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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6일 남자세례명 15가지

피어나네 2023. 1. 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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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6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곤살보, 마르첼로 1세, 멜라, 발레리오, 베드로, 베라르도, 아주토, 아쿠르시오, 오토, 티시아노, 페레올로, 푸르세오, 헨리코, 호노라토(수도원장), 호노라토(주교), 총 15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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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6일 여자세례명 프리스킬라, 총 1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1월 16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5가지

 

 

 

 

1월 16일 남자세례명 목록

 

  1. 곤살보

  2. 마르첼로 1세

  3. 멜라

  4. 발레리오

  5. 베드로

  6. 베라르도

  7. 아주토

  8. 아쿠르시오

  9. 오토

  10. 티시아노

  11. 페레올로

  12. 푸르세오

  13. 헨리코

  14. 호노라토(수도원장)

  15. 호노라토(주교)

 

1월 16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5가지

 

 

1. 곤살보

 

  • 가톨릭 성인 이름
    Gonsalvo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신부,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187-1259년 아마란트

 

 

곤살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곤살레스, 곤잘레스, 곤잘보, 군디살보, 군디살부스.

 

 

곤살보 자료

포르투갈의 귀족 가문 출신인 곤살보는 어릴 때부터 신심이 두터웠다. 그는 사제품을 받으면서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조카들에게 물려주고 14년 동안 주로 이스라엘 성지를 순례하면서 지냈다. 그래서 그가 집에 돌아왔을 때 가족들조차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여 수도원장의 허락을 받고 아마란트 근교에서 은수자로서 살았다. 그는 농부들을 설득하여 술을 마시지 않는 운동을 벌였는데, 농부들의 식수난이 심각했을 때 그가 작대기로 바위를 치니 물이 콸콸 흘러나왔다고도 한다. 이외에도 그에 관한 기적은 수없이 많다. 그는 곤잘레스(Gonzales) 또는 군디살부스(Gundisalvus)로도 불린다. 그에 대한 공경은 1560년에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마르첼로 1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cellus I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교황,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8/9년?

 

 

마르첼로 1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셀로, 마르셀루스, 마르첼루스, 마르켈로, 마르켈루스.

 

 

마르첼로 1세 자료

304년에 순교한 교황 성 마르첼리누스(Marcellinus, 4월 26일) 밑에서 사제로 활동하며 지도자적 임무를 수행한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가 308년에 교황좌를 계승함으로써 비로소 약 3년 반 동안 비어 있던 베드로(Petrus)의 주교좌가 주인을 맞게 되었다.

 

자료에 따라 1년 6개월 또는 채 8개월이 안 되는 재위 기간 중 그는 혼란과 분열에 빠진 교회의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박해로 인해 집회 장소와 묘지가 압수되고, 배교자들이 정해진 속죄 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다시 신자 생활에 참여하길 요구하는 등 어려운 문제들이 많았다.

 

“연대 교황표”(Liber Pontificialis)에 따르면, 그는 로마 교회를 각각 한 명의 사제가 파견되는 25개의 본당으로 재조직하고, 본당 사제를 중심으로 예비신자의 세례를 준비시키고 배교자들에게 규정된 속죄 행위를 실행하도록 했다. 또 새 주교를 서품하고, 성녀 프리스킬라(Priscilla) 카타콤바 반대편인 살라리아 가도(Via Salaria)에 새 묘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교회를 재정비하려는 그의 노력은 배교자들을 교회에 다시 받아들이는 문제로 큰 혼란과 장벽에 부딪혔다. 교황 성 다마수스 1세(Damasus I, 12월 11일)가 쓴 비문에 의하면, 그는 배교자의 처리 문제에 있어서 엄격한 속죄 행위를 요구한 엄격주의자였다.

