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3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도시테오, 라자로, 밀로, 빌리지스, 시레노, 알렉산데르 아키메테스, 제비노, 펠릭스, 폴리카르포 (요한의 제자), 폴리카르포 (신부), 플로렌시오, 총 11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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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2월 23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1가지
2월 23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도시테오
- 가톨릭 성인 이름
Dosithe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사 - 활동 연도와 지역
+530년경 가자
도시테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도시떼오, 도시떼우스, 도시테우스.
도시테오 자료
성 도시테우스(또는 도시테오)는 이교도로 자랐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교리는 전혀 몰랐으나, 가끔 예루살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곳을 가보고 싶은 충동을 종종 느꼈다고 한다.
그는 게세마니(Gethsemane)를 비롯하여 예루살렘의 여러 곳을 방문하여 큰 감명을 받았으나, 어떤 낯선 부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기가 본 것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는 이 부인이 일러 준 대로 가자에 있는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원장은 그의 외모를 보고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그의 열성이 지극하여 결국 허락하였다고 한다. 그는 이때 성 도로테우스(Dorotheus)의 지도를 받았다.
그는 수도자의 길을 걸으면서 자기 자신의 의지를 극복하는 일을 목표로 삼고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최선을 다하여 높은 성덕을 얻게 되었다. 그는 매일 극히 소량의 빵으로 만족하고 나머지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하였다.
가끔 그는 인내심을 잃어버린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면 그는 주님께서 위로해 주실 때까지 땅에 엎디어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그는 항상 이렇게 말하였다.
"기도하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
또한 그는 여러 성인들의 환시를 보았다. 그때마다 그가 하는 말은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소서"였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라자로
- 가톨릭 성인 이름
Lazar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승,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867년
라자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나자로, 나자루스, 라자루스.
라자로 자료
성 라자루스(또는 라자로)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수도자이자 뛰어난 화가였다. 그는 성상파괴주의자 황제인 테오필리우스의 재위 중에 이교도에 의해 손상된 성화들을 복구하며 바삐 지냈다.
그러나 그로 인해 황제로부터 잔인한 고문과 박해를 당했다. 후에 그는 영예롭게 복귀하였고 특사로서 로마(Roma)로 갔다. 교회미술에서 성 라자루스는 두 손이 불타고 있는 중에도 여전히 교회나 손상된 성화를 그리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밀로
- 가톨릭 성인 이름
Milo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076년 베네벤토
밀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일로, 밀루스.
밀로 자료
프랑스의 오베르뉴(Auvergne)에서 태어난 성 밀루스(Milus, 또는 밀로)는 파리(Paris) 주교좌 성당의 참사의원 등을 거쳐 1074년 이탈리아 베네벤토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빌리지스
- 가톨릭 성인 이름
Willigi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대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011년 마인츠
빌리지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빌리지스 자료
서민 출신인 성 빌리지스는 975년경에 오토 2세의 궁중대신이 되었고, 그 후 독일 마인츠의 대주교로 활약하였다.
또한 그는 오토 3세와 성 헨리쿠스 2세(Henricus II, 7월 13일) 치하에서도 고관으로 봉직하여 관리로서 뿐만 아니라 고위 성직자로서 높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의 노력과 활동을 통하여 가톨릭 교회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Schleswig-Holstein) 지방과 남부 스칸디나비아 전역에서 크게 번창하였다.
그에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그것은 간데스하임(Gandersheim) 수녀원 관할권을 두고 힐데스하임(Hildesheim)의 성 베른바르두스(Bernwardus, 11월 20일)와 오랫동안 불화 속에 지낸 사실이다.
그 후 성 빌리지스는 자신이 지나쳤음을 공식적으로 사과함으로써 그의 높은 덕이 더욱 빛난 계기가 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시레노
- 가톨릭 성인 이름
Sire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승, 정원사,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2년경
시레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세레노, 세레누스, 시레누스, 쎄레노, 쎄레누스, 체르뇌프.
시레노 자료
세레누스(Serenus) 또는 체르뇌프(Cerneuf)로도 알려진 성 시레누스(또는 시레노) 정원사는 그리스 사람으로 시르미움(Sirmium, 오늘날 유고슬라비아의 미트로비카)으로 이주하여 살던 그리스도인으로서 특히 그의 정원이 유명하였다고 한다.
그는 한때 그리스도교 박해를 모면하기 위하여 피신한 사실이 있었다. 그가 집으로 돌아온 날 적당치 않는 시간에 자기 집 정원을 거니는 한 부인과 마주치게 되어 꾸짖었다.
