중에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2. 크테시폰
- 가톨릭 성인 이름
Ctesipho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사도들의 제자,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에스파냐
크테시폰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끄떼시뽄, 크테시뽄.
크테시폰 자료
성 토르콰투스(Torquatus)는 성 베드로(Petrus)와 성 바오로(Paulus)가 에스파냐의 복음화를 목표로 파견한 최초의 7명의 선교사 중의 한 명이다.
그 외의 선교사는 성 카이킬리우스(Caecilius), 성 크테시폰, 성 에우프라시우스(Euphrasius), 성 헤시키우스(Hesychius), 성 인달레티우스(Indaletius), 성 세쿤두스(Secundus, 사도 20,4)이다. 성 토르콰투스는 주로 그라나다(Granada)의 과딕스(Guadix)에서 활동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에스파냐로 파견된 일곱 명의 선교사 주교는 모두 순교하였다. 성 카이킬리우스는 일리베리스(Illiberis, 오늘날의 그라나다 지방)의 주교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3. 토르콰토
- 가톨릭 성인 이름
Torqua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사도들의 제자,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에스파냐
토르콰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또르과또, 또르과뚜스, 또르콰토, 또르콰투스, 토르과또, 토르과뚜스, 토르과토, 토르과투스, 토르콰투스.
토르콰토 자료
성 토르콰투스(또는 토르콰토)는 성 베드로(Petrus)와 성 바오로(Paulus)가 에스파냐의 복음화를 목표로 파견한 최초의 7명의 선교사 중의 한 명이다.
그 외의 선교사는 성 카이킬리우스(Caecilius), 성 크테시폰(Ctesiphon), 성 에우프라시우스(Euphrasius), 성 헤시키우스(Hesychius), 성 인달레티우스(Indaletius), 성 세쿤두스(Secundus, 사도 20,4)이다. 성 토르콰투스는 주로 그라나다(Granada)의 과딕스(Guadix)에서 활동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에스파냐로 파견된 일곱 명의 선교사 주교는 모두 순교하였다. 성 카이킬리우스는 일리베리스(Illiberis, 오늘날의 그라나다 지방)의 주교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4. 헤시키오
- 가톨릭 성인 이름
Hesych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사도들의 제자,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에스파냐
헤시키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헤시치오, 헤시치우스, 헤시키우스, 헤지치오, 헤지치우스, 헤지키오, 헤지키우스.
헤시키오 자료
성 토르콰투스(Torquatus)는 성 베드로(Petrus)와 성 바오로(Paulus)가 에스파냐의 복음화를 목표로 파견한 최초의 7명의 선교사 중의 한 명이다.
그 외의 선교사는 성 카이킬리우스(Caecilius), 성 크테시폰(Ctesiphon), 성 에우프라시우스(Euphrasius), 성 헤시키우스(또는 헤시키오), 성 인달레티우스(Indaletius), 성 세쿤두스(Secundus, 사도 20,4)이다. 성 토르콰투스는 주로 그라나다(Granada)의 과딕스(Guadix)에서 활동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에스파냐로 파견된 일곱 명의 선교사 주교는 모두 순교하였다. 성 카이킬리우스는 일리베리스(Illiberis, 오늘날의 그라나다 지방)의 주교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5. 홀바르드
- 가톨릭 성인 이름
Hallvard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043년 오슬로
홀바르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할바드, 할바르드, 할바르트, 홀바드, 홀바르트.
홀바르드 자료
성 홀바르드는 노르웨이 후사비(Husaby)에 살던 왕족 또는 지주의 아들이었다. 어느 날 그는 배를 타고 드람멘피오르드(Drammenfjord)를 지나갈 즈음 어느 여자 노예의 애절한 호소를 듣게 되었다.
그 내용은 자신이 억울하게 도둑으로 몰려 죽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돕고 싶었으나 여자노예를 추적해 온 이들이 곧 당도하여 그녀를 내놓으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성 홀바르드는 그녀의 무죄함을 알았기 때문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고, 결국 추적자들은 그와 그녀를 잔인한 방법으로 체포하여 함께 죽여 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노르웨이 사람들은 무죄한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처참하게 죽은 그를 순교자로서 공경하였고, 그의 유해를 오슬로 성당에 모셨을 뿐만 아니라 오슬로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하고 있다.
교회미술에서 그는 맷돌을 손에 들고 있는 젊은 왕자로 그려지고 있다. 그의 이름은 Hallward 또는 Halward로도 표기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6. 힐라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Hilary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은수자,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476-558년 갈레아타
힐라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힐라리우스, 힐러리.
힐라리오 자료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에서 태어난 성 힐라리우스(Hilarius, 또는 힐라리오)는 12세 때 이미 수도생활에 매력을 느껴 집을 떠나 론코(Ronco) 강변에 은둔소를 세웠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20살 때에 그 지역의 귀족인 올리브리우스(Olibrius)를 마귀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었고, 그로 인해 올리브리우스 가족 모두 그에게 세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땅과 돈까지 기부를 받았다. 게다가 올리브리우스의 두 아들이 성 힐라리우스의 종교적 삶에 매력을 느껴 함께하게 되었다.
496년경 이 모든 것을 기초로 하여 그는 갈레아타 수도원을 세웠는데, 후에 수도원 이름은 갈레아타의 산텔레로(Sant'Ellero) 또는 산틸라로(Sant'Ilaro)로 변경되었고 현재는 카말돌리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의 모범을 보고 모여들었고, 그는 성 파코미우스(Pachomius)의 수도 규칙에 따라 수도원을 이끌었다.
또한 그는 고트족의 왕 테오도리쿠스(Theodoricus)가 쳐들어와서 수도원을 파괴하려고 했을 때 그를 설득하여 수도원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땅까지 얻어냈을 정도로 성덕이 출중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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