 

그로 인해 헤라클리우스를 중심으로 한 배교자들과 신자들 사이에 심각한 다툼이 유혈 충돌로까지 번졌다. 결국 막센티우스 황제는 배교자들의 고발에 따라 성 마르첼루스 교황을 체포해서 평화의 파괴자란 죄목으로 유배를 보냈다. 그는 장소가 알려지지 않은 유배지에서 얼마 뒤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로마로 옮겨져 박해 기간에 징수되지 않았던 개인 묘지인 성녀 프리스킬라 카타콤바에 안장되었다. 교황의 최후에 대한 이런 내용은 “리베리우스 교황표”(Catalogus Liberianus)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순교에 관한 전설적 이야기를 기록한 5세기의 “마르첼루스의 수난”(Passio Marcelli)과 “연대 교황표”는 다른 전승을 전해주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성 마르첼루스 교황은 교회를 재조직하고 주교 직분을 지키면서 로마의 신들에게 희생제물을 바치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이에 격분한 막센티우스 황제는 루치나(Lucina)라는 후원자가 자신의 집을 봉헌해 세운 ‘마르첼루스 성당’을 마구간으로 개조하고, 교황을 그곳에서 마부로 일하게 했다고 한다. 결국 교황은 신앙을 지키다가 그곳에서 사망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멜라

 

  • 가톨릭 성인 이름
    Mela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85년 리노콜루라

 

 

멜라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멜라스, 멜란시오, 멜란시우스, 멜란씨오, 멜란씨우스, 멜란티오, 멜란티우스.

 

 

멜라 자료

성 멜라는 지중해 연안 이집트와 팔레스티나(Palestina) 사이의 경계에 위치한 작은 마을 리노콜루라의 주교였다. 그는 아리우스(Arius)파 이단자들에 의해 잔인하게 모욕을 당하고 수감되었으나 그리스도교의 참된 신앙을 끝까지 증거하였다. 그는 멜란티우스(Melantiu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발레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Valer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53년 소렌토

 

 

발레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발레리우스.

 

 

발레리오 자료

성 발레리우스(또는 발레리오)는 하느님의 부르심과 백성들에 의해 성인다운 은수자로서의 삶을 살았고, 후에 이탈리아 소렌토의 주교가 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베드로

 

  • 가톨릭 성인 이름
    Peter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220년 모로코

 

 

베드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베드루스,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베드로 자료

성 베라르두스(Berardus)는 교황령에 속한 움브리아(Umbria)의 카르비오(Carbio)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213년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가 설립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였다.

 

성 프란치스코는 1219년에 제2차 수도회 총회를 마치면서 작은 형제회의 사도직을 선교 영역으로 확장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해 아랍어에 능통한 성 베라르두스 신부와 동료 사제인 성 오토(Otto)와 성 베드로(Petrus) 그리고 평수사인 성 아쿠르시우스(Accursius)와 성 아주투스(Adjutus)를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도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파견하였다.

 

그들은 배를 타고 이탈리아에서 출발해 포르투갈에 도착한 후 에스파냐의 세비야(Sevilla)로 갔다. 당시 이베리아반도는 8세기 초부터 오랫동안 이슬람 세력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들은 세비야에서 무어인에게 선교하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가 석방된 후 모로코 왕국으로 추방되었다.

모로코에 도착한 후 성 베라르두스와 동료들은 이슬람교의 중심지인 마라케시(Marrakesh)로 가서 길거리에서 설교를 시작했다. 아랍어를 하는 사람은 성 베라르두스 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무함마드(Muhammad)의 교리를 포기하라고 공개적으로 설교할 때 무어인들은 그들이 실성했다고 판단해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하고 이슬람교를 비난하자 모로코의 무어인 왕은 그들을 붙잡아 그리스도인들의 영역으로 돌아가도록 배에 태워 쫓아 보냈다.

 

그러나 성 베라르두스와 동료들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모로코로 돌아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결국 무어인 왕은 그들을 체포해 감옥에 가둔 후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다 실패하자 직접 칼을 들어 그들 모두를 참수형으로 처형하였다. 이렇게 해서 1220년 1월 16일에 작은 형제회의 첫 순교자들이 탄생하였다.

그들의 시신은 포르투갈을 거쳐 이탈리아의 아시시로 돌아와 장엄하게 안장되었다. 그들의 유해가 포르투갈의 코임브라(Coimbra)에 있는 성 십자가 성당에 도착했을 때, 성 아우구스티누스 참사 수도회의 한 젊은 사제가 자신도 순교자가 되겠다는 열정에 사로잡혀 코임브라의 작은 형제회로 소속을 옮겨 안토니우스라는 수도명을 받고 곧바로 아프리카 선교를 지원했는데, 그는 파도바(Padova)의 성 안토니우스(Antonius, 6월 13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렇게 성 베라르두스와 동료들의 순교는 작은 형제회 회원들의 선교 열정에 불을 붙였고, 그로부터 7년 뒤인 1227년에는 성 다니엘(Daniel, 10월 10일)과 여섯 명의 동료가 모로코의 세우타(Ceuta)에서 순교하는 역사로 이어졌다. 성 베라르두스와 동료 순교자들은 1481년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IV)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베라르도

 

  • 가톨릭 성인 이름
    Berard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220년 모로코

 

 

베라르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베라르두스.