그런데 이 여인이 남편에게 성 시레누스를 모함하였는데 그 남편은 간수였다. 간수 남편은 성 시레누스를 법정에 고발하였고, 성 시레누스는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곧 그리스도인임이 드러났다.
그는 이교도의 신에게 희생 제사 바치기를 죽음으로써 거부하여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알렉산데르 아키메테스
- 가톨릭 성인 이름
Alexander Akimete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30년
알렉산데르 아키메테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알레산드로, 알렉산더, 알렉산델, 알렉싼데르, 알렉싼델.
알렉산데르 아키메테스 자료
아시아 태생으로 알려진 성 알렉산데르 아키메테스는 스스로 복음을 읽고 개종한 후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서 공부하였고, 그 후에는 수덕생활을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시리아로 갔다.
11년 동안 회수자와 독수자 생활을 경험한 그는 메소포타미아 선교활동을 계획하고 에데사(Edessa)로 가서 라불라스(Rabulas)를 개종시켰다. 이 사람은 후일 에데사의 주교가 된 사람이다.
또 그는 유프라테스 강변에 큰 수도원을 세운 뒤에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고행에만 전념하였다. 성 알렉산데르는 수도자들의 가대 성무일도의 창시자로도 알려져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제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Zeb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5세기 시리아
제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제비누스.
제비노 자료
성 제비누스(또는 제비노)는 시리아의 은수자로 많은 수도승들의 영적 스승이었다. 그의 제자 중에는 성 마로(Maro, 2월 14일)와 성 폴리크로니우스(Polychronius) 등이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펠릭스
- 가톨릭 성인 이름
Felix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50년 브레시아
펠릭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펠리체.
펠릭스 자료
북 이탈리아의 브레시아의 제20대 주교인 성 펠릭스는 랑고바르드족(Langobard) 아리우스파와 다른 이교도들에게 점령된 파란 많은 시절에 40년 이상 주교좌를 지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폴리카르포
- 가톨릭 성인 이름
Polycarp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요한의 제자,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5/156년 스미르나
폴리카르포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뽈리까르뽀, 뽈리까르뿌스, 폴리까르뽀, 폴리까르뿌스, 폴리카르푸스.
폴리카르포 자료
성 폴리카르푸스(Polycarpus, 또는 폴리카르포)는 젊은 시절 사도 성 요한(Joannes, 12월 27일)을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다.
스승으로부터 주님의 가르침에 대해 충실히 전해 들은 그는 사도 성 요한에 의해 소아시아 서해안의 항구도시인 스미르나(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 Izmir)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스미르나와 인근 지역인 에페소는 이미 사도 성 바오로(Paulus, 6월 29일)가 전교한 곳으로 신자가 많이 있었다. 성 폴리카르푸스의 제자이자 나중에 리옹(Lyon)의 주교가 된 성 이레네우스(Irenaeus, 6월 28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스승에 관해 짧은 전기를 전해주었다.
카이사레아(Caesarea)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는 그의 저서 “교회사”(Historia Ecclesiastica)에서 성 이레네우스가 쓴 전기를 보충하여 설명해주었다.
“나는 복된 폴리카르푸스가 앉았던 자리와 가르쳤던 자리, 드나들던 장소, 그의 모든 행동과 외모, 사람들 앞에서 행한 연설을 당신(플로리누스)에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가 요한과 주님을 본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교제하고 그들의 말을 어떻게 인용하였으며, 그들에게서 주님과 그분의 기적과 가르침에 관하여 무엇을 들었는지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폴리카르푸스는 로고스(말씀)의 삶을 목격한 사람들로부터 전해 들은 대로 모든 것을 성경과 일치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
성 폴리카르푸스는 사도적 권위를 지닌 사도교부(使徒敎父)로 불린다. 성 이레네우스는 스승인 성 폴리카르푸스가 여러 통의 편지를 썼다고 전해주었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서간은 14장으로 된 “필리피인들에게 보낸 편지”뿐이다. 성 폴리카르푸스가 쓴 편지의 주제는 ‘의로움’이었다. 그는 의로움을 바탕으로 윤리와 도덕에서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삶을 북돋우고자 했다.
그래서 금전에 대한 욕심, 탐욕, 중상, 거짓 증언과 불의를 멀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사도들로부터 전해 받은 정통 교리의 열렬한 수호자로서 특히 이단인 발렌티누스주의(Valentinianism)와 마르키온주의(Marcionism)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였다.
그는 필리피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요한의 첫째 서간 4장 3절,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 않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영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적’의 영입니다. 그 영이 오리라고 여러분이 전에 들었는데, 이제 이미 세상에 와 있습니다.”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사탄의 맏이’라고 부른 마르키온의 거짓 가르침을 반대하도록 역설하였다.