 

 

베라르도 자료

성 베라르두스(Berardus, 또는 베라르도)는 교황령에 속한 움브리아(Umbria)의 카르비오(Carbio)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213년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가 설립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였다.

 

성 프란치스코는 1219년에 제2차 수도회 총회를 마치면서 작은 형제회의 사도직을 선교 영역으로 확장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해 아랍어에 능통한 성 베라르두스 신부와 동료 사제인 성 오토(Otto)와 성 베드로(Petrus) 그리고 평수사인 성 아쿠르시우스(Accursius)와 성 아주투스(Adjutus)를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도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파견하였다.

 

그들은 배를 타고 이탈리아에서 출발해 포르투갈에 도착한 후 에스파냐의 세비야(Sevilla)로 갔다. 당시 이베리아반도는 8세기 초부터 오랫동안 이슬람 세력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들은 세비야에서 무어인에게 선교하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가 석방된 후 모로코 왕국으로 추방되었다.

모로코에 도착한 후 성 베라르두스와 동료들은 이슬람교의 중심지인 마라케시(Marrakesh)로 가서 길거리에서 설교를 시작했다. 아랍어를 하는 사람은 성 베라르두스 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무함마드(Muhammad)의 교리를 포기하라고 공개적으로 설교할 때 무어인들은 그들이 실성했다고 판단해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하고 이슬람교를 비난하자 모로코의 무어인 왕은 그들을 붙잡아 그리스도인들의 영역으로 돌아가도록 배에 태워 쫓아 보냈다. 그러나 성 베라르두스와 동료들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모로코로 돌아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결국 무어인 왕은 그들을 체포해 감옥에 가둔 후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다 실패하자 직접 칼을 들어 그들 모두를 참수형으로 처형하였다. 이렇게 해서 1220년 1월 16일에 작은 형제회의 첫 순교자들이 탄생하였다.

그들의 시신은 포르투갈을 거쳐 이탈리아의 아시시로 돌아와 장엄하게 안장되었다. 그들의 유해가 포르투갈의 코임브라(Coimbra)에 있는 성 십자가 성당에 도착했을 때, 성 아우구스티누스 참사 수도회의 한 젊은 사제가 자신도 순교자가 되겠다는 열정에 사로잡혀 코임브라의 작은 형제회로 소속을 옮겨 안토니우스라는 수도명을 받고 곧바로 아프리카 선교를 지원했는데, 그는 파도바(Padova)의 성 안토니우스(Antonius, 6월 13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렇게 성 베라르두스와 동료들의 순교는 작은 형제회 회원들의 선교 열정에 불을 붙였고, 그로부터 7년 뒤인 1227년에는 성 다니엘(Daniel, 10월 10일)과 여섯 명의 동료가 모로코의 세우타(Ceuta)에서 순교하는 역사로 이어졌다. 성 베라르두스와 동료 순교자들은 1481년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IV)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아주토

 

  • 가톨릭 성인 이름
    Adju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220년 모로코

 

 

아주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듀토, 아듀투스, 아주투스, 아쥬토, 아쥬투스.

 

 

아주토 자료

성 베라르두스(Berardus)는 교황령에 속한 움브리아(Umbria)의 카르비오(Carbio)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213년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가 설립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였다.

 

성 프란치스코는 1219년에 제2차 수도회 총회를 마치면서 작은 형제회의 사도직을 선교 영역으로 확장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해 아랍어에 능통한 성 베라르두스 신부와 동료 사제인 성 오토(Otto)와 성 베드로(Petrus) 그리고 평수사인 성 아쿠르시우스(Accursius)와 성 아주투스(또는 아주토)를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도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파견하였다.

 

그들은 배를 타고 이탈리아에서 출발해 포르투갈에 도착한 후 에스파냐의 세비야(Sevilla)로 갔다. 당시 이베리아반도는 8세기 초부터 오랫동안 이슬람 세력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들은 세비야에서 무어인에게 선교하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가 석방된 후 모로코 왕국으로 추방되었다.

모로코에 도착한 후 성 베라르두스와 동료들은 이슬람교의 중심지인 마라케시(Marrakesh)로 가서 길거리에서 설교를 시작했다. 아랍어를 하는 사람은 성 베라르두스 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무함마드(Muhammad)의 교리를 포기하라고 공개적으로 설교할 때 무어인들은 그들이 실성했다고 판단해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하고 이슬람교를 비난하자 모로코의 무어인 왕은 그들을 붙잡아 그리스도인들의 영역으로 돌아가도록 배에 태워 쫓아 보냈다.

 

그러나 성 베라르두스와 동료들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모로코로 돌아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결국 무어인 왕은 그들을 체포해 감옥에 가둔 후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다 실패하자 직접 칼을 들어 그들 모두를 참수형으로 처형하였다. 이렇게 해서 1220년 1월 16일에 작은 형제회의 첫 순교자들이 탄생하였다.

그들의 시신은 포르투갈을 거쳐 이탈리아의 아시시로 돌아와 장엄하게 안장되었다. 그들의 유해가 포르투갈의 코임브라(Coimbra)에 있는 성 십자가 성당에 도착했을 때, 성 아우구스티누스 참사 수도회의 한 젊은 사제가 자신도 순교자가 되겠다는 열정에 사로잡혀 코임브라의 작은 형제회로 소속을 옮겨 안토니우스라는 수도명을 받고 곧바로 아프리카 선교를 지원했는데, 그는 파도바(Padova)의 성 안토니우스(Antonius, 6월 13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렇게 성 베라르두스와 동료들의 순교는 작은 형제회 회원들의 선교 열정에 불을 붙였고, 그로부터 7년 뒤인 1227년에는 성 다니엘(Daniel, 10월 10일)과 여섯 명의 동료가 모로코의 세우타(Ceuta)에서 순교하는 역사로 이어졌다. 성 베라르두스와 동료 순교자들은 1481년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IV)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아쿠르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ccurs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220년 모로코

 

 

아쿠르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꾸르씨오, 아꾸르씨우스, 아쿠르시우스.

 

 

아쿠르시오 자료

성 베라르두스(Berardus)는 교황령에 속한 움브리아(Umbria)의 카르비오(Carbio)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213년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가 설립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였다.

 

성 프란치스코는 1219년에 제2차 수도회 총회를 마치면서 작은 형제회의 사도직을 선교 영역으로 확장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해 아랍어에 능통한 성 베라르두스 신부와 동료 사제인 성 오토(Otto)와 성 베드로(Petrus) 그리고 평수사인 성 아쿠르시우스(또는 아쿠르시오)와 성 아주투스(Adjutus)를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도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파견하였다.

 

그들은 배를 타고 이탈리아에서 출발해 포르투갈에 도착한 후 에스파냐의 세비야(Sevilla)로 갔다. 당시 이베리아반도는 8세기 초부터 오랫동안 이슬람 세력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들은 세비야에서 무어인에게 선교하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가 석방된 후 모로코 왕국으로 추방되었다.

모로코에 도착한 후 성 베라르두스와 동료들은 이슬람교의 중심지인 마라케시(Marrakesh)로 가서 길거리에서 설교를 시작했다. 아랍어를 하는 사람은 성 베라르두스 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무함마드(Muhammad)의 교리를 포기하라고 공개적으로 설교할 때 무어인들은 그들이 실성했다고 판단해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하고 이슬람교를 비난하자 모로코의 무어인 왕은 그들을 붙잡아 그리스도인들의 영역으로 돌아가도록 배에 태워 쫓아 보냈다. 그

 

러나 성 베라르두스와 동료들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모로코로 돌아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결국 무어인 왕은 그들을 체포해 감옥에 가둔 후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다 실패하자 직접 칼을 들어 그들 모두를 참수형으로 처형하였다. 이렇게 해서 1220년 1월 16일에 작은 형제회의 첫 순교자들이 탄생하였다.