그는 또한 안티오키아(Antiochia)의 주교이자 사도 교부로서 존경받는 성 이냐시오(Ignatius, 10월 17일)와 주교단의 일원으로서 또 각별한 선후배 주교로서 가까이 지냈다. 성 이냐시오가 안티오키아에서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되는 여정 중에 스미르나에서 성 폴리카르푸스와 마지막 만남을 가졌다.
성 이냐시오는 압송 중 성 폴리카르푸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선배 주교로서 후배 주교에게 사목자로서 지녀야 할 자세와 덕목을 설명해주었다.
그는 생애의 말기에 로마에 가서 교황 성 아니케투스(Anicetus, 4월 17일)를 방문하고 그곳의 많은 이단자를 교회로 인도하였다. 사실 성 폴리카르푸스가 로마를 방문한 주된 이유는 주님 부활 대축일 날짜에 대한 서방 교회와 동방 교회의 이견 때문이었다.
당시 소아시아 중심의 동방 교회는 서방의 관례와는 달리 사도 성 요한과 다른 사도들이 행한 전통에 따라 과월절 전날인 니산(Nisan) 달 14일에 부활 대축일을 기념하였다.
반면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 교회는 과월절 당일이나 과월절 다음 일요일, 즉 춘분이 지나고 첫 만월 다음에 오는 일요일에 부활 대축일을 지냈다.
비록 그때의 방문으로 부활 대축일 날짜 조정 문제의 이견을 좁히지 못해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소아시아 교회를 대표해서 간 성 폴리카르푸스와 로마의 주교인 교황 성 아니케투스 사이의 교회 공동체성은 깨지지 않았다.
이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교회가 분열될 수도 있는 중요한 신학 문제였으나 서로의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 분열의 길로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부활절 날짜 논쟁은 많은 논란을 겪다가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모든 교회가 로마의 관례에 따라 부활 대축일을 지내야 한다는 규정을 교령으로 결정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로마 방문을 마치고 스미르나로 돌아온 성 폴리카르푸스는 155년 또는 156년 2월 하순, 80대 중반의 나이에 체포되어 총독 앞에 섰다. 171년 이후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폴리카르푸스 순교록”(Martyrium Polycarpi)은 그의 영웅적인 순교 장면을 서간 형식으로 전해주었다.
그에 따르면, 공공 경기장에서 함께 체포된 여러 신자가 순교한 후 성 폴리카르푸스 주교 차례가 되어 그 지방 총독인 스타티우스 콰드라투스(Statius Quadratus) 앞에 섰다. 총독은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하고 신성한 황제를 경배하면 살려주겠다고 회유하였다.
하지만 그는 “내가 86세가 되도록 섬겨온 그분은 나의 왕이며 구세주이시고 또 나를 조금도 해치지 않으신 분이신데 어떻게 배반할 수 있겠는가!” 하며 단호히 거부하였다. 총독은 그를 화형에 처하도록 명령하고 군중은 장작더미를 쌓아 올렸다.
의복을 벗고 스스로 장작더미 위로 올라간 그는 뜨거운 불길에 요동칠까 봐 기둥에 못 박으려는 병사들에게 “염려 말게. 이 불을 견딜 힘을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못 박지 않아도 장작불 속에서 버티어 낼 힘을 나에게 주실 것이네.”라고 안심시킨 후 당당히 순교하였다.
신자들은 불에 탄 그의 뼈를 모아 적당한 장소에 안장하고 순교자로서 공경하였다. 성 폴리카르푸스는 사도 교부의 한 사람으로서 2세기 그리스도교의 최고 지도자였으며, 사도 시대와 그 이후 그리스도교의 뛰어난 저술가 사이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스미르나 교회가 필로멜리움(Philomelium) 교회에 보낸 서간 형식으로 기록한 “폴리카르푸스 순교록”은 목격 증인의 글로 매우 귀중한 자료로 손꼽힌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폴리카르포
- 가톨릭 성인 이름
Polycarp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 활동 연도와 지역
+300년 로마
폴리카르포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뽈리까르뽀, 뽈리까르뿌스, 폴리까르뽀, 폴리까르뿌스, 폴리카르푸스.
폴리카르포 자료
로마의 사제 성 폴리카르푸스(Polycarpus)는 신앙 때문에 감옥에 갇힌 이들을 돌보아주다가 희생된 순교자들의 행전에서 언급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플로렌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Florent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85년 세비야
플로렌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플로렌시우스, 플로렌씨오, 플로렌씨우스, 플로렌티오, 플로렌티우스.
플로렌시오 자료
성 플로렌티우스(또는 플로렌시오)는 에스파냐의 세비야와 그 인근에서 성대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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