그들의 시신은 포르투갈을 거쳐 이탈리아의 아시시로 돌아와 장엄하게 안장되었다. 그들의 유해가 포르투갈의 코임브라(Coimbra)에 있는 성 십자가 성당에 도착했을 때, 성 아우구스티누스 참사 수도회의 한 젊은 사제가 자신도 순교자가 되겠다는 열정에 사로잡혀 코임브라의 작은 형제회로 소속을 옮겨 안토니우스라는 수도명을 받고 곧바로 아프리카 선교를 지원했는데, 그는 파도바(Padova)의 성 안토니우스(Antonius, 6월 13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렇게 성 베라르두스와 동료들의 순교는 작은 형제회 회원들의 선교 열정에 불을 붙였고, 그로부터 7년 뒤인 1227년에는 성 다니엘(Daniel, 10월 10일)과 여섯 명의 동료가 모로코의 세우타(Ceuta)에서 순교하는 역사로 이어졌다. 성 베라르두스와 동료 순교자들은 1481년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IV)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오토

 

  • 가톨릭 성인 이름
    Otto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220년 모로코

 

 

오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오또.

 

 

오토 자료

성 베라르두스(Berardus)는 교황령에 속한 움브리아(Umbria)의 카르비오(Carbio)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213년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가 설립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였다.

 

성 프란치스코는 1219년에 제2차 수도회 총회를 마치면서 작은 형제회의 사도직을 선교 영역으로 확장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해 아랍어에 능통한 성 베라르두스 신부와 동료 사제인 성 오토와 성 베드로(Petrus) 그리고 평수사인 성 아쿠르시우스(Accursius)와 성 아주투스(Adjutus)를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도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파견하였다.

 

그들은 배를 타고 이탈리아에서 출발해 포르투갈에 도착한 후 에스파냐의 세비야(Sevilla)로 갔다. 당시 이베리아반도는 8세기 초부터 오랫동안 이슬람 세력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들은 세비야에서 무어인에게 선교하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가 석방된 후 모로코 왕국으로 추방되었다.

모로코에 도착한 후 성 베라르두스와 동료들은 이슬람교의 중심지인 마라케시(Marrakesh)로 가서 길거리에서 설교를 시작했다. 아랍어를 하는 사람은 성 베라르두스 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무함마드(Muhammad)의 교리를 포기하라고 공개적으로 설교할 때 무어인들은 그들이 실성했다고 판단해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하고 이슬람교를 비난하자 모로코의 무어인 왕은 그들을 붙잡아 그리스도인들의 영역으로 돌아가도록 배에 태워 쫓아 보냈다.

 

그러나 성 베라르두스와 동료들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모로코로 돌아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결국 무어인 왕은 그들을 체포해 감옥에 가둔 후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다 실패하자 직접 칼을 들어 그들 모두를 참수형으로 처형하였다. 이렇게 해서 1220년 1월 16일에 작은 형제회의 첫 순교자들이 탄생하였다.

그들의 시신은 포르투갈을 거쳐 이탈리아의 아시시로 돌아와 장엄하게 안장되었다. 그들의 유해가 포르투갈의 코임브라(Coimbra)에 있는 성 십자가 성당에 도착했을 때, 성 아우구스티누스 참사 수도회의 한 젊은 사제가 자신도 순교자가 되겠다는 열정에 사로잡혀 코임브라의 작은 형제회로 소속을 옮겨 안토니우스라는 수도명을 받고 곧바로 아프리카 선교를 지원했는데, 그는 파도바(Padova)의 성 안토니우스(Antonius, 6월 13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렇게 성 베라르두스와 동료들의 순교는 작은 형제회 회원들의 선교 열정에 불을 붙였고, 그로부터 7년 뒤인 1227년에는 성 다니엘(Daniel, 10월 10일)과 여섯 명의 동료가 모로코의 세우타(Ceuta)에서 순교하는 역사로 이어졌다. 성 베라르두스와 동료 순교자들은 1481년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IV)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티시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Tit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32년 오데르초

 

 

티시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띠시아노, 띠시아누스, 티시아누스, 티씨아노, 티씨아누스, 티티아노, 티티아누스.

 

 

티시아노 자료

이탈리아의 헤라클레아(Heraclea)에서 태어난 성 티티아누스(Titianus, 또는 티시아노)는 오데르초의 주교 플로리아누스(Florianus)에게 교육을 받고 사제가 되었다.

 

그는 교구의 재정을 담당하며 자선에 힘썼다. 플로리아누스가 인근에 다른 교구를 설정할 때 그는 백성들의 환호 속에 오데르초 교구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이를 달가워하지 않아 사양하던 그는 하는 수 없이 교구를 맡게 되었다. 그는 종교적 삶의 모범이자 백성에게는 참으로 훌륭한 목자였으며, 설교가로서도 주목할 만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아리우스파와도 싸워 정통교리를 수호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페레올로

 

  • 가톨릭 성인 이름
    Ferreol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670년경 그르노블

 

 

페레올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페레올루스, 페르레올로, 페르레올루스.

 

 

페레올로 자료

1907년 교황 비오 10세(Pius X)가 페레올루스(또는 페레올로) 성인의 공경을 재차 확인하였지만 성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는 실정이다.

 

그는 프랑스 도피네(Dauphine) 지방 그르노블의 제13대 주교이고, 폭군 에브룅의 요구를 거절하여 순교하였다는 사실만은 기록상으로 확실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푸르세오

 

  • 가톨릭 성인 이름
    Furse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648년경

 

 

푸르세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푸르사, 푸르세우스, 푸르시.

 

 

푸르세오 자료

아일랜드의 코리(Corri) 호수에 있는 이니스퀸(Inisquin) 섬에서 태어난 성 푸르세우스(또는 푸르세오)는 귀족가문 출신이었다. 그는 집을 떠나 라스맷(Rathmat)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수많은 제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로부터 12년 후인 630년경에 그는 자신의 동생인 성 포일란(Foillan, 10월 31일)과 성 울탄(Ultan, 5월 2일)을 데리고 잉글랜드(England)로 갔다. 그들은 이스트앵글리아(East Anglia)에 정착하여 수도원을 세웠는데 그의 뛰어난 명성을 들은 시제베르트 왕이 많은 땅을 희사하였다고 한다.

 

또 642년경에는 프랑스 지방까지 진출하여 네우스트리아(Neustria)에 정착하였고, 라늬쉬르마른(Lagny-sur-Marne)에 수도원을 세운 얼마 뒤에 운명하였다. 그는 푸르사(Fursa) 또는 푸르시(Fursey, Fursy)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헨리코

 

  • 가톨릭 성인 이름
    Henry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127년 코케트

 

 

헨리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앙리, 하인리히, 헨리, 헨리꼬, 헨리꾸스, 헨리쿠스.

 

 

헨리코 자료

성 헨리쿠스(Henricus, 또는 헨리코)는 덴마크에서 태어나 전심전력으로 하느님만 섬긴 사람이다. 그는 고향을 떠나 영국 잉글랜드(England) 북동부 노섬벌랜드(Northumberland) 해안가의 코케트라는 작은 섬에서 은수자로서 생활하였다.

 

그가 매일 먹는 식사는 소량의 빵과 물뿐이었다. 이 빵도 자신이 손수 가꾸어 얻은 밀로 만든 것이었다. 그는 그의 은둔소에서 운명하였지만, 그의 성덕을 기리는 교회와 수도자들이 타인머스(Tynemouth)의 수도원에 안장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호노라토(수도원장)

 

  • 가톨릭 성인 이름
    Honora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6세기 폰디

 

 

호노라토(수도원장)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호노라또, 호노라뚜스, 호노라투스.

 

 

호노라토(수도원장) 자료

성 호노라투스(또는 호노라토)는 이탈리아 중부 라티움(Latium)과 남부 캄파니아(Campania) 경계에 위치한 폰디에 수도원을 설립하고 원장이 되었다.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교황은 "대화집"에서 그의 생애를 짧게나마 언급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호노라토(주교)

 

  • 가톨릭 성인 이름
    Honora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350-429년 아를

 

 

호노라토(주교)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호노라또, 호노라뚜스, 호노라투스.

 

 

호노라토(주교) 자료

성 호노라투스(또는 호노라토)는 프랑스계 로마인 집안 태생으로 독일의 트리어(Trier) 또는 프랑스의 로렌(Lorraine)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뒤에 그리스와 로마(Roma)를 순례하였다. 그로써 많은 것을 알게 된 그는 410년경에 황량한 한 섬으로 가서 은둔소를 세우고 트루아(Troyes)의 성 루푸스(Lupus, 7월 29일), 리옹(Lyon)의 성 에우케리우스(Eucherius, 11월 16일), 아를의 성 힐라리우스(Hilarius, 5월 5일) 등과 함께 살았다.

 

이것이 유명한 레렝스 섬 수도원의 시작이었다. 그는 427년에 프랑스 아를의 주교로 선출되었으나 얼마 후에 운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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